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22013.04.26 PM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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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 대령이 술에 곯아떨어진 지 세 시간이 지날 무렵. 그가 누워 있던 침대가 사정없이 흔들릴 정도의 폭음과 함성 소리. 그리고 콩을 볶는 것 같은 총성이 천막 틈새를 뚫고 대령의 머릿속까지 마구 헤집었다. 커스터 대령은 쇳덩이라도 얹은 것처럼 무거운 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뭐, 뭐야 이게 대체…. 전투라도 벌어졌나?”

커스터 대령은 술과 소음 때문에 욱신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그의 입에서 ‘전투’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튀어나오듯 일어났다. 물론 체형이 체형인지라. 일어나자마자 발을 헛디뎌, 볼링공처럼 땅바닥을 구르며 온 몸에 흙먼지를 듬뿍 묻혔다.

“니미럴! 이 미친놈들이 멀건 대낮에 이딴 구석진 곳을 습격한다고? 말도 안 돼!”

커스터 대령은 대충 먼지를 털어낸 뒤, 식량과 비상용 권총. 그리고 예비 탄창 등을 백팩에 마구 구겨 넣었다. 그리고 일단은 천막을 살짝 걷어 바깥 상황부터 살펴봤다. 커스터 대령의 예상과는 다르게, 연병장 한 가운데에 컨테이너 하나만 달랑 놓여 있고. 그 주변을 장교나 병사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모습만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커스터 대령은 곧바로 백팩을 숨기고 자는 척 해야 할 상황임에도, 그 컨테이너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아니 그것은 ‘컨테이너’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조잡했다. 그건 그냥 거대한 금속 깡통이었다. 스팸 캔 같은 형태에 카키색으로 칙칙하게 칠해져야 할 벽면은 눈이 얼굴의 반이 넘는. 수박 둘 달린 만화풍 미소녀가 헐벗은 그림이 프린팅 되어 있었다.
커스터 대령은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몇 차례나 눈을 비벼댔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다음. 곧바로 천막을 닫으려 했지만….

“어이 대령! 뭐 하고 있는 거야?”

말콤 이병이 재빨리 그걸 눈치 채고 커스터 대령을 향해 총을 겨눴다. 커스터 대령이 천막 지퍼를 올리려 하자. 말콤 이병은 일부러 큰 소리가 나게 노리쇠를 후퇴시킨 뒤,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갔다.

“잠깐 기다려! 설마 또 도망가려는 건 아니겠지? 다들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

그러자 장교들이 나이프를 뽑아들고 앞으로 나와, 천막 입구를 마구 난도질한 다음. 커스터 대령을 천막 밖으로 끌어냈다. 그들은 커스터 대령을 쓰레기봉투 마냥 바닥에 내던진 다음 재빨리 권총을 뽑아 그를 겨누었다. 그리고 장교 몇 명과 부사관은 천막 안으로 들어가, 커스터 대령이 미리 챙겨뒀던 백팩을 꺼내왔다.

“도망가려던 게 맞는 것 같아. 이 새끼 벌써 짐 다 챙겼는데. 아까 그 소리를 폭격으로 착각한 것 같아.”

부사관 한 명이 백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한마디 하자, 다들 배를 잡고 한참 동안 웃어댔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소위가 백팩을 거꾸로 들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죄다 바닥에 쏟았다.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 카키색 레토르트 팩 여러 개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건 둘째 치고 이거 봐. 이 돼지 새끼. 백팩 안에 비상식량이 가득 차 있어. 이거 한 사람이 먹으면 며칠은 버틸 수 있겠는데?”

쉴 새 없이 바닥에 쏟아지는 전투식량과 비상식량 팩을 본 장교들은 얼굴을 확 찌푸렸다.

“우와 이 돼지새끼 좀 보게. 다들 처 굶고 있는데. 보급이 끊어져도 충성으로 버티라던 놈이 이렇게 많이 뒤로 꼬불쳐 둔 거야?”

다들 커스터 대령의 백팩에서 쏟아져 나온 전투식량을 보며 인상을 구길 때, 말콤 이병이 천막을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

“천막 전체를 싹 뒤져봐. 저 인간이 꼬불쳐 둔 건 저게 다가 아닐 거라고!”

말콤 이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교들은 눈을 번득이며 야전삽을 들고, 커스터의 개인 천막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커스터 대령 앞에 전투식량이 한 무더기로 쏟아졌다.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고, 장교와 부사관들은 담배를 꼬나문 채 커스터 대령의 욕을 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스터 대령은 말콤 이병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저 깜둥이 새끼 때문에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저 깜둥이 놈은 죽지도 않나?”

말콤 이병은 커스터 대령의 푸념을 들었는지, 코웃음을 치며 씩 웃었다. 커스터 대령은 다장 그 흑인 병사를 초콜릿처럼 아작아작 씹어대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흉흉한 눈빛을 보내는 장교들이 무서워 이를 꽉 다물 뿐이었다.

“니미. 우리들이 전부 다 처 굶고 있는 동안에 저 새끼 혼자서 이걸 뜯어먹고 버틴 거야? 그렇다고 저딴 돼지새끼를 삶아 먹을 수도 없고”

장교 한 명이 그에게 침을 뱉으며 비아냥거리자, 커스터 대령 역시 화가 머리끝까지 나 욕설을 마구 쏟아냈다.

“이 비렁뱅이 새끼들이 그러는 네놈들이야말로 자기들끼리만 산짐승 생으로 뜯어먹고 다니면서 난 그냥 굶어 죽으라고? 내가 돼지면 네놈들은 쥐새끼냐?”

울부짖음에 가까운 커스터 대령의 항의에, 상사 한 명이 야전삽을 들고 그의 머리통을 내리 찍으려 했다. 그러자 말콤 이병이 그의 앞을 가로막은 뒤, 야전삽을 내려놓게 했다.

“가만. 지금은 죽이지 말자고. 저게 뭔지는 알고 죽여야 찜찜하지 않을 것 같단 말이야.”

말콤 이병은 연병장 한 가운데에 있는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커스터 대령의 무릎을 군홧발로 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군홧발 끝이 커스터의 무릎에 닿자, 커스터 대령의 찢어질 것 같은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어나! 안 그래도 부르려던 참이었는데 잘 되었어.”

커스터는 눈물을 찔끔 머금은 채, 무릎을 감싸 쥐면서 일어났다. 말콤 이병이 커스터 대령의 손목을 틀어쥐고 컨테이너 앞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커스터 대령이 말콤 이병을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미친 놈 차라리 지금 여기서 죽이지 무슨 개수작을 벌이려고 그러는데?”

“개수작? 식량 몰래 꼬불쳐 두고 폭격이 난 것 같으니까 곧바로 부하 버리고 도망가는 건 개수작이 아니고? 우리한테는 충성을 바치라면서 뒷구멍으로 빠지는 지휘관 좀 보라고. 정말 멋진데.”

말콤 이병은 다시 한 번 군홧발로 무릎 안쪽을 걷어차며 이죽거렸다. 커스터 대령은 균형을 잃고 다시 한 번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정도쯤 되면 상관 부하 수준을 넘어, 인간적으로도 참을 수 없는 지경이라 할 만 하겠다. 결국 커스터 대령이 크게 화를 내며 말콤 이병에게 달려들었다.

“이 자식이!”

하지만 말콤 이병은 서류 한 장 내미는 걸로 커스터 대령을 간단히 막아냈다.

“이거나 읽어봐.”

커스터 대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콤 이병이 내민 서류를 조용히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빨갱이들한테 세계를 수호하는 국제경찰 메리아카 국의 군인 여러분. 저는 최근 이 근처에 조수 아테네 양과 함께 군수품 상점을 차린 유리 스타크라고 합니다. 요즘 남 콘베트의 빨갱이들이 파리나 모기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죠? 그런데도 아둔한 메리아카 천민 출신 군발이들은 메리아카의 숭고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툭하면 탈영이나 하극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뭐 저 같아도 탈영하거나 하극상을 저지르겠지만 말이죠. 메리아카의 숭고한 이상은 어디까지나 록히드 마틴이라거나, 아말라이트 사. 혹은 크라이슬러 같은 곳의 회장님들 뱃속에서 나오니까 말이죠.’

여기까지 읽은 커스터 대령의 이마는 마치 불알 마냥 쭈글쭈글하게 변했다. 그는 종이를 확 구긴 다음, 마구 찢어발기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런 빨갱이 새끼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이따위 삐라를!”

커스터 대령이 찢어진 종이를 생일파티용 꽃가루 마냥 사방에 흩뿌리자, 말콤 이병이 실실 웃으며 종이 한 장을 더 내밀었다.

“그럴 줄 알고 같은 걸 한 장 더 준비했다는군. 열 받더라도 참고 다 읽어. 또 찢으면 이번에는 네놈 몸뚱이가 찢어질 테니까.”

커스터 대령은 말콤 이병에게 종이쪽지를 뺏어가듯 받아들었다. 그 모습에 장교 한 명이 야전삽을 들어 올렸지만, 말콤 이병이 그의 손을 꽉 잡아 커스터 대령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갈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커스터 대령은 온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벌벌 떨며 그가 내민 쪽지를 읽어나갔다.

‘아 그래도 여러분들을 비꼬거나 비하할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 의미에서 커스터 대령님의 부대에 식량을 포함한 온갖 보급품이 가득 들어있는 ‘약탈품 통조림’을 선물로 보냈습니다. 단. 열쇠는 대령님께서 저희 가게에 오셔야만 드리겠습니다. 아 너무 짜증내지 마세요. 대령님만을 위한 물건도 있으니까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약도는 두 번째 종이 뒷면에 있으니 이건 절대 찢으시면 안 됩니다?’

커스터 대령은 종이를 대충 접어 제복 상의 주머니에 구겨 넣은 뒤,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콤 이병에게 따져 물었다.

“이게 대체 뭐하자는 거야?”

말콤 이병은 커스터 대령의 발밑에 지휘관용 험비 키를 던졌다.

“뭐긴 뭐겠어. 운전병 하나 딸려 줄 테니까 그 유리 스타크인지 유리병인지 모를 싸이코 자식의 군수품 매장에 다녀오라는 거지.”

“씨발. 니들은 대가리도 없냐? 그냥 공구로 자물쇠만 뜯어내면 되잖아!”

커스터 대령이 험비 키를 발로 걷어차며 비아냥거렸다. 이에 말콤 이병이 총구로 커스터 대령의 배를 쑤시며 받아쳤다.

“너야말로 눈이 없냐? 컨테이너 쪽 바닥을 잘 봐.”

말콤 이병이 가리킨 곳을 보자, 그곳에는 이빨이 죄 나가버린 절단기와 탄피. 찌그러진 탄두 등이 마구잡이로 널브러져 있었다.

“무슨 수작을 부려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자물쇠 하나 따려고 총알을 몇 백발이나 쏟아 부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어. 아무래도 네가 가서 열쇠를 받아와야만 할 것 같지 않아?”

‘씨발 그러면 방금 전 총 소리는 고작 저 자물쇠 하나 따려고 난 거야?’

커스터 대령인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콤 이병에게 따져 물었다.

“내가 뭐 하러?!”

“그러면 여기 있는 병사들하고 우리들을 전부 굶기려고? 지금 우리 부대가 누구 때문에 보급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이 되었지?”

커스터 대령은 말콤 이병의 한마디에 입을 꽉 다물었다. 방금 전 ‘식량’이라는 단어에 눈이 벌개졌던 병사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말콤 이병을 필두로 당장에라도 돼지 멱이라도 딸 것 같은 백정 같은 장교들의 눈초리도 다시 떠올랐다.

“다녀 올 테니까 다들 얌전히 있어!”

커스터 대령은 허리를 숙여 차 키를 주운 뒤, 원주민 병사 중 차를 몰아본 적이 있던 사람 하나를 골라, 그의 멱살을 붙잡고 운전석에 앉혔다. 원주민 병사가 떫은 표정을 짓자 커스터 대령은 목에 차고 있던 금목걸이를 풀어 그에게 던져줬다. 그제야 원주민 병사는 시동을 걸었고, 말콤 이병을 포함한 장교들은 그 모습을 보고 배를 움켜쥐며 마구 웃어댔다. 커스터 대령은 뒤를 한 번 돌아본 뒤 바닥에 침을 뱉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이 새끼들 전쟁 다 끝나고 나면 두고 보자.”

그는 병사들도 그에게 여러 번 중얼거렸을 법한 말을 던진 뒤, 곧바로 주머니에 들어있던 약도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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