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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양파링2019.06.17 PM 09:03
양파링
일주일 전이었어. 옆집 할머니가 양파를 한소쿠리나 주셨네? 양파 농가 돕는 셈 치고 하루에 한 개씩 먹고 있지. 맛있어. 맛있는데.....매일 먹으니 벅차. 마치 강박증 환자처럼 양파를 먹고 있어. 하루에 한 개는 먹어야 돼. 점심에 하나도 못 먹었는데 어쩌지. 학학. 저녁에 통으로 갈아먹어야지. 꾸에엑.
처음엔 생으로 먹었어. 제일 간단하잖아. 엄마가 생양파를 좋아하기도 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나쁘진 않은데, 냄새가 어후. 하악! 바로 이 냄새야. 미안. 그래도 괜찮아. 방구석 인생에겐 입 냄새야 아무 상관없지. 문제는 속. 생양파를 집어넣으니 위장이 비명을 지르더라고. 터부룩스. 꺼억 할 때마다 입 냄새와는 차원이 다른 가스가 떠올라. 난감. 생양파는 중단!
그래서 볶았어. 그냥 볶기엔 심심하고, 간장에 볶는 건 벌써 질려버렸지. 설탕에 볶는 무모한 도전도 했는데, 맛은 달아. 아주. 토 나올 정도로. 그래도 설탕은 다음 시도에 비하면 양반이었어. 케첩에 볶아 봤거든. 보기엔 벌겋게 먹음직스러운데 맛은 오우. 가스불이 약해서인지 제대로 구워지지 않아. 케첩과 양파즙이 끔찍한 콜라보를 이뤄 찐득한 진액을 쏟아냈지. 마치 여드름 짜고 나면 나오는 핏물처럼. 으힉!
혼자선 안 되겠다 싶어서 요리채널을 찾기 시작했어. 간단하고 맛있는 레시피 없을까?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제이미 올리버 영상. 정확히 말하면 제이미 올리버 스승 같은 분이었는데, 제나로? 맞나? 아무튼, 요리방법은 심플 그 자체. 양파 껍질 까지도 않고 통째로 굽는 거였어. 군고구마처럼. 너무 쉽잖아! 세계적 요리사가 맛있다 했으니 당장 시도했지.
결과는....왜 제이미 올리버가 사업 말아먹었는지 알겠더라고. 웟더. 껍질 깔 필요가 없다고요? 껍질이 맛있다고요? 야! 불에 구운 양파껍질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어. 내가 나무껍질을 씹는지, 생선가시를 먹는지 모르겠더라니까. 맛, 식감, 목 넘김 모두 미칠 지경! 위장으로 쑤셔 넣는데 증오가 타올라. 말해 봐요.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껍질은 까야 제 맛!
결국 기본으로 돌아왔지 뭐야. 양념, 조미료 다 빼고 순수한 양파로만. 멋대로 다져버린 후 볶았어. 그거 알아? 일정 크기로 자르는 것 보다 그냥 잘게 내려치는 게 속편하고 쉬워. 양손에 칼 들고 설쳐도 돼지. 보기 싫은 사람 생각하면서 시원하게 썰어 봐. 나? 난 착해서 그럴 사람 없어. 양파의 아픔을 느끼며 조심히 다졌을 뿐. 그렇다고.
잘게 썬 효과는 확실했어. 우리집 싸구려 코팅 프라이팬에서도 속까지 잘 익더라고. 노릇하게. 안에 매운 끼, 더부룩 끼가 열기에 타들어가는 냄새가 보여. 먹기도 편했지. 작아서 숟가락으로 퍼먹기 딱 좋거든. 역시 요리의 끝은 순정인가?
다만 이렇게 해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양파혼을 해결할 순 없었어. 바로 항문 사이로 튀어나오는 양파방귀. 호우. 양파 입 냄새가 1단계라면 양파뿡은 그 10배는 족히 넘지. 그 있잖아. 양파 썩은 냄새. 점도와 수분을 뛰는 그 흩어지지 않는 매콤 구수함. 내가 끼고 내가 맡았는데도 속이 울렁거리면 말 다했지. 남이 맡았으면 죽었어.
어쨌든. 양파의 물결 속에 질리도록 먹고 있네. 근데 이것도 한 때의 행복이 될까 무서워. 내년엔 금양파 되는 거 아냐? 풍작으로 말아먹은 다음해엔 귀해진다던데. 크흑. 농민 여러분, 양파 밭 너무 갈아엎진 말아주세요. 짜장면에도 없어질까 걱정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양파농축액 방귀가 나올 거 같아.
- 혁씨
- 2019/06/17 PM 09:53
- 풍신의길
- 2019/06/17 PM 10:01
버터가 생각보다 비싸군요! 수프도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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