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우리나라가 경직화된 이유2013.07.03 PM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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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사상 때문에 우리나라 자체가 경직되어있다는 건 대단히 큰 오산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유교 사상과 크게 문제가 없어요



뭐만 하면 유교 사상하는데, 사실 유교 사상이 극도로 강화된 타이밍은 17세기 전반기에 걸쳐서 일어납니다.



이유는? 임진~정유란을 거치면서 사회적 윤리 붕괴현상의 심화 명나라의 멸망에 따른 중화주의 (문화적 중화주의)가 붕괴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소중화주의의 대두 때문입니다.



여기서 소중화주의를 예속적인 관점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엄밀히 따지면 예속주의적인 관점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문화주변론까지 끌어들여야하니 넘어가고..



그러면 유교주의가 팽배했을 17C에 걸쳐서 일어나는 변화가 무엇이냐.



바로 현재의 가부장적 사회체제의 대두...이긴 한데 제대로 이뤄지지 못합니다. 17C 중엽 이후부터 가부장적 사회 체제가 이뤄지지만

몇세기 만에 단숨에 여성이 존중되던 체제에서 폐쇄적인 체제로 변화가 가능하느냐 하면 안된다는거죠.



실제로 과거 시험에서 4대조를 제공할 때 외조부가 포함되는 것은 조선후기까지 지속되고,



조선 중기의 율곡 이이의 사례나 조선 초기의 양녕대군이 외가에서 자란 것처럼 조선 전기 문집에서



"친손주 따위는 필요없음 외손주가 킹왕짱. 이란 이야기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 줄창 여성의 지위에 대한 17c 중엽~ 후반기의 이야기를 하느냐





그건 사회의 개방성 문제입니다. 유교 체제는 엄밀히 따지면 신라 중기 이후부터 대두되어 고려~조선조를 걸쳐오는 장기간에 걸쳐

불교 철학과 더불어 사회 체제 전반을 덮은 사고 방식입니다.



그러면 17c 이전까지 유교 사상에 의해 폐쇄적인 운영이 있었는가 하면. 아니라는겁니다. 근본적으로 가장 폐쇄적인 측면은 여성에 대한 차별인데



조선 후기에 성리학의 교조화 현상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성의 지위가 하락하거나 사회가 폐쇄적인 체제로 흘렀냐고 하면 아니라는거죠.



결정적으로 노론 소론의 분파 원인은 송시열의 제자였지만 원수가 된 윤증과의 공개적인 대립이었거든요 =ㅅ=

군사부일체? 조까!



다시 말해서 유교적 체제로 우리나라가 폐쇄적으로 변했다던지 뭐 그런건 닭소리입니다.



만약 유교 체제로 인해 국가 사회 전반이 폐쇄성을 띄게 되었다면, 이미 고려 말에 여성의 지위가 하락한다던지 체제가 폐쇄적으로 변하는 면모가 보여야합니다.



하지만 17C 이전까지는 그런 변화가 없고, 17C 전후의 가례 집남 중심의 송시열계에 의한 성리학의 교조화 현상으로 장자중심적 상속체제, 여성의 지위하락이 이어졌으나. 실질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크게 하락했다고 볼 순 없습니다.



물론 상속 제도에서 순위가 밀린다던지 하락하는 양상은 있으나.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폐쇄성을 띄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도데체 우리 사회가 폐쇄성을 띄는 건 언제부터일까요?



네 정답은 일제 강점기 입니다 =ㅅ=



현모양처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유입된, 메이지유신 시대에 개발된 단어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국가전략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여성상은 열녀 효부입니다. 여기서도 차이가 있는게 물론 의견 차이가 있고 과잉 해석이라는 말도 있지만



열녀라고 규정을 했을 때는 말 그대로 여성의 보편성을 인정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현모 양처라는 말은 어머니와 부인이라는 것으로써 여성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어머니~ 부인으로써 역할을 한정 짓는 한계성이 있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요약을 하자면, 우리나라가 폐쇄성을 띄기 시작한 이유는 유교 때문이 아니라는것.

단순히 유교 체제에 의해 폐쇄성을 띄었다면, 자유 연애가 판을 치던 고려~ 조선 초기까지의 형세를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오랜세월 사회가 개방적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17c~19c 단 2세기 만에 사회적 풍토가 크게 변화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 여성의 지위의 하락이란 사회를 통해서 사회의 폐쇄~경직성의 시기를 찾아보면 바로 답은 일제 강점기라는 겁니다.



참고로 고종 연간까지 성균관 학생들이 단체로 정부의 결정에 반발해서 출석도 안하는 등

유교 사회의 가장 큰 덕목은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회가 폐쇄적이고 경직화 되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죠.

물론 그 비판 자체가 부당한 경우도 있지만, 비판 자체가 가능하다는 것은 사회의 개방성을 의미하는 겁니다. (계층의 이념은 둘째치고_





덧// 항상 우리나라 사람들 냄비근성이니 뭐 일제 시대때부터 만들어진 거니 하는데.. 세종 실록을 뒤져보면 세종이



"우리나라 애들은 노는 걸 좋아하고 일을 급하게 하다보니 한달의 기일을 주면 펑펑 놀다가 갑자기 몰아서 급하게 하는 폐단이 있다. 또 좋고 싫고하는 것이 변덕을 부릴 정도로 빨리 변한다."

라고 평가를 합니다. 그리고 이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저런 성격의 좋은 점만 좀 어떻게 가지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죠.



옛날 전공시간에 들은 이야기라 가물 가물..





덧2// 전반적으로 오늘날 우리나라 사회의 대부분의 폐단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조작된겁니다.

조선사 편수회에서 나온 일제식민 사관의 책에서 하는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거죠. 뭐 이래서 역사를 공부해야한다는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이 단결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냥 아직도 혼자 일제 식민지 시대 사는 사람입니다.





덧3// 위에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고요?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넘게 걸릴것이다.



'아베 노부유키' (阿部信行 : 1875~1953) 마지막 조선 총독이죠.






출처: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family/229/read?articleId=17054778&objCate1=&bbsId=G005&searchKey=subjectNcontent&itemGroupId=&itemId=74&sortKey=depth&searchValue=일제&platformId=&pageIndex=1








댓글 : 5 개
저도 일제강점기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비틀려버리진 않았을거라 생각했어요 그런점에서 그 영향을 제거할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를 날려버린 이승만 박사야 말로 지금의 한국을 있게한 근본 원인이라 생각해요.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세끼.
친일파 청산만 제대로 했어도.. ㅠㅠ
으음...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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