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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생일2018.12.07 PM 03:13
생일
올해도 오고 말았어. 오늘은 내 생일이야. 감사 감사 감사.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니까. 적어도 여러분의 박수는 받을 수 있잖아.
나의 생일은 20살부터 끝난 거 같아. 기다려지는 게 아니라 우울한 날. 나이는 몇 살인지 까먹기 시작하는데 이놈의 생일은 잊히지가 않는단 말이야. 나이가 들수록 그 우울함은 늘어나는 것 같아. 지금도 이런데 앞으론 얼마나 힘들까. 여러분들도 그래?
왜 우울한지 생각해봤어. 우선 내가 오늘 컴퓨터를 켜자 제일 처음 본 화면이 뭔지 알아? 네이버 배너가 알록달록하게 바뀌었고, 생일을 축하합니다 라고 적혀있더라고. 무서웠어. 네이버 이 자식들이 날 얼마나 파헤친 걸까? 내 성적취향은 벌써 다 파악했을 거 아니야. 뭐 파악하라지. 이건 문제도 아니야. 축하합니다 라는 말이 문제라고.
나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해 줄 사람은 없거든. 오직 네이버 배너만 말을 해주고 있다고. 뭔가 씁쓸하단 말이야. 차라리 네이버 포인트를 주던가. 그런 점에서 생일이라고 날아오는 광고문자는 양반이야. 걔들은 적어도 쿠폰이랑 상품정보는 준다고. 물론 다 그림의 떡이지.
생일이야말로 자신에겐 최대의 명절이잖아. 크리스마스건 석가탄신일이건 개천절이건 그것보단 더 소중한 날로 만들고 싶은데 말이야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직장인들이 조금 부러워진단 말이야. 회사에서 뭐라도 받을 거 아니야? 아니면 친한 동료와 이야기라도 나누던가. 그게 텅 빈 위로일 수도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결혼기념일이나 배우자의 생일을 잊어버리면 불같이 화내는 장면을 많이 봤는데 이해가 안 됐어. 근데 이젠 이해된다고. 세상의 형식적인 축하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축하를 받고 싶은 거지.
그러나 난 알고 있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건 내 생일이 국경일로 지정되는 것 만큼이나 희박한 일이야. 그렇다고 나 스스로 특별한 이벤트를 열기에는 텅 빈 통장 잔고를 보며 슬픔만 더 해가. 차라리 하루 종일 자버릴까? 어때?
해결을 해야 돼. 이건 국가적인 차원으로 해야 된다고. 생일날 오히려 자살충동을 느껴야 한다니 너무 심하다고. 뭐가 좋을까. 그래 생일날 국가에서 2만원어치 외식 쿠폰을 주는 거지. 어때? 괜찮아? 더 줘야 한다고? 뭔 치킨이 그렇게 비싸. 알았어. 3만원어치로 하자고.
생일날 오전 9시에 문자가 도착하는 거지. **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오늘만큼은 먹어 봅시다! 금 3만원 쿠폰 증정. 주의. 생일축하 가맹 브랜드에서만 사용 가능.
오늘 상상한 것 중에 가장 기쁜 걸. 생일은 기쁜 날이 되고 소비도 증진되고 자영업자도 살아나고 서로 윈윈이지? 보편적 복지를 향해 나아가는 거지.
오늘 생일을 맞은 모든 이를 위하여. 생일 아주 조금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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