• [◆ 30일 영화] [DAY28] 플라이 (The Fly, 1986)2014.08.15 PM 12:51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제목: 플라이 (The Fly)
감독: 데이빗 크로넌버그 (David Cronenberg)
제작년도: 1986년
장르: SF, 호러, 드라마

<폭력의 역사> 포스트에서도 말했듯이, 흔히 '컬트의 귀재'라고 불리우는 크로넌버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다보면 <스파이더>-<폭력의 역사>를 기점으로 확실히 그 스타일이 바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하나의 일관성을 찾을 수 있는데요, 바로 인간의 내면 심리가 붕괴되는 과정을 그리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폭력의 역사>에서 폭력이라는 매개체로 풀어져가고, 아예 <데인져러스 메소드>에선 심리학의 아버지들이라 할 수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칼 융을 다루면서 직접적으로 이런 소재에 대해 태클하는데요, <플라이>도 겉으로 보면 하나의 컬트 호러 영화지만, 그 이면엔 죽음, 그리고 무엇보다 노화를 경험하는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장르적으로 풀어낸 영화라 볼 수 있습니다.

크로넌버그 감독은 <플라이>에 대해 인터뷰 할 때 병과 노화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플라이>에 등장하는 괴물은 과학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괴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살이 썩어가며 떨어지는 장면들은 문둥병 환자를 연상시키고, 노화 현상을 빠르게 보는 느낌도 듭니다.

이렇게 크로넌버그 감독은 그로테스크함으로 인간의 내면의 폭력성, 혹은 결함을 겉으로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플라이>에서의 괴물은 인간이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가는 과정이 아닌, 인간 그 자체의 메타포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추악하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파리 괴물을 크로넌버그 감독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연민의 대상으로 연출합니다. 그리고 이는 주인공을 연기한 제프 골드블룸의 동정심가는 캐릭터 스터디로 완성됩니다. 예를 들어 극 중 브런들은 자신이 '진화'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손톱이나 이빨을 조심스럽게 모아두는 것을 보면 그가 가지고 있는 인간이였던 시절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미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괴물로 변한다'라는 스토리는 중세 시절 흡혈귀 신화나 늑대인간 신화등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이야기입니다만, 늑대인간이 한 특정한 인간의 내면의 비정상적인 폭력성을 상징한다고 보면, <플라이>에서의 괴물은 모든 인간이 겪는 병과 노화라는 주제를 B급 호러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비주얼로 과장시켜 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늑대인간 설화나 흡혈귀 설화의 주인공들은 평범하다고 보기엔 배경이 특별한 경우가 많지만 (예를 들어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 괴물로 타락한다는 소재는 굉장히 많죠. 이번에 개봉할 <드라큘라 언톨드>도 비슷한 방향으로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제프 골드블룸이 연기한 브런들 박사는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부끄러움을 잘타는 비사교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가 괴물로 변하게 된 이유도 그저 사고였을뿐, '희생'이 아니였다는 점에서 <플라이>는 쓸데없는 멜로드라마를 부각시키지 않습니다.

결국 이렇게 주인공에게 괴물 역을 맡긴 것도 모자라 감정 이입까지 가능케한 <플라이>는 인간이 괴물이 된다는 소재의 비극에 한층 더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영화중 딱히 악역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주인공을 괴물이라고 보기엔 너무 인간적이고, 베로니카의 전 남친도 결국 악역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이 없다는 것도 <플라이>가 다른 그저 클리셰적인 괴수물과는 차별화를 두는 점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별한 점이라면 바로 괴물로 변해가는 브런들이 '자식'에 가지는 집착입니다. 극중 자신을 새로운 '종'이라고 인식하는 브런들은 자신의 여자친구인 베로니카가 임신한 아이를 탈취하려 합니다. 그에겐 그의 자식이야 말로 자신을 이어나갈 새로운 세대인 것이죠.

이는 인간들이 늙어가며 다음 세대에 자신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강박관념과 대조됩니다. '유전자'와 '유전자 조작'이라는 개념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영화에서 크로넌버그 감독이 후반 스토리를 괴물로 완전히 진화(혹은 퇴화)하는 브런들의 캐릭터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의 캐릭터가 변화는 과정의 기폭제로 베로니카가 임신한 아이를 사용한 것은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니였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영화는 병에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와 그런 환자를 도와줄 수 없어 슬퍼하는 가족의 모습이 생각나는 연출로 끝납니다. <플라이>의 크리쳐는 겉보기엔 괴물이지만 오히려 인간을 상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B급 호러 센스와 그로테스크한 분장으로 포장이 되었지만 결국 그 내면은 늑대인간, 혹은 흡혈귀같이 현대에 와서 인간적으로 미화된 괴물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한줄평: "두꺼운 B급 분장 밑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
댓글 : 2 개
이 영화가 데이빗 크로넌버그 감독 작품이었군요.
어려서 본 영화라 이미지만 남아있는데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몇 편 안남았는데 DAY 27에서 멈춰서 아쉬웠었는데 그간 바쁘셨나봐요.
다음 영화는 히치콕의 레베카인가요. 사흘 전에 봤는데 리뷰 기대되네요.
바쁜게 아니라 그냥 귀차니즘이였던 거죠 ㅋㅋㅋ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