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린풍자쇼] 훈련소 가는 길2019.01.24 PM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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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가는 길

 

 

 

오늘은 감히 군대 이야기를 할까 해. 여성분들은 따분해 해도 상관없어. 이미 자리에 앉으셨잖아. 나가기 귀찮고 쪽팔릴 테니 이제 내 세상이지. 농담이고. 아니 진담이야.

 

군대의 시작은 훈련소지. 부산에서 논산까지 가는데 버스를 타고 갔거든. 그때 처음 알았어, 입대자만 전문으로 태우는 관광버스가 있다는 걸. 가는 길엔 아무 말도 안 했지. 도살장 끌려가는 돼지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랄까.

 

훈련소 앞 식당에서 딴에는 고길 사먹었는데 맛이 정말 더러웠어. 그러잖아, 훈련소 주변에선 사먹는 거 아니라고. 근데 딴 데서 먹었어도 죽을 맛이었을 거 같아. 혀와 위장이 뒤틀린 상태인데 뭘 집어넣었어도 같았겠지 뭐.

 

입소식이 끝나자마자 질투가 온 몸을 감쌌어. 내 옆에는 카투사에 합격한 부러운 인생들이 있었거든. 모르는 분들을 위해, 카투사는 미군부대로 가. 군생활 동안 맛 좋은 햄버거와 미국식 프리덤을 누리지. 영어도 배워요. 아들이나 남친이 토익 780 넘는다 하면 무조건 찔러보라고 해.

 

아무튼, 둘째 날까진 정말 캠프 온 거 같았어. 그렇게 빡세게 하지 않더라고. 이 정도면 별거 아니네 생각했지. 근데 몰랐던 거야. 진짜 훈련소는 3일째부터란 걸. 3일날 아침 갑자기 모이라 하더니 처음 보는 조교들이 버글버글 해. 목소리엔 욕만 없지 사람 쫄리게 하는 톤으로 말하는 거야. 본능적으로 알았지. ~ 죽었다!

 

훈련소에서 제일 싫었던 건 아침이었어. 여섯시에 깨우는 건 그렇다고 쳐, 아침마다 화장실을 가는데 전쟁이었다고. 방광은 비워야 할 거 아니야. 어떻게 화장실 쟁탈전을 거쳐서 정신없이 준비하고 운동장에 줄서는데 이게 미칠 노릇이야. 매일 아침 조회를 받는다고 생각해 봐. 줄 비뚤어졌다고 소리 듣고, 움직였다고 소리 듣고. 애국가 작게 불렀다고 또 소리 듣고. 그 다음엔 위통 까고 운동장 5바퀴를 도는데 하필 1월이었거든. 더우면서도 추운 엿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지.

 

게다가 이상한 지시가 정말 많았어. 감기 예방한다고 하루에 2리터 이상 물을 마시래. 근데 화장실 갈 시간은 안 줘. 바지에 싸란 말인가? 양치질도 열심히 하래. 근데 씻을 시간을 안 줘. 어쩌라고! 씻으려고 하면 늘 차가운 물만 줄줄 나왔어. 할 수 없이 벌벌 떨면서 샤워했지. 딱 한번 뜨거운 물 나오는 목욕탕에 데려갔거든. 근데 거기서도 씻질 못했어. 5분밖에 안 줬거든. 물만 묻히고 나왔지.

 

그래도 주말에는 휴식시간을 주는데 난 종교 활동에 열심이었지.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에 다 가보고 싶었거든. 근데 다 가진 못했어. 원불교는 사람도 없고 해서 조교가 안 데려가주더라고. 원불교의 심오한 간식 공세를 기대했건만 끝내 알지 못했지. 성당이나 교회에 가면 훈련 끝나갈 사람부터 이제 들어온 신병까지 다 오는데, 거기서부터 계급부심이 시작돼. 겨우 1주 먼저 들어왔네 마네로 어유 불쌍한 것들이라고 내려 보는 거지. 참 웃기지?

 

그러다 어찌저찌 생활하다보면 훈련소가 끝나지. 그리고 본게임이 시작되는 거야. 누군 양구를 가서 망했네. 누군 서울이랑 그래도 가까워서 다행이네. 그 속에서 난 남몰래 사악한 미소를 지었지. 난 따뜻한 남쪽나라, 나의 고향 부산으로 배치 받았거든. 애들한테 미안해서 말도 안 했어. 근데, 후방으로 간다고 다 좋은 건 아냐. 사람이 먼저다! 자기랑 맞는 사람, 양심이 있는 사람 만나야 진짜 좋은 거 다 알고 있지. 그래, 이건 신에게 빌라고.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아무튼 안 바뀐다 해도 바뀌긴 바뀌는 거 같더라고. 내가 11년 군번인데 몇 년 사이 얼마나 좋아졌어. 4조나 들였다는 병영현대화 사업도 거의 마무리 된 거 같고. 월급도 올랐고. 복무기간도 17개월이네! 게다가 올해부턴 폰도 쓸 수 있다며. 잘 됐지. 폰카가 도사리는데 부조리가 살아남겠어? 카메라는 설마 못 쓰나? 군 기밀 센다고 언론에선 걱정하던데 병사는 아무 문제없다고! 병사가 뭘 알겠어. 간부들은 다 카톡 쓰면서.

 

군대 간걸 후회하진 않아. 여러 사람을 만났지. 정말 고마운 분들. 물론 걔 중에는 이가 갈리는 놈들도 있지만 인간 사회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그리고 동기 중 1명은 인생의 친구가 됐지. 나같이 중증 히키코모리가 친구가 생기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군에 가면 다친다, 시간낭비다 하지만 내가 19개월 동안 빈둥거리며 친구를 만날 수나 있었겠어. 이거 인지부조화에 따른 자기위로 아니지?

 

어쨌거나, 곧 군대 갈 인생들 힘내! 난 그 동안 히오스나 해야지.

댓글 : 1 개
  • Yepol
  • 2019/01/24 PM 06:11
읽다가 훈련소 일주일 부심에서 옛생각이나서 피식했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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