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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69정신2019.06.10 PM 10:40
69정신
집주인과 세입자의 미묘한 관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 지금 속 썩고 있는 분? 주인? 세입자? 세입자. 잘 해결되길 바랍니다. 세입자는.....크흠.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해야지 방법이 없습니다! 워워.
지금 집에 세 들어 산지도 5년이 됐어. 언제 이렇게 살았데. 연식이 증명하는 것만큼 주인집이랑 별 문제 없이 잘 살았거든. 그러다 어제였지. 이 평화가 붕괴될지도 모를 진실을 알게 된 게. 마당에 냉장고 한 대가 있는데, 그 전기 먹는 하마가 우리 집 전기를 쓰고 있었어. 한 달 40킬로와트! 여름엔 2배, 80킬로와트!
참고 넘어가? 그깟 전기 좀 빌려줘? 근데 참을 수 있는 금액이 아냐. 80킬로와트로 계산해서 전력구간까지 생각하면 한 달에 근 1만 5천원. 5년이면 얼마야. 90만원! 아파트 사는 것도 아닌데 관리비를 내고 있네? 이럴 순 없지.
근데 막상 말하려니까 걸리는 거야. 아주머니, 여기 냉장고가 저희 집 전기를 먹고 있는데요. 그래? 미안하다 총각. 근데 방 빼. 예? 방 빼라고. 아니면 말 나온 김에 총각. 우리 월세로 하면 안 되나? 예? 월세 싫으면 전세금 좀 올리도. 잘못 들었습니다? 호우!
혼자선 결정할 수 없지. 어려우면 어떻게 해. 헬프 미 마더! 엄마는 기가 차나봐. 이 집 전기를 써? 그래 이상하게 전기세가 많이 나오더라! 니 집에 없을 때 차단기 내리고 나온나. 그럼 저쪽에서 뭐라 하겠지. 엄.....
엄마 말엔 2가지 걸림돌이 있어. 첫째, 내가 집에서 나갈 일이 없다는 것. 엄마도 참, 내가 방구석 인생인거 뻔히 알면서. 에이. 둘째, 차단기 내렸다간 그야말로 전쟁이거든. 냉장고 안에 새우젓, 건어물이 잔뜩 이야. 문제는 냉동고. 뽀얀 분홍색 돼지고기가 있네? 전쟁. 네버. 전쟁.
어떻게든 내 선에서 해결해야 돼. 잠도 못 잤다니까. 히키코모리 소심이가 얼마나 괴로웠겠어. 며칠 더 생각해 봐? 그래, 그러자.....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누구도 백수에겐 전기를 뜯을 수 없어! 빈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거기다 자기는 태양광 발전까지 있으면서!
일요일 오후 1시. 사람이 가장 포만감을 느낄 시간. 벨을 눌렀어. 소국이 대국을 상대해야 할 때. 마당 냉장고가 저희 집으로 연결 돼 있어서요. 하하..... 난 봤어. 긴장감 도는 주인아줌마 눈빛을. 이리 나와 보소. 커헉. 주인아저씨 소환!
침착해. 이건 기회일 수 있어. 아저씨께 차단기 내려가며 설명했지. 야, 이게 느그집이랑 연결돼 있었네. 몰랐다. 복도전긴 줄 알았는데.....에이, 알면서 꼽아놓으셨잖아요. 제 들어오기 전에 전기요금 다 내셨으면서. 물론 이렇게 말한 건 아냐. 속내를 드러내선 안 돼지. 심리학에서 배웠어. 쥐를 쫓을 때도 도망갈 구멍은 하나 남겨둬야 한다고. 그럼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다 몰랐죠. 그럼요.
이거 한 달에 전기 얼마나 묵는지 인터넷에 알아봐라. 히힛! 이미 다 알아왔지요. 바로 80킬로 먹습니다. 당당히 말했지. 그럼 요금이 얼만데? 전력사용량만 봐선 5천 원 정돈데 구간까지 생각하면 만원이 넘습니다. 준비된 거침없는 답변. 면접에서 이렇게 했으면 합격했을 것을.
알았다. 잠시 후 아저씨는 기다란 멀티탭을 갖고 나왔어. 복도에 있는 콘센트랑 냉장고를 연결! 이렇게 쉽게 해결될 것을 지금까지 몰랐다니. 선을 벽 위로 묶으며 인생얘기를 나눴어. 니 취업은 언제 하노? 그게 어렵네요. 야, 엄마도 니만 바라보고 있는데 속이 끓어오를 거다. 예. 여기서 포인트! 자연스러우면서도 애잔함이 담긴 표정! 내가 이렇게 못 산다. 내가 이렇게 불쌍하다를 확실히 어필해야지.
효과는 직빵! 그래, 이번 달에 전기요금 나오는 거 보고 얼마나 줄었는지 말해라. 여기 3년 살았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모르나? 속으론 후훗 5년입니다. 그 동안 낸 거 다 물어줄게. 여기서 덥석 물면 예의가 아니잖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니다. 난중에 꼭 말해라. 알았제. 서로 피해주고 살면 안 돼지. 예. 고맙습니다.......미션 석 섹스.
엄마와 주인집 간 전쟁을 막았어. 전기요금을 줄였어. 거기다 지금까지 물어 온 전기요금도 배상받았어! 이건 기념할 날이야. 6월 9일. 69의 날. 주인집과 세입자가 69정신으로 정의와 평화를 이룩한 날. 이 위대한 업적 뒤엔 백수선생의 고뇌와 외교가 깃들어있다. 크흑.
사실 배상은 받지 않으려고. 돈보다는 의리! 든든하잖아. 방 빼. 어험, 마당 냉장고 전기를 누가 냈었더라, 아, 제가 내고 있었죠? 5년 동안이나. 키야. 편안. 농담이고. 서로 배려하며 사는 게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겠어.
온 세상에 69정신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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