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린풍자쇼] 소심백서2020.03.08 PM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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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백서

 

 

일요일 저녁 11! 인간이 가장 서글퍼지는 시간! 다들 잘 보내고 있어? ...오케이!

 

오늘은 내 인생 있어 대뇌 전두엽에 콱 박힌 날이야. 장롱행 시킨 카메라 억지로 꺼내서 동네 한 바퀴 도는데, 맙소사. 급똥 신호가 오네? 공중 화장실 많은 번화가야 아무 문제없지만, 여긴 허허벌판 산복도로! 급할 땐 안 보인다더니 진짜야! 아무리 찾아도 없어!

 

멘탈 승천 상태로 괄약근 꽉꽉 조여 가며 간신히 있을 법한 곳에 도착했는데, 동구 만화 체험관? 맞나? 맞네. 만화 체험관 문을 잡는 순간, 응 안 열려. 끼요옷! 이 시국에 열었을 리가 없지! 코로나가 이런 식으로 날 괴롭힐 줄이야. . 영어도서관, 무더위쉼터도 모조리 아웃!

 

그래도 버틸 줄 알았어. 내가 급식 때 학교에서 똥 한번 안 쌌을 정도로 항문엔 자신 있었거든. ..그러나 버틸 수가 없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똥! 설사와 반죽이 함께 있는 그거! 아항? 이건 아니다, 이건 안 된다! 어떻게든 싸야 한다! 아아, 중딩 때 오줌 지린 거 이후로 이제 똥까지 배출하는 건가!

 

배를 잡고 수정아파트를 지나는데, 호우! 1층 입구 사이로 화장실이 보이는 거야! 여기서 잠깐, 부산 수정아파트라고 정말 오래된 아파트 있어. 화장실을 공용으로 쓰지. ..이거다! 아테나님 감사합니다! 절 버리시지 않는군요. ..했는데. 끄응. 호실별로 자물쇠가 걸려있네? 야이! 아무리 요새 세상 각박해졌다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찰싹!)

 

다행히 앞에 할머니 한 분 보이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가갔지. 그런데 말이 안 떨어져.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 그게 뭐 어렵냐고? 소심 방구석 찐따에겐 어렵다고! ..그러나 일단 살고 보자! 아주머니, 제가 화장실이 급한 데, 화장실 좀 이용할 수 있을까요? 최대한 정중하고 교양 있게! 심지어 할머니 보고 아주머니라 했지.

 

결과는요! 여기 화장실 잠가놔서 못 쓴다. 그리고 집 안으로 그냥 들어가셨어.. 하하하. 내 면상이 범죄형인가? 말투가 이상했나? 아니!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고! 급똥이다, 손이 떨릴 정도다, 살려주세요! 이걸 무시해? 할머니! 부디 화장실에서 똥 싸다 극락왕생하시길 바랍니다. ...! 극락왕생이 나쁜 말 아니잖아! 급똥에 처한 이를 모른 척 한 인간치고 좋은 사람 없어! 할매, 그렇케 살지 마소!(찰싹!) ...죄송합니다. 선 넘었습니다.

 

결국 계획에도 없던 식당에 들어가서 쌌어. 푸드득! 변기를 가득 채우는 맑고 고운 소리. 이 순간, 살아있다는 걸 느낍니다. 크흑! 하긴, 똥 싸려고 7천원을 냈는데 이 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지. 점심을 먹고, 또 먹고! 끄아앙, 울어버릴래. ...? 그냥 화장실만 쓰지 왜 밥은 또 먹었냐고? ! 어떻게 그냥 화장실만 냉큼 쓸 수 있냐! 좀 전에 말했잖아! 나 소심이야!

 

오랜만에 친구 만난다 하면 스마트폰 캐시파일부터 정리하는 인간이 바로 나야.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축적된 귀 핥기 ASMR, 왁싱 강좌, 19금 같은 15, 시미켄 센세의 붕가 테크닉, 숨겨왔던 나경원 베스트까지. 이걸 친구에게 보일 순 없지! 그럼! ...? 어헛! 유비무환이라 하였어! 친구가 내 폰을 들여다 볼 때를 항상 대비하라. 아나스타샤!

 

...크흠. 알아. 이 광기에 가까운 소심함. 왤까? 이유는 모르겠어. ...혹시 청소년기 학교폭력 때문에? 내가 좀 많이 맞고 컸거든, 쑤그리 자세가 그땐 기본 스탠스였지. ! ...아니면 유전자 빨? 흐음, 엄마, 아빠 다 한 성깔 해서 이건 아닌 것 같아.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소심함이 딱히 싫진 않아. 이런 날 사랑해. 이것이 자존감! 소심 이꼴 세심! ..그러나 간혹은 비참할 정도로 내 소심함이 싫어질 때가 있는데, 후우...사랑이 지나갈 때. 내가 모쏠이라 그렇지, 사랑할 기회 아예 없었던 건 아냐! 이 몸을 좋아하는 분도 있었다고! ...내가 몰라봐서 그렇지. 주저하다 놓쳐서 그렇지! 이 멍청한 자식!(찰싹!) 지나간 이야기는 그만!

 

사랑 놓친 거야 내 운명이니 받아들이는데, 친구까지 놓친 건 정말...으휴! 4년 전이었나? 침대까지 같이 쓴 친구가 대뜸 우리 집에 놀러오겠데. 여기서도 소심발동 해서 막았지. 방청소도 안 했는데, 씻지도 않았는데, 야동 폴더도 안 숨겼는데! 오지 마! 절대 오지 마! ..이런 차가운 반응에 친구가 말했어. .., 내일 호주 워홀 가. ...맙소사.

 

친구는 호주산 소고기 공장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나 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이 소심이는 그저 체면 때문에 친구 마음을 끊은 거야. ...아이, 물론 그 말 듣고 부랴부랴 씻고 나갔지만, 분위가가 크흠.... 그 날 이후로 연락이 안 돼. ..**! 내가 미안하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고추라도 빻을게.(찰싹!)

 

고쳐가야겠지? 그래. 알겠어. 노력할게. ..만약 나 같은 소심이가 친구로 있다? 그럼 이해해 줘. 배려해 줘. 이 친구들은 밥 한 끼 먹는 게 전투야. 모든 것이 준비됐을 때 출발할 수 있어. 하물며 집에 놀러온다? 전쟁! 그러니 약속을 천천히 잡아. 한 일주일 전에 잡아도 괜찮아. 이러잖아? 웬만해선 거절 안 해. 이래도 거절하면 아직 우정도가 부족한 거지. ? 소심이가 집에 친구를 부른다는 건, 엉덩이도 내준다는 마인드로 초대하는 거라고!

 

아무튼. 전국 소심이들. 잘 살아보세! 그대 앞에 사랑, 우정, 붕가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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