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프롤로그2013.01.02 PM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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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프롤로그: 스코프 너머로 보이는 이 미래는….

별빛과 달빛마저 숨어 새카맣게 칠해진 하늘. 악마가 엉덩이로 나팔을 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별똥별이 위로 치솟았다.
잠시 후 폭음이 사방을 뒤흔들고, 여기저기에서 주황빛의 꽃이 피어나 하늘을 물들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쇠 비린내 나는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천둥소리 같은 포성과 폭발. 사방으로 튀는 파편과 육편. 전사자 명단을 타이프라팅 하는 것 같은 총성. 고함과 비명이 섞인 짐승 울부짖음 같은 소리 등이 어두운 밤하늘을 뜨겁게 달궜다.

야간 기습작전이 시작된 전장은, 프라이팬 위에 오른 야채들이 마구 휘둘리고 저어지면서 노릇노릇 볶이는 것 같았다.

양 측에서 총성과 포성이 터지는 것도 잠시 뿐. 이내 한 쪽의 총성이 잦아들기 시작하면서, 반대편에서 개미떼 같은 보병들이 참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반대편 참호에서는 보병들이 한두 명씩 달아나기 시작했으나. 그마저도 적의 포탄과 총탄에 찢어진 채, 싱싱한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참호 구석에 숨어 유일하게 죽지 않고 살아남은 한 병사는 총을 끌어안은 채 벌벌 떨었다.

“사, 살려줘. 죽기 싫어. 죽기 싫단 말이야.”

그는 손톱에 피가 묻어나올 정도로 머리를 할퀴면서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런데 그 때 그의 귀에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 드디어 찾았네요. 마스터.”

“그러게 오늘 장사는 공치는 줄 알았는데.”

몇 초 전만 하더라도 시체만 뒹굴던 참호에, 난데없이 남녀 한 쌍이 자기 옆에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흙먼지와 화약연기가 가득한 전장에서 그을음이나 먼지 한 톨. 심지어 피 한 방울도 묻지 않은 깔끔한 모습이었다. 아니 지나치게 깨끗한 건 둘째 치고, 두 사람의 옷차림이 전장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남자 쪽은 만화 캐릭터들이나 입을 법한 파란색과 빨간색이 섞인 전신타이즈. 그리고 여자는 속옷이 다 드러나는 메이드복 차림이다. 전장에 안 어울리는 것은 물론, 평범한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미친놈 취급받기 딱 좋은 모습이다.

“누구냐!”

병사는 크게 놀라 그 두 사람에게 총을 겨누며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전신타이즈 입은 남자 쪽이 먼저 총을 뽑아, 총신을 그의 입술에 갖다 댔다.

“쉿! 잠시만 총을 내려놓아 주실 수 있습니까 고객님? 저희는 싸우러 온 게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러 온 거니까요.”

병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입술에 닿은 총의 차가움에 몸서리치며 조용히 총을 내려놓았다. 남자는 뒤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손을 내밀며 한마디 했다.

“아테네. 그걸 꺼내줘.”

그러자 아테네라고 불린 여자가 금방이라도 훌러덩 올라갈 것 같은 치마 안에 손을 집어넣어 뭔가 뒤적이는 시늉을 했다. 잠시 후 그녀는 치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그러자 남자는 병사에게 종이를 내밀면서 씩 웃었다.

“고객님. 일단 이걸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다 읽고 필요하다 싶으시면 손가락에 침을 발라서라도 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주세요. 만약 필요 없으면 뒤 닦는 휴지로라도 쓰세요.”

그의 태도는 보험 판매원이나 큰 회사의 영업사원 같았지만, 웃음기 섞인 표정이나 진지함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말투는 오히려 광대처럼 보였다.

“무, 무슨 소리.”

그 때 광대 같은 남자의 근처에 포탄이 터지면서, 아테네가 손에 들고 있던 계약서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뒤이어 수십 발의 총탄이 참호 안으로 들어와,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런 상황에도 남자는 느긋한 투로 머리를 긁적이며 혀를 찰 뿐이었다.

“이런…. 간단한 계약 하나도 마음대로 못 하게 만들다니 참 야만적이네.”

잠시 후 남자는 총알이 쏟아지는 한가운데에서도 태연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지는가 싶더니, 뭔가 잡혔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아테네에게 뭔가 뒤집어쓰는 시늉을 했다.

“어이 아테네 그거 준비해. 꽤나 큰 거라고.”

아테네는 잘 익은 배 같은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상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오른쪽 가슴을 마구 주무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녀의 손에 방독면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능숙한 동작으로 방독면을 뒤집어 쓴 다음. 역시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병사의 머리에 남은 방독면 하나를 뒤집어 씌워줬다. 병사는 혹시 화생방 무기라도 되는가 싶어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유심히 쳐다봤다.

놀랍게도 그 남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건 최루탄이나 연막수류탄도 아니었다. 바지를 벗고 엉덩이를 깐 군인 모양의 장난감이었다. 앞부분은 선글라스를 낀 군인이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고, 뒷면은 바지를 벗고 엉덩이를 내민 모습이다. 병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방독면을 썼다는 것도 잊은 채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이, 이런 미친놈!’

하지만 남자는 누가 비웃건 말건 어린아이처럼 씩 웃으며, 엄청난 기세로 달려오는 병사들을 향해 겉보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장난감을 던졌다. 그러자 병사 중 한 명이 반사적으로 그 장난감을 향해 총을 한발 쐈다.
그러자 엉덩이 한 가운데에 큼직한 구멍이 뚫리면서, 풍선에서 바람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미트 칠리소스 같은 짙은 갈색의 걸쭉한 액체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성인남자 주먹 크기의 장난감에서 쏟아졌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오물은, 순식간에 병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아직 뜨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그것은, 미친 듯 달려들던 병사들에게 코가 썩을 정도의 악취와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불쾌감을 선사했다.

“으악! 씨발! 똥이잖아!”

“씨발 어떤 새끼가 맞췄어? 오늘 그 새끼 총살형이다!”

“또, 똥! 우웩!”

효과는 대단했다. 온몸에 갈색 액체를 뒤집어 쓴 채, 바닥에 속이 뒤집히도록 토하는 병사들. 땅바닥을 뒹굴면서까지 온 몸에 묻은 오물을 털어내려는 이들도 꽤 있었고, 총을 바닥에 패대기치며 화를 내는 사람도 많았다. 결국 분노에 찬 고함소리나 탄식소리를 내뱉으며, 너나할 것 없이 돌격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는 곧바로 방독면을 벗어던진 뒤, 코를 움켜쥐며 얼굴을 확 찌푸렸다.

“에이 개미 같은 놈들 꼭 살충제를 뿌려야 조용해지네.”

잠시 후 아테네도 방독면을 벗은 뒤, 이번에는 가슴골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큼직한 빨래집게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자신의 코끝을 찝고 다른 하나는 남자에게 건네줬다. 남자 역시 빨래집게로 코를 찝은 뒤, 헬륨가스를 마신 것 같은 목소리로 병사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아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이 근처에서 군수품 상점을 하고 있는 유리 스타크라고 합니다. 하하 방금 건 새로 개발한 비 치사성을 자랑하는 친환경 화생방 수류탄입니다. 동북아의 어느 반도 국가에서 구한 군사 독재자들의 똥으로 만든 진품이죠. 어때요? 꽤 쓸 만해 보이지 않습니까.”

병사는 한참 동안 입을 벌린 채 유리 스타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아테네가 환호성을 질렀고, 유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 그러면 계약서를 읽어보시겠습니까? 고객님.”

유리는 병사에게 다시 한 번 계약서를 내밀었다. 병사는 잠시 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 남자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그가 내민 계약서를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좋아 이걸로 한 건 성공이군.’

유리는 아테네를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병사가 계약서를 다시 한 번 읽는 동안, 유리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병사에게 볼펜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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