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이야기] 블랙 팬서 리뷰 (스포)2018.03.05 AM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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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괜찮은 슈퍼히어로 영화다. 마블은 이것을 정치물 테이스트가 강한 제임스 본드라고 홍보했지만, 정치물적인 요소는 결국 눈요기에 지나지 않고, 제임스 본드적인 요소도 장르적 겉핥기에 지나지 않다. 에스피오나지 장르 구조가 극을 이끌어가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윈터 솔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물론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물, 제임스 본드같은 구조를 가면으로 주인공인 트찰라를 잘 표현한 것은 분명 강점이다. 그저 장르적 깊이가 잘 느껴지지 않을 뿐.


에릭 킬몽거는 자극적이고 한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지만, 스크린타임의 문제와 플롯 자체에서 두주인공 체제를 거부했기에 라이언 쿠글러가 의도한 바와 달리 조금 그 깊이가 아쉽다. 블랙 팬서 의식을 치루면서 꾸는 꿈 시퀀스같은 장면이 몇번 더 있었다면 확실히 좋았을 것이다. 음바쿠는 씬스틸러 역할로 재밌지만 플롯에 종속되어 지나치게 예상이 쉬운 역할만 한다. 에버럿 로스의 캐릭터는 동기는 물론 전체적으로 다듬어지지조차 않은 캐릭터다. 트찰라도 정교하게 만들어졌지만 조금 심심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물론 이제 MCU에서 가장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한 캐릭터가 되었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하다). 나키아 또한 비록 다른 초기 마블 히로인보단 더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스토리를 이끄는 캐릭터지만, <토르 라그나로크>의 발키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두 자매와 비교하면 마냥 좋다고 보기에도 미묘하다. 오코예와 슈리는 한정적이긴 하지만 음바쿠와 마찬가지로 임팩트가 굉장히 크기에 극중 가장 빛나는 두 역이라고 할 수 있다.


<블랙 팬서>는 <아이언맨>이 나온지 10년만에 나온 흑인 <아이언맨>이다. 캐릭터성은 달라도, 배경은 달라도, 전체적인 구조나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슷하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첫 마블 영화와 같다. 심지어 악당조차 "자신의 다른 버전"이라는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라면 <아이언맨>이 나온지 10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만큼은 아니지만 <블랙 팬서>도 결국 교과서를 따라간 영화다. 교과서 자체의 완성도와 감독이 그 교과서를 베이스로 여러 기믹을 조화롭게 믹스하였기에 나쁜 영화는 아니지만.


허나 영화가 의도한 포스트식민주의(혹은 포스트/식민주의)적 비평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블랙 팬서>는 실패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흑인 문화에 대한 헌사라는 측면에선 좋은 영화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루크 케이지>가 적어도 미국 흑인 문화에 대해선 훨씬 더 잘 묘사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을 그 중심축으로 한다. 문제는 와칸다라는 가상의 배경으로 하기에 반식민주의적 관점에선 통쾌할지 몰라도, 포스트식민주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 깊이가 얉거나, 아예 근본적으로 그릇된 메시지를 전한다는 데에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와칸다는 "아프리카가 식민주의에 방해받지 않고 진보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와 함께 "현실의 아프리카가 진보하지 못한 이유는 와칸다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와칸다는 비브라늄을 기반으로한 기술 독점으로 국가를 유지해왔다. 비브라늄은 어찌보면 계몽주의 사상 그 자체를 물질적으로 표현한 영화적 상징인 것이다. 와칸다는 가장 계몽주의적이였기에 "진보"하였고,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은 그러지 않았다고 영화는 말한다. 반식민주의적으로 봤을 땐 식민주의에 방해받았기에 현실의 아프리카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지만), 포스트식민주의적으로 봤을 때 비브라늄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큰 모순을 가져온다. 그런 논리로 생각해보면 현실의 아프리카가 진보하지 못한 이유를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밖에 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에릭 킬몽거의 사상과 다른 점은 직접적인 폭력이 동반되느냐, 아니느냐의 차이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블랙 팬서>는 너무 변증법적 논리에 매달린다. 이는 감독이 의도한 바이기도 한데,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으로 봤을 때 이것이 과연 정당한 선택인가에는 의문이 든다 (일단 애초에 변증법은 서구 철학의 산물이자 서구 계몽주의 사상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이분법을 즐겨 사용하는 영화로써 이분법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는 것이 어찌보면 황당하다. 영화는 지극히 서구중심적인 "서구 vs. 그외"를 그대로 차용할 뿐만 아니라 (그저 "그외"가 와칸다라는 제왕주의적 리더로 대표될 뿐), 전식민주의 이상 vs. 포스트식민주의 현실, 미학적 관점에서의 원시주의 vs. 기술을 근간으로 한 미래지향주의, 그리고 사운드트랙에서 조차 대립되는 라이트모티프를 즐겨쓴다. 이 대부분의 이분법은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에서는 모순된 것이 드러났을 뿐더러 (전식민주의 이상과 그와 연결된 미학적 원시주의는 당연히 모더니즘의 산물이자, "서구 vs. 그외"를 탈피하려다 결국 무의식적으로 되돌아온 모순이다) 이런 대립들을 기반으로 한 영화의 변증법적인 논리 또한 너무 이상적이거나 모순적이다.


영화가 트찰라와 에릭 킬몽거로 대변하여 말하고자하는 메시지 (포스트식민주의 사회에서 식민주의의 유산) 또한 결국 모순에 지나지 않는다. (이 대립에서만큼은) 기존 식민주의적 사상을 전해 받은 트찰라가 승리함으로써 (허나 역시 영화의 변증법적 논리로 에릭 킬몽거의 사상 또한 어느정도 이어받으며) 영화는 극단적으로 봤을 때 식민주의 타파를 식민주의적 울타리에서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게다가 영화 자체가 제임스 본드의 클리셰를 답습함으로써 식민주의적 폭력을 자행한다. 와칸다 왕이 오리엔탈리즘적인 비주얼을 노골적으로 강조한 한국에서 깽판치는 것이 다른 영화에서 백인 주인공이 이국적임을 노골적으로 강조한 중동에서 깽판치는 것과 포스트식민주의 관점에서 뭐가 다른가? <어벤져스 2>는 헬렌 조라는 캐릭터로 그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블랙 팬서>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게다가 <블랙 팬서>를 대표하는 미학적 요소인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이 과연 이 영화에 적합한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아프로퓨쳐리즘은 마크 데리가 처음 쓴 단어로, 노예로써 아프리카에서 납치당해 온 흑인들이 식민주의의 산물로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당하고 새로운 흑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면서 미래를 쟁취한다는 미학적, 문학적 철학이다. 허나 이는 결국 미국 흑인 문화와 아이덴티티에 한정되어 있다. 아프리카에 남겨진 사람들이 겪은 식민주의 시대의 고통과는 다르다. 결국 와칸다는 미국 흑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한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영화가 재밌다는 것은 딱히 부정할 의도는 없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즐기며 봤다. 식민주의를 직설적으로 비판한다는 점, 특히 미국 흑인 역사를 조명하고 과거를 돌아본다는 점에선 영화는 잘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허나 반식민주의적 요소는 강하지만 포스트식민주의적이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다. 결국 <블랙 팬서>는 <원더 우먼>과 다를 바 없다. 백인 여성이 약간의 보편적 페미니즘을 양념으로 백인 남성같이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듯이, <블랙 팬서> 또한 비백인 미국인이 약간의 보편적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을 양념으로 백인 미국인같이 블록버스터를 만든 것이다. 헐리우드 내에 존재하는 차별을 생각해보면 나아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영화를 찬양하려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무시해야한다. 다행인 점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댓글 : 1 개
  • ver3
  • 2018/03/05 AM 02:50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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