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42013.04.27 PM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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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두 시간 쯤 뒤에야 햄과 베이컨이 담기 접시. 술병과 스트레이트 잔. 주얼 케이스 두 개가 담긴 큼직한 손수레를 끌고 응접실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속옷과 가슴골이 다 보일 정도로 짧은 메이드복과, 마치 유리로 만든 것처럼 매끈하고 윤기 있는 니삭스를 신은 상태였다. 물론 얼굴에 칠했던 녹색 페인트는 죄다 지웠다. 전체적으로 선이 제법 가늘고 둥근 편인데다가, 곱고 미끈한 얼굴에는 수염 한 점 없었다. 그리고 반쯤 드러난 새하얀 가슴과 다리에도 털 한 올도 없어, 어지간한 젊은 여자들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유리는 두어 번 문을 두들긴 뒤, 아무 반응이 없자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응접실의 모습을 보며 입을 가린 채 소리죽여 웃었다. 응접실 테이블은 크림 같은 하얀 액체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커스터 대령은 바지가 벗겨진 채 어항 밖에 내놓은 금붕어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아테네는 혀를 내밀어 입가에 흘러내리는 하얀 액체를 핥아 먹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분 탓인지 커스터 대령의 볼링공 같던 몸뚱이가 볼링 핀처럼 변한 것 같아 보였다.

“아 제가 너무 늦었나요?”

유리가 한마디 건네자, 커스터 대령은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것 같은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

“주, 죽을 지경이야. 아, 아니 뭐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하하하.”

유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스트레이트 잔에 술을 한 잔 따라, 그의 입에 부어넣었다. 그러자 커스터 대령이 정신을 차린 뒤, 바지를 추슬러 입었다.

“고맙네. 이제 좀 기운이 나네.”

유리는 그 술을 다른 잔에 따라 한 입에 털어 넣은 뒤, 씩 웃으며 설명했다.

“아 이건 어떤 나라의 군사독재자가 정력제 대신 즐겨 마시는 ‘시바스리갈’이라는 술이죠. 이거 한 잔이면 머리에 총 맞고 축 늘어진 거시기도 발딱 일어납니다.”

커스터 대령은 동시 참전한 동맹국의 대통령을 떠올리며 쓴맛이 남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유리는 나이프를 집어 들어 접시 위에 올라와 있는 햄 덩어리를 얇게 썰어냈다.

“술만 마시면 좀 뒷맛이 쓰니까 이것도 드시고 기운 좀 차리실래요? 도이센국의 특산물 아우슈비츠 햄입니다. 이스릴 산의 고기를 치클론B로 소독하고 훈증처리해서 그 맛이 아주 기가 막히죠. 특히 시바스리갈과 함께 먹으면 훨씬 맛이 좋아지는 별미입니다.”

유리는 손수레에서 햄이 담긴 접시와 시바스리갈 병을 집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커스터의 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쥐어줬다.

“아, 그래 잘 먹겠네.”

커스터 대령은 유리에게서 포크와 나이프를 받아든 뒤, 접시 위에 있는 햄을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가려 했다. 그 때 접시 위에 올라와 있는 햄 덩어리가 오른쪽 귀가 잘려나간 사람 머리통으로 변해, 썩어서 물이 간 눈으로 커스터 대령을 노려보고 있었다. 특유의 곱슬머리와 큰 코. 그리고 두툼한 입술 등이 마치 이스릴 국의 쥬데인 남성과 비슷하게 보였다.

커스터 대령은 크게 기겁하며, 용수철이 튀듯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대령님?”

그러자 유리는 느긋한 태도로 접시 위에 올라와 있는 햄을 썰어먹으며, 커스터 대령에게 남의 일이라도 보는 것 같은 투로 한마디 했다. 커스터 대령은 고개를 마구 흔들어대며 유리가 먹고 있는 얇은 고기조각을 쳐다봤다. 유리가 썰어내서 입으로 가져간 건 분명 고급 햄이었다.

“아, 아냐. 잠깐 헛것을 본 모양인 것 같아.”

커스터 대령이 한숨을 내쉬며 포크를 입으로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포크에 찍혀 있는 건 햄 조각이 아니라 사람의 오른쪽 귀였다.

“으, 으악!!”

커스터 대령은 크게 놀라 포크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러자 유리가 접시를 치우면서 팔뚝만한 햄을 통째로 들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이런 이 맛있는 걸 안 드시는 건가요? 그러면 다른 걸 가져올까요? 이번에는 이스릴 제 백린연막탄으로 바삭하게 구운 팔라스틴 베이컨인데.”

유리가 또 다른 고깃덩어리가 올라와 있는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커스터 대령은 기겁하며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 사양하도록 하지.”

그러자 유리는 씩 웃으면서 접시와 술병을 다시 손수레에 담고, 주얼 케이스 두 개를 집었다. 왼손에 들어있는 건 금색 케이스였고, 오른손에는 은색 케이스를 쥔 상태에서 그대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유리는 손바닥을 팔랑거리며 손수레를 가리켰다.

“아테네 이것들은 나중에 저녁식사 때 쓰게 치워주세요.”

아테네가 술과 안주가 담긴 손수레를 끌고 응접실 밖으로 나가자, 커스터 대령은 헛구역질을 참아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터번 두른 남자의 머리통을 내놓을 것 같단 말이야. 이 미친놈들’

유리가 그런 커스터 대령을 빤히 쳐다보자, 괜히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았다.

“운전병 녀석이 아직 밥도 못 먹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빨리 막사로 돌아가서 얼마 없는 전투식량이라도 먹여야지.”

“흠 그렇군요. 의외네요. 대령님의 입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으니 서두르라는 말이 나오는 건 둘째 치고, 병사들한테 식량을 나눠준다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커스터 대령이 순간 불쾌한 표정을 짓자, 유리는 무슨 일 있었냐는 식으로 주얼 케이스를 커스터 대령의 앞으로 밀었다.

“그러면 바로 물건 설명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유리는 장식장에서 장난감을 몇 개 꺼냈다. 하나는 뚱뚱한 괴물 형상의 액션 피규어였고, 다른 몇 개는 화려한 복장과 무기가 눈에 띄는 히어로 액션 피규어였다. 그리고 액션 피규어 중 하나는 짧은 곱슬머리의 흑인 캐릭터였다.

“요즘 대령님 꼴이 말이 아니죠? 대령님은 항상 최선을 다하는데 밑에 있는 녀석들이 죄다 속을 썩이고 있지 않습니까?”

유리는 흑인 캐릭터를 집어 발로 걷어차는 자세를 잡은 뒤, 그것을 괴물의 배에 갖다 댔다. 그러자 순간 커스터 대령의 배에서 불쾌한 소리가 흘러나오며, 그의 얼굴 표정이 말린 대추처럼 쭈글쭈글해졌다.

“부하들 중 한 명은 아예 작정하고 대령님을 죽이려고 하지.”

뒤이어 유리는 다른 히어로 피규어들의 자세를 잡아준 뒤 진을 치듯 빙 둘렀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괴물 피규어를 배치해, 마치 괴물이 히어로 군단에게 몰매를 맞는 것 같은 모습을 만들었다. 동시에 커스터 대령의 온 몸 곳곳이 얻어맞은 것처럼 쑤시고 저려와, 그의 얼굴이 얻어맞고 있는 괴물 피규어 마냥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멍청한 장교들은 그 빨갱이 병사의 선동에 죄다 놀아나고 있는데다가, 원주민 병사들은 말도 안통하고 참 답답하지 않습니까?”

유리는 장식장에서 또 다른 괴물 피규어를 몇 개 꺼내, 흑인 캐릭터 하나를 제외한 히어로 피규어를 죄다 치운 뒤 괴물 피규어를 그 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흑인 히어로 피규어를 바닥에 눕힌 뒤, 그 주변을 괴물 피규어로 둘러쌌다.

“지금 대령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말 잘 듣는 부하’입니다. 맞죠?”

커스터 대령은 순간 왼쪽 입 꼬리를 쭉 찢어 올리다가, 크게 한숨을 내 쉬며 아쉬움이 담긴 투로 한마디 던졌다.

“그, 그렇지.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야?”

그러자 유리는 손뼉을 치며 한 바퀴 빙 돌았다. 가뜩이나 치마가 짧은 덕분에, 엉덩이에 테디베어가 그려진 분홍색 속옷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두 다리를 모은 채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환하게 웃었다.

“물론 여기서는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죠.

“아테네 양. 충분히 즐겼으니까 이제 슬슬 일 해야죠.”

유리가 말을 마치자마자, 아테네가 응접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번에는 유리와 똑같은 디자인의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춤을 추듯 응접실 안으로 뛰어 들어와, 유리와 손을 맞잡고 뺨을 붙인 뒤 활기찬 투로 외쳤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자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상품 소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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