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린풍자쇼] 니르바나2019.04.09 PM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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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대본을 쓸 때면 음악을 들어. 대개는 클래식이거나 외국음악이지. 뭐 교양 쌓고 영어공부하자고 이런 노래를 듣는 건 아니고. 가사가 없잖아. 있더라도 못 알아듣거나. 요 차이가 꽤 크거든. 귀는 심심한데 가사까지 듣기엔 집중이 떨어지는 그 작은 틈!

 

걔 중에는 멜로디가 정말 좋아서 가사를 찾아본 적도 가끔 있지. , 가사 또한 죽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게 말이지. 아주 가끔 날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어. 멜로디는 심각한 데 가사는 렛츠 붕가 타임! 뭐 이정도야 웃으며 넘길 수 있어.

 

가사 때문에 내 신경을 최고로 긁은 곡은 엘보스코의 니르바나야. 니르바나! 열반! 한번은 들어봤을 건데, 처음엔 소년합창단이 샬라샬라 하다가 도중에 여자가 못 알아듣는 영어로 부르다가 갑자기 남자가 이터널 니르바나, 마이글로리 니르바나~ 하는 곡. 뭔지 알겠지? 감이 안 오면 들어보자.

 

가사를 모를 땐 그저 니르바나 찬양곡인 줄 알았어. 열반이면 부처님이니까, 서양작곡가 중에 부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지었겠거니 생각했지. 형식은 찬송가를 빌려서. 근데 가사를 뜯어보니 아닌 거야!

 

제일 충격은 소년합창단이 부르는 부분이었어. 엘보스코라고 스폐인 소년 합창단. 가사내용은 누가복음 2125절인데, 번역하자면.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웟더! 살벌하잖아! 심판의 날!

 

상상도 못 했다고. 그 청량한 아이들이 뿜어내는, 성스러운 목소리가! 맙소사, 내용은 이렇다니! 마치 이건....칼 들고 히쭉 웃고 있는 미친놈을 맞닥뜨린 기분이지. 웃으면 더 무섭잖아! 배트맨의 조커? 이것보다 더 강렬한데, 목 돌아간 귀신이 배시시 웃고 있을 때랄까.

 

아무튼 다음 가사로 넘어가서, 여자가 부른 부분은 대충 이런 거야. 세상만물과 우리는 그 분과 함께하고 그 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신기한 건 3대종교라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가 다 나온다는 거지. 1절에선 갓, 2절에선 부다, 3절에선 알라!

 

갓하고 알라야 이해가 가. 근데 부처님은 글쎄. 부처님이 천지창조를 언급한 적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 내 말 안 믿으면 종말의 때가 올 것이다 라는 것도 없었고. 그래, 부처님은 자기를 신처럼 따르라 한 적이 없어. 그저 사람으로서 늙고 죽고 병들고 고통 받는 이 엿같은 인생을 미치도록 탐구했을 뿐. 그리곤 깨달으셨어. 그게 뭔지 체감하려면 난 한참 멀었지만.

 

불교도는 아니지만 불편해. 불편! 이 명곡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이렇게 볼 거 아냐. 실제는 전혀 다른데! 갓과 알라랑은! 세계 종교 통합을 위해 3대 대빵들을 모시느라 그랬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가사는 대장에 맞게 좀 뜯어고치지 그랬어!

 

뭐가 좋을까. 내가 불교에 대해 뭘 알아야지 말야. 할 수 없이 경전을 뒤져봤는데 숫따니빠따라고 입에 착착 감기는 책이 눈에 뛰더라고. 그 중에서도 자비에 대한 장!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 자비를. 온 세계에 무한한 자비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자비를.

 

하는 김에 후렴구도 바꿔볼까? 애들 목소리에 맞는 달달한 걸로. . 이왕이면 누가복음 안에서 뽑아 봐야지. 오늘의 가사. 누가복음 1721절 말씀입니다.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아니. 보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부처님도 이 정도 후렴구는 오케이 하실 거 같지? 아무렴,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는 분인데. 예수님도 그래. 사랑스런 애들보고 어, 하필 그 많은 성경내용 중에서 공포의 휩싸일 것이다가 뭐야. 바꾸는데 대찬성하시겠지. 알라께선....크흠. 여기 무슬림인분?

 

이렇게 개사까지 했건만 부족하네. 가사가 뭔 소린지 몰랐던 그 때보다. 차라리 이거 저거 다 잊고 멜로디만 듣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

 

흥얼흥얼 마이글로리 니르바나~ 이터널 니르바나~ 뒤엔 몰라. 흥얼흥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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