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활짝 열린 병원.] 활짝 열린 병원 12013.04.30 AM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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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의 시작은 구인광고지에서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격일제로 환자 관리를 할 보호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그 당시에는 단순히 격일제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전화 끝에 인사 담당 직원과 면접을 봤을 때. 면접을 담당했던 분이 나한테 가장 먼저 이런 말을 했다.

“자네 아직 이십대인데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젊은 것 같아. 잘 할 수 있겠어?”

그의 질문에 나는 약간 쓴 맛이 배인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어지간한 일은 다 해봤습니다.”

면접을 담당하던 사람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이리저리 죽 훑어봤다. 괜히 불안해지긴 했으나 그런 기색을 쉽게 드러낼 수 없었다. 몇 번의 경험 덕분에 면접은 기싸움이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게 보통 일은 아닌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뭐 어쨌건 신체 조건은 아주 좋으니까 기회가 닿으면 연락을 줄게.”

그 때 담당관은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지만, 내 눈에 그의 표정이 굉장히 어두워 보였다. 그래도 나는 아직 젊기에 잘 될 거라 생각하고 그 자리를 물러났다. 그렇게 면접을 본 지 두 달은 지난 뒤에야 다시 연락이 왔다. 다시 한 번 면접을 보고 며칠 교육을 받아보라는 얘기였다. 그 때 나는.

“그러면 그렇지. 내가 뭘 못하겠어!”

그렇게 기세 좋게 혼잣말을 내뱉으며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작 업무 교육을 시작하기 위해 병실로 올라가자마자,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썹을 찌푸리며 주변을 죽 둘러봤다. 의외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 박혀 있던 정신병원은 절규와 비명. 그리고 실없는 웃음과 그걸 힘으로 제압하는 근육질 보호사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병실의 풍경은 그냥 잔잔하고 너무 한가하다 못해 심하게 늘어져 보였다.

일단 크게 비명을 지르면서 막 때리고 뒤엎거나 서로 싸우는 환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따금씩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떠드는 사람이나, 환자복 입고 패션쇼를 하는 것처럼 복도를 계속 도는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는 병실 안에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 처음 인상은 그냥 양로원이나 일반 병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몇 분 뒤에 이런 내 첫인상을 계란 껍데기처럼 확 깨 버리는 일이 생겼다.

“보호사님 얌전히 있으면 이번 주말에 면회 돼요?”

“너 내가 뭐라고 그랬어? 자꾸 이렇게 CR실 밖으로 나오면 면회고 뭐고 없다고 그랬지? 빨리 CR실로 돌아가!”

교육 담당 보호사가 크게 화를 내며 그녀를 밀어내자, 그 환자는 억지로 버티면서 기관총 쏘듯 계속 질문을 쏟아냈다.

“보호사님 면회 돼요? 면회 돼요? 이번 주말에 면회 되요?”

교육 담당 보호사는 아예 그녀의 질문을 무시해버렸고, 그 환자는 나한테까지 매달려서 질문을 쏟아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못 들은 척 했다. 결국 교육 담당 보호사가 발끈하면서 손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했다.

“했던 말 자꾸 반복하지 말랬지? 너 한 번 더 RT끈에 묶이고 싶어?”

교육 담당 보호사의 큰소리에, 그 환자는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처럼 짐승 울음소리 비슷한 괴성을 질러댔다. 주먹 두 개가 들어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린 채 목이 터져라 울음소리를 토해내는데, 거짓 하나 보태지 않고 창문이 뒤흔들릴 지경으로 소리가 컸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으려 했으나, 그 직후 벌어진 광경에 나는 곧바로 입을 가렸다.

교육 담당 보호사는 숙련된 동작으로 그녀의 목을 팔로 휘감아 살짝 조르고, 다른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그녀를 병실로 끌고 가 침대 위에 패대기쳤다.

그 다음 아예 병실 침대 위에 묶어둔 유도복 끈으로 그녀의 팔 다리를 꽁꽁 묶어놓았다. 그러나 그 환자는 다리까지 묶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교육 담당 보호사가 그녀의 얼굴을 베게로 틀어막아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베게를 떼자마자 귀신들린 것처럼 고개를 마구 흔들어대며 소리를 질렀다.

결국 보호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문을 꽉 닫아두긴 했지만 그녀가 지르는 소리는 복도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컸고 다른 환자들은 짜증을 내며 한 마디씩 빈정거림을 내 뱉었다. 그녀는 딱 봐도 어린애같이 생긴 환자였다.

툭 튀어나온 배. 살이 투실투실하게 붙다 못해, 물에 불린 빵 같은 얼굴. 특히 이빨이 앞니 한두 개 빼고는 거의 다 썩어 있어 하마처럼 보이는 입이 가장 인상 깊었다. 거기에 목소리와 말투. 특히 방금 전, 질문에 대답 안 한다고 소리 지르고 우는 모습은 영락없는 갓난아기였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하고, 아직도 병실에서 울어대고 있는 그 환자를 유심히 쳐다봤다. 하지만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르는 통에 나는 귀를 틀어막고 다시 보호사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내 교육을 담당했던 보호사가 나한테 질문을 던졌다.

“야 방금 저 환자 몇 살로 보이냐?”

나는 입술을 축 늘어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봤자 중학생 이상 되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진짜 하는 행동을 보면 초등학생 몸뚱이 안에 갓난아기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많이 쳐 줘도 초등학생으로 보입니다.”

잔뜩 굳어 있는 채로 내뱉은 내 대답에, 교육 담당 보호사는 피식 웃으며 방금 그를 귀찮게 했던 환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쟤 말이야 너랑 나이가 똑같아. 스물일곱이라고.”

“예?”

나는 크게 놀라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교육 담당 보호사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실실 웃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린 채 아직도 그가 말한 걸 머릿속에서 되감았다가 재생했다.

“안 믿기지? 나도 처음에는 안 믿었다. 어쨌건 쟤가 요주의 인물 1호야. 며칠 좀 더 있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될 거다. 아니 오늘이라도 확실히 알게 될 걸.”

그 덕분에 내가 병원에서 가장 먼저 그 환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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