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아름다운 구속] 아름다운 구속 52013.04.30 PM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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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의 부축을 받아, 아니 강력반 형사에게 연행되듯 버스 밖으로 끌려나오자. 교수님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마치 나와 ‘킹콩’을 피하는 것 같은 눈치였다. ‘킹콩’은 그걸 눈치 챈 건지 아니면 모르고 있는 건지,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한마디 했다.

“선배 우리 둘만 있으니까 너무 오붓하고 기분 좋다. 선배. 기분은 어때?”

나는 그대로 머리를 땅에 파묻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랬다가는 진짜 사복형사한테 연행되는 용의자처럼 될 것 같아 억지로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그러자 ‘킹콩’은 여지없이 내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한마디를 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녀서 기분이 울적해 보였는데. 다시 고개 들었네 그래도 내 덕분에 좀 풀렸지 선배?”

이번이 세 번째다. 맥주병을 집어 들어 ‘킹콩’의 머리통을 후려칠 생각 말이다. 아니 진짜로 횡단보도 앞에서 밀어버릴 생각도 몇 번 했다. 하지만 내 허벅지보다 굵은 ‘킹콩’의 팔이 내 팔을 조여들 때마다, 이내 ‘킹콩’이 내 머리를 토마토처럼 짓이기는 광경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그 외에도 얼음물이 든 병을 던졌던 교수님의 싸늘한 시선이나, 다른 선후배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다시 떠올라 그냥 한숨을 쉬는 걸로 눈물을 삼켰다.


“선배. 저기 배경 좋다. 우리 저기서 사진 찍어달라고 하자!”

‘킹콩’은 울타리 쳐진 바닷가 절벽을 가리키며, 나를 그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날 거기다 패대기치듯 놔둔 뒤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슬슬 눈치를 살피려 도망가려 했지만, ‘킹콩’은 그럴 여유조차 주지 않고 재빨리 누군가의 손을 잡아끌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킹콩과 손을 맞잡고 함께 달리던 여자는 바로 ‘나가요’였다.

“어머. 결국 둘 다 성공했네. 선배 제가 소개시켜줄 필요가 없었네요. 축하해요 선배.”

“자, 잠깐 설마 니가 말한 그 친구가?”

“맞아요. 선배. K얘가 선배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저도 조금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라고 얘기했는데, 그게 잘 통한 것 같네요. 저 잘 했죠? 선배. 제가 이래봬도 커플 만들어주는 큐피드에요.”

‘나가요’는 환하게 웃으며 나와 ‘킹콩’을 축복하는 한편. 능력 같지도 않은 능력을 신나게 떠벌려댔다. 아니 그 인간에게는 축복일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저주일 뿐이었다. ‘킹콩’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나가요’에게 한껏 자랑했다.

“응 역시 내가 용기만 내면 다 된다니까. C 선배가 나한테 넘어온 거 봤지? 역시 나 정도 되는 여자는 어디 가도 없다니까.”

나는 ‘킹콩’이 터진 입으로 마구 뿌려대는 말에 이를 꽉 다물었다. 여기에 ‘나가요’는 ‘킹콩’이 불이난 주유소에 신나를 뿌린 것도 모자랐는지, 아예 폭약을 던져 넣기까지 했다. 그리고 벼랑 끝에 내 몰린 내 등을 확 밀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게 둘이 잘 어울리네. 내가 사진 한 장 찍어줄게 어때?”

‘나가요’는 카메라를 흔들면서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그 때부터 나는 ‘나가요’의 별명을 ‘마담 뚜’로 바꿨다. 나는 ‘마담 뚜’의 제안에 황급히 달아나려 했으나, ‘킹콩’은 병아리 낚아채는 독수리 마냥 날 붙잡았다.

“에이 선배. 남자가 그렇게 부끄러움 타면 안 되죠.”

그 다음 날 뼈 으스러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끌어안고, 얼굴은 내 뺨에 바짝 들이민 채 다리 하나를 들어 사진 찍을 자세를 취했다.

“고마워. 그러면 바로 한 장 찍어줘. 학교 홈피에 올리게.”

나는 학교 홈페이지에 이런 끔찍한 사진이 오른다는 소리에 재빨리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압착기 같은 ‘킹콩’의 팔 힘에 짓이겨져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신음소리만 토해냈다. 그 모습을 본 ‘킹콩’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뺨에 가지만한 입술을 바짝 붙였다.

“에이 선배 얼굴이 너무 안 좋다. 이거 받고 활짝 웃어야지.”

순간 축축한 것이 내 뺨에 닿는 불쾌감은 마치 구더기나 거머리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킹콩’의 수박만한 머리통을 밀어내며 인상을 확 구겼고, ‘킹콩’은 입술을 죽 내밀며 더욱 바짝 들이밀려 했다. 그리고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그 추악한 모습은 ‘마담 뚜’의 카메라에 담겼다.

“아, 안 돼!”

사진 촬영이 끝난 뒤에야 ‘킹콩’은 나를 풀어줬다. 그와 동시에 나는 사람들이 보고 있음에도 힘없이 주저앉았다. ‘킹콩’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내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선배 아직도 몸이 다 낫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계속 같이 가 줄게.”

그 다음 ‘마담 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씩 웃었다. 그리고 ‘마담 뚜’역시 엄지손가락을 세워 올리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킹콩’은 종종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나는 ‘마담 뚜’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사진 나오면 꼭 과 홈페이지에 올려줘. 알았지!”

그 한마디에 결국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중에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킹콩’의 등에 업혀 있어, 한참을 버둥거리다가 바닥을 다시 한 번 구르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목줄만 안 걸렸다 뿐이지, 이리저리 쉴 틈도 없이 끌려 다녔다. 그리고 그 모습을 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그렇게 오전 내내 끌려 다닌 뒤 맞이한 점심시간. 평소대로라면 두 그릇 정도는 더 달라고 했겠지만, 계속 뱃속에서 마그마 같은 신물이 끓어오르는 탓에 숟가락을 딱 한 번만 집은 뒤, 밥이 가득 쌓여 있는 그릇에 수저와 젓가락을 꽂아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킹콩’은 남기는 게 아깝다면서 내 몫의 밥까지 아주 깔끔히 먹어 치웠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에 숨었다.

그렇게 속 꿇는 점심식사를 마친 뒤, 각자 자유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나는 다른 일행을 만들어서라도 그 괴물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너 이미 일행도 있는데 뭣 때문에 여기에 끼려고 그래? K랑 즐겁게 놀면 되잖아.”

동기 중 한 놈은 그런 말을 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얼굴을 확 일그러트린 뒤 바닥에 침을 뱉으면서 물러났다. 그리고 다른 복학생 동기를 찾아가 부탁해 봤지만.

“너 이미 K랑 사귀잖아. 뭐 하러 사귀는 여자까지 팽개치려고 하는데 너무한다.”

남의 일이라는 식으로 한마디 던진 뒤, 여자 친구에게서 온 문자에 답장을 하고 있었다.

내가 ‘킹콩’과 사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이미 반쯤 굳어져 버린 모양이다. 아니면 방금 전 ‘촐싹이’나 ‘마담 뚜’같은 바람잡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세 명 정도 물어본 뒤, 다른 일행에 묻어가기를 그만뒀다.

“이대로라면 내가 그 괴물 새끼랑 사귀지도 않는데 덤태기 쓰게 생겼잖아. 씨발. 일단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내가 살겠어.”

곧장 도망갈 생각으로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핑계를 댄 뒤, 몰래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택시 대기소를 찾았다.

“할 수 없지. 택시에 타면 바로 교수님한테 몸이 아파서 쉰다고 둘러대야지.”

그 때 마침 빈 택시 한 대가 대기소 앞으로 왔고, 내가 손을 들어 막 택시를 잡으려는 순간. 귀에 거슬릴 정도로 째진 남자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K선배 C선배 저기 도망가려는 거 아냐? 빨리 가서 잡아.”

어떤 놈이 ‘킹콩’을 불러내 내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킹콩은 마치 성난 수소처럼 달렸다. 나 역시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횡단보도 없는 차도를 마구 가로질러 달아났다. 나는 달아나는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킹콩’에게 밀고한 놈을 쳐다봤다. 그 자식은 마치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이죽거리면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씨발. 저 새끼는 또 뭐야?’

내가 크게 화를 내며 돌이라도 집어 들까 하는 사이에, ‘킹콩’이 어느새 내 앞까지 바짝 쫓아왔다. 나는 크게 놀라 이를 악 물고 다리가 찢어져라 달렸지만, 킹콩은 능숙한 태클로 내 허리를 붙잡고는 바닥에 내리 꽂았다.

나는 못해도 0.1톤은 넘길 것 같은 고깃덩어리에 깔린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킹콩’은 내 등 위에 올라탄 채, 공업용 크레인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꽉 쥐면서 호통을 쳤다.

“선배! 대체 뭐 하는 거야? 모두들 선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혼자 도망치면 안 되잖아.”

나는 소금 맞은 지렁이마냥 버르적거리면서 마지막 남은 힘을 다 해 악다구니를 질렀다.

“씨발 기다리긴 뭘 기다려! 제발 날 건드리지 말라고. 나 그냥 집에 돌아갈래!”

그러자 킹콩은 허리를 숙여 내 귀에 입을 가까이 갖다 댄 뒤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도망치려는 거지? 당장 도망가면 편하겠지만, 선배 또 1년 쉴 거 아니면 굉장히 힘들어질 텐데? 선배뿐만 아니라 우리 학과 남자들 전부 다 말이야. 그리고 난 이게 다 선배 때문이라고 말할 거고. 이래도 도망갈 거야? 아니면 나랑 조금 더 같이 있어줄래?”

나는 공룡 같은 몸집의 괴물에게 깔렸다는 것도 잊은 채. 온몸에 피 대신 얼음물이 흐르는 것 같은 섬뜩함이 퍼져,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잠시 후. 허리가 쑤셔온 탓에 정신을 차렸고, 그 때 ‘킹콩’의 무게감에 짓눌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허리와 갈빗대에서 뭔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알았으니까 일단 이것부터 놔 줘. 나 깔아뭉개서 죽일 일 있어! 빨리 내려와.”

‘킹콩’은 여전히 한쪽 무릎으로 내 등판을 찍어 누른 채, 다시 한마디 던졌다.

“알았어. 그런데 당장 사귀자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일렀지? 조금만 기다려. 지금은 그냥 같이 붙어 다니기만 할 거지만, 나중에 꼭 다시 선배한테 제대로 고백할 거니까.”

말을 마친 ‘킹콩’은 그제야 일어났고, 나는 온 몸이 쑤시고 저린데다가, 킹콩의 한마디에 충격을 받아 넋을 잃고 한참 바닥에 누워 있었다. ‘킹콩’이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자, 나는 그 손을 잡기 싫어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킹콩’은 기다렸다는 듯 내 손을 잡아 챈 다음 한마디 했다.

“자 그러면 선배 어서 돌아가자. OT는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그동안 우리 둘이 좋은 추억 많이 남겨야지. 안 그래?”

나는 킹콩의 애교 섞인 말에 넋이 빠져나간 것 같은 웃음을 흘리며 혼잣말을 했다.

‘추억. 추억이라고? 생생한 공포영화 한 편 찍은 게 추억이라고? 하하. 하하하하.’

“에이 선배 너무 기뻐한다. 자 그러면 다시 가자.”

‘킹콩’은 여전히 내 기분을 제 멋대로 해석한 뒤, 곧바로 내 손을 잡아 끈 채 미친 소 마냥 달려갔다. 나는 결국 끌려가면서 끝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나 좀 구해줘.’

그리고 ‘킹콩’의 사냥개 노릇을 했던 그 후배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환하게 웃으면서 나와 ‘킹콩’의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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