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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풍우래기4 기후현 여행 5일차 태양광과는 다르다 태양광과는!2021.07.18 PM 08:53
4일째 캠프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플레이어 캐릭터가 르포라이터가 된 계기였던 사이트를 다시 검새해봤지만 여전히 결과는 404 not found.
지금은 사라진 이 사이트는 바이크 면허는 따 뒀지만, 특별히 장래에 대한 전망도 없이 집과 학교를 왕복하며 적당히 공부하고 게임을 하던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그 사이트는 하늘의 계시와도 같은 존재로, 홋카이도를 단지 추운 곳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플레이어 캐릭터는 충격과 함께 자신도 최고의 사진을 찍기 위해 그 사이트의 사진을 찍은 사람처럼 르포라이터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 사이트의 사진을 찍은 사람이 전작의 주인공일 것 같네요.
그리고 다음날 5일째 아침,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후 북부의 시라카와고를 향해 바이크를 몰았습니다.
캠프장에서 나와 북쪽으로 가는 길에 혹시 요 며칠 사이 못 만나고 있는 히로인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까 해서 다시 찾은 시모아쿠타미.
거기서 혼자 들기에는 무거워 보이는 짐을 들고 있는 노파를 발견하고 도와주니 결혼 상대를 찾고 있는 손녀딸과 인사시켜주겠다고 소름 끼치는 미소와 함께 접근해오길래 르포라이터 일 때문에 사양한다며 전력 도주.
이 순간만큼은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도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각질 도주 획득)
결혼 당할 뻔한 위기에서 빠져나와 나가라가와 강변을 따라가다가, 그저 묘하게 넓게 펼쳐진 들이 보였습니다
미륵사 관청 유적군이라는 곳으로, 장방형 형태로 가장자리에 통나무가 박혀 있는 구역이 品자를 이루듯 3군데가 늘어서 있고, 제일 큰 곳은 15mx12m 정도.
안에 뭐라고 적혀 있는 비석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비석에는 정전. 관청으로 따지면 이곳이 메인이 되는 건물이 세워져있었나 보군요.
그 외에는 정창원이 있던 터의 발굴 조사 당시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세금으로서 걷은 쌀 등을 비축해두는 용도로 쓰인 건물로, 방금 봤던 군청원과는 다르게 안쪽에도 기둥이 있던 자리가 표시되어 있습니, 아마도 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더 튼튼하게 설계되었던 모양이네요.
지금은 다시 묻어버렸기 때문에 평지가 되어있었지만 아스카 시대인 7세기부터~10세기경까지 번영했던 곳의 유구가 이 땅 아래에 잠들어 있는 상태.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불교가 전래된 시기라서 이 유적군의 이름에 미륵사가 들어갔나 봅니다.
옛날 시대인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 규모의 군청을 구축하는 것의 어려움과 당시의 율령 체제를 떠받친 지방 관청의 전형으로서 가치가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는 감상을 남기고 다음 장소로 떠나기 위해 주차장으로 돌아갑니다.
이번에 정지한 곳은 기후현 구조시 하치만 마을.
구조하치만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이곳은 오래전부터 미노 북부의 정치랑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해온 곳입니다.
노부나가의 야망에서 독특한 이름으로 알게 된 곳이었는데 성이 세워져있을만했군요.
성이나 옛날 모습을 간직한 건축물이 늘어선 거리, 명수(名水) 등으로 볼거리가 가득한 관광지로 이 사진에는 담겨있는 곳은 등록 유형문화재라는 구조 하치만 역입니다.
내부는 회반죽의 벽과 목제의 창틀에서 지난날의 분위기가 전해져오며 이곳은 나가라카와 철도 북부의 대표역이지만 위쪽의 표에 나와 있듯이 기차가 그리 많이 다니지는 않는 역입니다. 만약 기차로 찾아가실 분이 계시다면 그날 기차 시간표를 꼭 확인하셔야겠네요
그 외에도 역사의 레트로한 분위기를 살린 카페 겸 관광안내소가 있습니다.
2017년 복원 리뉴얼을 할 때 오픈했다는 이곳에선 여기서 자전거 렌털도 해준다고 합니다.
역에서 조금 떨어지자 에도 시대의 모습이 남아있는 거리에 접어들었습니다.
도로 상태 때문에 사극 촬영지로는 쓰이기 어렵겠지만 건물만 잡히게 찍는다면 그럴듯할지도 모르겠네요
대로에서 옆으로 나있는 작은 길로 들어가 보니 길을 따라 수로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크고 작은 옥석들이 숫자가 8만개라는데 구조 하치만이란 이름과 뭔가 연관이 있는 걸까요.
그리고 산 쪽으로 조금 더 나아가니 이곳에도 길 옆에 작은 규모의 강이 있었습니다.
하치만에는 이런 것을 많이 볼 수 있다는데, 뒤편에 보이는 산에서 솟아나는 물이 여기까지 흘러내려오는 걸까요.
국도 472호의 하치만 대교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는 눈길을 끄는 독특한 조형물이 있네요. 바퀴를 반절로 가른 듯한 이 모습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그리고 여기까지 오니 이 주변은 관광지라기보다는 주택가에 가까운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산을 올려다보면
나무 위로 구조 하치만 성이 슬쩍 보입니다. 이번 방문에서는 찾아갈 수 없었지만 다음에 재방문했을 때 보러 가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한여름에 여기저기 등산을 하느라 고생한 개발자분에게 감사를...
성에는 찾아가지 못했지만 의외의 건물을 발견했습니다.
간판을 보니 구조 토종닭을 키우고 있는 양계장인가 보네요.
안을 들여다보니 구조 토종닭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암컷이지만 수컷은 꿩처럼 꼬리가 긴 것이 특징이라는군요.
꿩과 닭 그 중간 정도인가 봅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는데 맛도 그럴까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조사는 되지 않았지만, 이미 본래 구조 토종닭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닭은 20마리 이하가 아닐까 추측되고 있다더군요.
20마리도 안 되는 상황에서 혈통을 유지할 수 있을지, 게다가 그 적은 수도 야생동물이나 도난 등의 피해로 더 줄어드는 사고가 있다고 합니다.
인간 측의 그런 걱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절멸 위기에 처해있지만 토종닭들은 하루하루 힘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리지 않았던 길로 가보니 구조 하치만 역과 마찬가지로 문화재로 등록된 구 하치만 마을 사무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서양풍에다가 일부러 좌우 비대칭의 외관의 변화를 준 목조 2층 건물은, 현재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안에는 기념품 가게나 가벼운 식사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있는 모양입니다.
일본3대 봉오도리 중의 하나라는 구조 오도리 축제 때에는 이곳이 중심이 된다고 합니다.
그 기간은 7월 중순부터 9월 상순까지, 무려 30일 이상. 하치만의 여름은 춤과 함께 한다고 과언이 아니겠네요.
물론 지금은 그런 축제로 사람이 많이 모이면...,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처음에 미륵사 관청 유적군을 방문해서 일까요?
시라카가와고를 향해 가다가 발견한 아미다가 폭포로 가는 등산로입니다.
이곳은 나가시 소면의 탄생지이기도 하지만 이 게임은 먹방 요소보다는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 목적인 게임에다가 이 시기는 나가시 소면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한창 몰릴 시즌도 아니었기에 한적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급경사는 아니고 널찍한 계단이 있는 등산로에 그늘도 져있고 맑은 물도 볼 수 있네요.
옆의 작은 연못에는 지장보살도 있었습니다. 텍스트에서 언급을 안 했으면 물이 있었나 못알아 볼 정도로 맑고 투명하네요.
잠시 숨을 고르라는 듯이 경사가 완만해진 길이 나왔습니다. 물소리와 마음이 상쾌해지는 녹색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삼림욕에 안성맞춤이겠네요.
그리고 눈앞에 세워진 작은 절 같은 건물은 폭포와 같은 이름의 아미다당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마음을 경건하게 가지고 수행하기 좋은 장소라 세워놓은 것 같네요.
조금 더 나아가니 여기저기 이끼가 낀 비석에는 부동명왕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부동명왕이라고 하면 밀교의 근본이자 대일여래의 화신이라고 간주되는 불교의 신앙 대상으로 폭포와 인연이 깊다고는 하는데 지금 찾아가는 곳도 아미다기 폭포라는 이름이고 이곳과 유명한 고승이 연관되어 있는 걸까요?
다시 나타난 경사진 길을 따라가니 점점 파도 소리가 커져 갑니다.
이곳이 목적지인 아미다가 폭포라는 것을 보여주는 팻말을 발견했습니다.
일본의 폭포 100선으로 선정되었다는 아미다가 폭포는 그 낙차가 약 60미터, 폭은 약 7미터.
쇼와 33년에 현에서 지정한 명승이 되었고, 기후현의 명수 50선에도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도아(道雅, 미치미사?)법사가 이곳에서 수행하며 호마의 수행을 하던 중 아미타여래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하여 이 폭포의 이름이 아미다가 폭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長滝(나기타키?)라는 이름의 폭포였다고 하네요. 저 폭포의 이름은 저 도아 법사가 있던 절의 이름과 연관도 있다고 합니다.
폭포 자체뿐만 아니라 판상절리와 주상절리 폭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줍니다.
마그마가 식어서 굳을 때 수축하는 현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화산활동이나 지각변동과 관련하여 계곡이나 협곡에서 많이 관찰된다고 하네요.
거기에 수류와 함께 표출된 단층부가 폭포와 한 폭의 그림 같은 경관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폭포가 떨어지는 깊은 연못 옆에 커다란 불상이 놓여 있습니다.
아까 봤던 부동명왕 비석과 연관이 있을 것 같네요.
이제 다시 산을 내려가서 기후 북쪽으로 향합니다.
국도 156호에서 샛길로 빠지면 찾아올 수 있는 미노의 최심부 시로토리 마을의 이토시로 지구입니다.
원래는 후쿠이현이었던 지역이지만 쇼와 시절 기후현 시로토리 마을과 합병되었다고 합니다.
애초에 구조 번령이었고, 기후현측과의 교류도 왕성했다고 하며 산악지대 안쪽에 있었기에 원래 소속이었던 후쿠이현측과는 교통이 안 좋은 요소 등이 있어서 마을 주민들은 합병에 대해 저항감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얼핏 보기엔 관광지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어 보이는 마을이네요.
농촌 풍경 사이에 까마귀에게서 작물을 쫓기 위해 설치한 허수아비 같은 것도 있고
길을 따라 세워진 개인 주택 마당의 연못에 살고 있는 잉어의 모습도 보이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그런 마을에서 물레방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확히는 물레방아와 연결된 이 기계가 관심을 끈 것이겠네요.
이 기계의 정체는 작은 수력발전기였습니다.
물레방아와 연결된 수로를 따라 가봤습니다
이 마을은 농사에 쓰기 위한 물이 지나가는 용수로에 곳곳에 작은 수력발전기가 설치하여 전기를 자급자족 하는 곳이었습니다
형태도 모두 저마다 특징이 있었으며 농사를 지으며 쓰는 전기 생산에도 사용하며 물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 모습에 산을 깎아내고 대충 모아놓은 태양광 발전 패널과 달리 이상적인 재생에너지라며 플레이어 캐릭터는 이 모습에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소수력 발전이 시작하기 전인 50년 전엔 인구도 4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고 초등학교의 존속도 위태로웠던 모양이지만 겨울에는 눈이 깊게 쌓여 외부와 차단되는 환경에서 자란 마을 주민들은 옛날부터 필요한 것은 밖에서 돈으로 사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다는 문화가 있었고, 이곳의 풍부한 물과 소수력 발전이 조합되어 마을이 필요한 전기를 스스로 생산할 뿐만이 아니라 남는 전기는 전력 회사에 판매까지 하게 되는 정도가 되어 다시 활력을 되찾고 이곳으로 찾아오는 이주자의 숫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겉보기엔 작은 농촌 마을이었지만 의외의 발견을 할 수 있었네요.
그리고 슬슬 스태미나 게이지를 보니 시라카가와고에 도착해도 전부 둘러볼 수 없겠다고 판단이 들어 근처를 배회하다가 나가라카와 원류라고 적힌 간판을 발견했습니다.
엔바라에 비하면 뭔가 좀 아쉽긴 하지만 여기도 괜찮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오른쪽에 보이는 부부 폭포와 폭포의 물을 모두 빨아들이는 듯한 바위들 건너편의 나무에 나가라가와 원류 용수라고 적혀 있습니다
나무 뒷편으로 돌아가 보니
폭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기서도 물이 솟아오르는 곳이 이곳 말고도 여러 군데가 있고 모두 합쳐져서 입구에서 본 강이 되나 봅니다.
부부 폭포는 이곳 외에도 여러 군데 있다고 합니다.
먼저 봤었던 아미다가 폭포에 비하면 규모가 많이 작아 보이지만 높이 17미터, 4층 건물에 필적하는 폭포입니다.
아미다가 폭포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타이쵸 대사라는 사람이 이 폭포에서 목욕재계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상류부의 깨끗한 물에다가 폭포의 기세를 한몸으로 받아내면 영력을 갖출만해보인다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평가에 더해 저는 맷집도 단련될거 같단 생각이 들더군요.
폭포 주변은 깎아내린 듯한 벼랑이 있고 폭포 상부보다 더 높이 솟아나있습니다
바위의 표면은 침식된 흔적은 없지만 강의 흐름으로 깎인 듯한 지형을 하고 있다는 추측을 하는 플레이어 캐릭터는.
수천수만 년의 긴 세월이 새겨져있는 것이라 추측하고 폭포 또한 옛날에는 더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렸을 거라 결론을 내립니다.
그 외에도 피서겸, 삼림욕에 안성맞춤에 국도와도 가까이 있지만 아무래도 주변에 찾아올만한 요소가 적다보니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국도 156호, 히루가노 고원을 지나가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분수령 공원입니다.
그런데 이 공원은 어째서 분수령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까요.
공원의 안내판에는이곳을 확대한 그림이 보이는데 여기서 흘러내려가는 물이 남쪽으로 가면 태평양으로 북쪽으로 가면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동해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일본해라 부르는 곳으로 흘러가니 분수령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모양입니다.
공원 입구에는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메기 머리를 흉내낸 조형물이 놓여져 있네요.
여기서 좌측이 남쪽 오른쪽이 북쪽으로 나뉘는 곳입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진 함께 왔던 물이 이곳을 기점으로 남과 북의 정반대로 헤어져야 하는 거군요.
그리고 공원 한편에는 일굴일간이라는 글이 새겨진 돌이 있었습니다.
이 장소가 개간이 시작된 것은 메이지 40년. 중앙의 교통의 요지치고는 개간이 된지 얼마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장소가 개척되기 힘든 자연조건이었다는 증거겠죠.
히로가노(蛭ヶ野)에 이주하고 개조가 된 사람은 당시 스무살이 넘은 한쌍의 부부였다고 합니다.
원래 습원이었던 이 일대를 지금과 같은 피서지로 만든 그 둘이 이 자연과 얼마나 힘든 싸움을 했었던 걸까요.
농림에서도 이런 개간을 자연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했지만 여긴 매우 처절한 과정이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번에는 댓글에서 요청이 있었으니 기사 쓰는 화면도 다뤄볼까 합니다.
5일째 캠프 화면에서 어떤 기사를 쓸 것인가 고민하다가 태양광 패널의 기사를 적은 것이 기억나서 이번에는 이상적인 재생 에너지 기사를 소개하자는 취지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 기사의 좋아요 댓글 상황을 보니 역시 태양광 패널은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네요. 호의적인 내용도 아니고 이것이 기후의 홍보와 연결될 거란 가능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겠죠.
그에 비해 히요의 사진이 들어간 기후의 마추픽추는 좋아요 189로 처음 올렸을 때부터 꾸준히 상승 중입니다.
이것이 3일째 위의 태양광 패널 기사를 작성하던 날의 마추픽추 좋아요 갯수 35입니다
댓글도 기사 작성되는 즉시 달리고 있었죠.
히요 같은 미인과 데이트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댓글도 있고 기사 제목대로 마추픽추라고 맞장구 쳐주는 댓글.
이건 첫날이었던 세키가하라에 히요와 같이 방문했을 때입니다. 지금은 제일 많은 225 좋아요를 획득한 상태.
마추픽추에 히요와 같이 다니는 걸 부러워하는 사람의 댓글은 첫날 기사인 세키가하라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기후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여행기 작성이라는 목적과 그에 적합한 장소와 사진이면 히로인이 있는 사진보다 더 높은 평가를 기대할 수도 있죠.
이건 3일차에 엔바라의 복류수를 소개한 기사입니다. 사진을 더 잘 조합하면 이거보다 더 많은 좋아요를 받을 수 있죠.
하지만 여긴 좋아요는 많아도 댓글은 안 달리더군요.
그렇다고 히로인이 없으면 무조건 댓글이 안 달리는 것은 아니고 모네의 연못처럼 댓글이 바로 달리는 기사의 경우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히로인이 있으면 괜찮은 수준의 좋아요와 댓글들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 그렇지만 히로인이 없는 사진과 여행기여도 경우에 따라선 더 높은 좋아요와 댓글이 달릴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는 거겠네요.
이번에는 좀 설명이 많이 들어갔네요. 덕분에 분량 조절을 실패했습니다.
시라카와고에 가려다가 어쩌다 미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유적지부터 시작해서 아미다가 폭포, 부동명왕, 불상, 유명한 승려들이 수행한 폭포, 그리고 수력발전.
뭔가 물을 매개체로 묘한 인연이 이어진 듯한 장소들을 방문하게 되었네요.
그렇다고 그 폭포나 유적군에 대한 설명을 빼고 사진만 덩그러니 올려놓으면 허전할 것 같아서, 쓰다 보니 여기까지 이어졌습니다.
각 명승의 설명문에는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 캐릭터가 언급한 내용 위주로 적어뒀습니다.
긴 스크롤이었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이만 5일째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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