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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살아봅시다2019.06.13 PM 09:56
살아봅시다
우체국쇼핑몰, 예천군 산지직송 양파 5KG이 4,900원! 무료배송! 키야. 이게 웬 떡이람. 평소 6개 2천원 주고 사먹었는데. 핫딜 게시판에 뜨자마자 쇼핑에 들어갔지. 주문! 응? 이미 품절. 아오! 구매 실패.
나의 안타까운 사연이 하늘에 전해져서 였을까, 오늘 양파를 한 소쿠리나 받았어. 그것도 공짜로. 옆집 할머니가 주셨지. 학생, 양파 가져가라. 밑에도 다 줬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많이 주셔도 괜찮아요? 아직 천지빼까리다. 할머님 말 그대로였어. 옥상 구석에는 포대자루만한 양파 망이 2개나 있었지. 썩기 전에 다 먹어치아라. 예스 맴.
뉴스로 대충 듣기는 했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양파 농사가 워낙 잘 돼서 남아돈다는 걸. 얼마나 많으면 밭에 그냥 파묻는대. 그 아까운 걸! 양도 장난이 아냐. 예천군만 1700톤! 이게 대체 얼마야? 상상도 안 가네. 1700톤? 5킬로그램 짜리가 34만개! 호우!
버리지 마세요. 저에게 양보하세요. 너무 속보이나? 아니, 그래도 너무 아깝잖아. 크흑, 이것이 경제학에서 듣기만 했던 수요와 공급의 비탄력성인가! 풍년의 역설? 후우. 너무 소비자 입장에서만 봤네. 지금 제일 마음 아픈 건 농민들일 건데.
그래도 노력하면 본전치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각종 온라인 쇼핑몰이며, 지름게시판을 이용하면. 우체국쇼핑몰만 해도 그래. 클릭 느린 사람은 사지도 못 했어. 옥션, 지마켓, 11번가, 티몬, 쿠팡, 롯데, 신세계. 할 때도 널렸잖아.
이래도 안되면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지. 백종원씨! 내려와 봐요! 아유, 이틀 전에 유튜브 시작했더만 벌써 구독자 100만! 국내에선 최고로 빨리 큰 거 아냐? 아무튼. 이 분이 힘 좀 쓰시면 양파 그까이꺼 타노스 핑거마냥 사라질 걸?
근데 말야. 이렇게 농민들 닦달하는 내 모습이 기만이더라고. 왜? 자, 우릴 양파 농사로 쳐보자. 인간이 남아돌아서 어디 팔리지 않아. 그럼 다 포기하고 떨이로 가? 아님 작업소개소 일용직? 워워. 무슨 그런 백수 코딱지 먹는 소릴!
내가 이러려고 4년제 대학 나온 줄 알아! 등록금만 3천이다! 거기다 자격증이며, 토익이며. 부모님 등골 쪽쪽 빨아서 들이부었지. 면접이 뭐라고 인생에 없는 정장에, 차비에, 화장품에, 머리 손질에, 스피치 학원에!....안 돼. 내가 투자한 게, 아니 부모님이 투자한 게 얼만데. 그런 불안하고 비생산적인 직장엔 갈 수 없지. 암.
차라리 취업을 포기한다! 연애도, 결혼도, 후손도, 노후도, 인생도. 완벽히 폐기처리 되는 삶. 으깨져 거름 신세나 되면 영광이지. 후손들아, 너희들은 자식 농사 흉작 나서 대박 나렴!
농민들 마음이 이렇겠지? 지금 끝까지 판매하는 분들은 정말 불굴의 의지로 하는 거였어. 나도 그래야 할까? 썩어 문드러져도 포기하지 말고? 양파 볶음의 꿈을 가지며....모르겠어.
양파 중에 인상적인 녀석이 있어. 이 와중에도 싹을 틔운 녀석. 물도 없고, 흙도 없는데 초록색 줄기를 뻗어냈네. 그래,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이렇게 살고 싶어. 밭에서 갈리지도, 망태기에서 썩지도 않는 삶. 싱싱한 생명력으로 다시 태어나는 삶!
이런 삶이 대체 뭐지? 아테나 여신께서도 가르쳐 주지 않아. 흠. 한 가지 분명한 건 살아있다는 것! 살아야 알 수 있겠지. 죽으면 다른 양파들이랑 똑같잖아.
살아봅시다! 벽에 똥칠하기 직전까진 잘 살아 봅시다!
그리고 양파, 넌 하루에 한 개씩 먹어치워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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