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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지구는 둥글까?2019.01.14 PM 06:54
지구는 둥글까?
지구 평면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바보 미친놈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이딴 생각을 하고 있을까? 쯧쯧 무식한 놈들. 근데 찔리는 게 있어. 내가 그들을 멍청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지구가 정말 평평할 수도 있잖아? 안 그래?
물론 동그란 지구 사진을 수도 없이 봤어.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콱 박혔다고. 그러나 내가 직접 확인한 건 아니거든. 여기서 진짜 지구가 둥근지 확인해 본 사람 있어? 없잖아. 확인도 안 하고 무작정 놀리는 건 너무하다고. 상식과 이성이 없는 쪽은 우리였는지도.
그래서 당장 찾아봤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FEIC. 플랫 어스 인터내셔날 컨퍼런스. 이곳은 정말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거 같아. 2020년에 크루즈를 타고 세계를 항해하며 지구가 평평하다는 걸 증명하겠데. 언론에선 둥근 지구를 위해 만들어진 GPS를 사용한다고 까대지만 어쩌라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는데. 이보다 더 투철한 과학정신이 있어? 언론선동이나 하는 기레기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이 학구열 높은 사이트에 매료되어 버렸어. 근데 강의료가 버겁더라고. 온라인 강좌 이틀 듣는데 28달러야. 3만원. 이런 썩을. 그래도 오프라인 강좌보단 싸지. 오프라인은 199달러, 22만원이거든. 나 같은 백수는? 지구 평면설 추종자가 될지도 모르는 가엾은 어린양을 이렇게 내치는 거야?
다행히 무료 강좌가 있더라고. 지져스 할렐루야! 컨퍼런스에서 펼쳐졌던 생생한 강연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었지. 영어로 나오지만 까짓것 번역기 돌려가며 해석해주지! 나는 지금 한 마리의 호모 사피엔스다. 정말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만다!
근데 강좌를 보면 볼수록 이건 아닌 거 같아. 뭔가 엿같이 틀에 박힌 생각을 듣고 있는 거 같단 말이지. 일단 시작은 나사에 대한 공격부터야. 나사가 찍은 지구사진은 다 주작이라는 거지. 각 년도 별 마다 지구 사진이 다르다는 거야. 2012, 13년, 14년 다 달라. 허, 당연하지! 구름이 가만히 있냐! 땅덩어리가 움직이는 건 지구가 팽팽 돈다는 증거잖아!
더 가관인건 구름 사진으로 트집을 잡는 거야. 세상에, 얼마나 유심히 쳐다봤으면 구름 모양 중에 SEX를 찾았다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런 저속한 단어는 나사 직원이 장난삼아 합성했다는 거지. 웟더! 앞으로 요상하게 생긴 구름들은 다 나사의 장난으로 알라고. 특히 SEX! 얼마나 붕가에 열정적이었으면 이걸 찾아내다니!
그러면서 지구 모양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학문을 거론하기 시작해. 생물학! 뭐지? 대체 이게 뭐냐고? 왜 갑자기 지리학, 천문학을 하다가 진화론, 별의 탄생, 침팬지 우가우가가 나오지? 혼란에 빠져 머리를 흔들고 있을 때 선택지를 보여주더라고. 한 쪽은 휘항찬란 빛에 싸인 갓!, 다른 하나는 맛이 간 호머 심슨과 침팬지. 둘 중에 믿고 싶은 걸 선택하래. 믿고 싶은 걸 고르라고? 미친놈아, 이렇게 해 놓으면 당연히 간지나는 갓을 선택하지!
정말 지구가 둥근지 증명하고픈 과학정신? 아니, 여긴 그냥 신에게 딸랑이를 흔들고 싶은 관종들의 모임이었어. 지구는 평평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라 불리는 작자들은 여러분을 신에게서 떨어뜨리기 위해 지금도 선동과 날조를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더러운 악의 축으로부터 맞서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 연구를 도와주십시오! 지구는 평평합니다! 후원계좌 딸라 딸라. 후루릅 쳐묵 쳐묵.
그렇게 신을 칭송하고 싶으면 진짜 우주를 보라고. 너무 거대하고, 너무 딥다크해서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지. 생각도 못할 중력들의 질서를 보면 정말 돌아버릴 거 같다고. 신이란 존재가 절로 느껴질 걸? 사무치게! 내가 신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어. 정말 무심한 분이라는 거야. 우리가 특별하다고? 천만에. 2억년을 지배한 공룡도 한순간에 저세상으로 보내신 분이라고. 아니, 보내신 게 아니라 그냥 지켜보셨지.
워워.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아무튼, 고작 지구가 평평하다는 걸로 위로받지 마. 그따위가 신의 은총이라면 너무 비참하잖아. 다른 것을 사랑하고, 경이로운 관경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축복 아닐까?
플랫 어스 회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글지도 모르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거나 추락사 할 수도 있거나, 4차원 시공간 텔레포트를 하거나, 어떻게 되겠지.
당신의 실험정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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