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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목표는 참사랑 묘역2019.03.18 PM 09:40
목표는 참사랑 묘역
살면서 잊지 못할 날이 있지. 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장례식장에 왔던 그 날을 잊지 못 해. 맞지 않는 검은 양복, 장례비 400만원에 걱정하며, 내심 화장하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감히 입 밖에 꺼내진 못했어. 할머닌 할아버지 산소 옆에 묻혔지.
그 날 이후로 생활신조가 하나 생겼어. 통장에 400은 꼽아두자. 장례비가 뭐라고. 그렇게 비굴한 느낌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 전국의 백수들 듣고 있지? 파이팅하자고!
그래서 말인데, 오늘 곰곰이 장례에 대해 생각해 봤어. 장래 아니 장례! 엄마, 아빠 장례가 아닌 내 장례 말이야. 어떤 방식이 좋을까?
일단 죽어도 올 사람 없으니 식장이며 빈소도 차릴 필요가 없지. 헐, 근데 장례비용 중 70%가 음식이며 조문객 응대용에 쓰인대. 하긴,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속으로 제발 부조만 하고 바로 가주셨으면 했거든. 에이 못난 놈! 아무튼, 이거 400까지 준비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앗, 부모님까진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아 흑흑 준비해야 구나. 배로. 파이팅!
다음은 방식이겠지. 관 짜서 흙에 묻는 건 싫기도 하거니와 할 수도 없어. 관짝이며 땅값이며 묘비며 너무 비싸다고. 관리해줄 사람도 없잖아. 3달만 지나도 잡초 밭이 될 걸. 게다가 답답할 거 같기도 하고! 생매장의 공포를 죽어서도 맛보고 싶진 않아.
다음은 화장. 요즘은 이게 대세라지? 우리 부모님도 이걸 원하시고. 호. 근데 이것도 뭔가 걸린단 말야. 일단 뜨겁잖아! 불구덩이에 들어간다는 게 좀 그래. 불 때는데 가스며 미세먼지며 환경에도 안 좋을 거고. 이건 아니네.
그럼 수목장은? 말만 들었을 땐 나무 밑에 시체를 묻는 건 줄 알았어. 자기 이름 달린 나무도 생기겠다 식물 거름도 되겠다 살짝 끌렸거든. 근데 나무에 묻기 전에 화장을 하고 묻는 거래. 허허, 그럼 화장이랑 별반 차이가 없잖아? 이것도 탈락.
다른 방법 없을까? 그러던 차에 생각난게 있어. 조장! 여기서 조는 새조야. 조류. 티베트 다큐 같은데서 가끔 볼 수 있지. 시체를 놔두면 독수리가 와서 잘근잘근 다 먹어치우는 거. 호오. 이거 괜찮은데! 부리에 찍히는 게 살짝 아플 거 같긴 하지만 흙바닥에 파묻히는 것 보다, 불에 통구이 되는 것 보다야 낫잖아. 독수리 일용할 식사도 되고. 하늘 쳐다 볼 수 있으니 좋고.
이거이거 독수리 많이 오는 철원 같은데 알아봐야 할까봐. 잠깐! 내 시신을 거기까지 들고 가 줄 사람이 없잖아! 하아, 법으로도 걸리고. 아니다. 차라리 가까운 부산 앞바다에 퐁당 빠져서 물고기, 게 밥이 될까? 근데 물에 들어가는 건 육지동물로서 너무 갑갑한데.
어디 돈도 안 들고, 지인들에게 부담도 주지 않고, 거기에 가치도 있는 장례 없을까? 아! 시신기증! 그래! 이거였어!
각종 대학병원에서 시신기증을 받더라고. 장례비용도 병원마다 다르긴 하지만 그쪽에서 대준대! 아이 브라보. 게다가 죽은 몸뚱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쓰일 수 있잖아! 시신이라도 6시간 안이라면 눈알, 심장판막, 혈관, 뼈 정도는 기증할 수 있다고 해. 뭐 아니면 대학생들 해부자료로 쓰일 수 있고.
알코올에 쪄들어야 하는 게 걸리지만 풋풋한 대학생 누나들이 메스 질을 해준다면야! 시신기증 할 때 꼭 써놔야겠다. 제 고추 해부는 반드시 여성이 하게 해주세요. 모태솔로로 살다 간 인생, 죽어서라도 이성의 손길을 느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시신기증도 점차 늘어나서 줄서야 할 판이 될 거 같단 말이야. 혹시 내가 죽을 때엔 신청도 못하는 거 아냐? 거기다 앞으로는 로봇집도의 시대잖아. 시신실습도 줄어들 거라고. 어어. 선생님, 시신보관소가 꽉 찼어요. 다른 곳에서 죽을 자리 알아보세요. 야! 이게 무슨 소리요 의사양반!
정말 죽기 힘드네. 장례는 자기소관이 아닌데도 왜 이리 고민이 될까. 그냥 운명에 맡겨? 콱 죽고 나면 알아서 하게?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후.
그래도 이왕이면 바다, 하늘 보며 시원하게 죽고 싶어.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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