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아름다운 구속] 아름다운 구속 62013.04.30 PM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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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한 지 고작 한 시간 반이 지난 오후 무렵. ‘킹콩’은 추억을 쌓으러 가자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추억이 아니라 살과 기름기를 쌓기 위해 온 것 같았다. 호두과자에 번데기. 구운 오징어. 감자칩. 어묵 등등. 나는 한 시간 내내 포장마차 거리에 있는 온갖 먹을거리가 그 인간의 뱃속으로 사라지는 마술쇼를 지켜봤다.

“선배는 아무것도 안 먹는 거야?”

“생각 없으니까 너나 혼자 실컷 드세요 예?”

드세요. 앞에 ‘처’라는 한 단어를 더 붙일까 했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처 맞을 것 같아서 그만두고 대신 얼굴 표정으로 내 기분을 드러냈다. ‘킹콩’은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손에 들고 있는 오뎅 다섯 꼬치를 한 입에 털어 넣고 대충 씹어 삼켰다. 나는 괴물이 사람이라도 잡아먹는 것 같은 그 모습을 보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렇게 오뎅 다섯 꼬치를 마시다시피 먹어치운 ‘킹콩’은, 다음 먹잇감을 찾아내기 위해 내 손을 잡아끌고 닭꼬치 집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군침을 흘리면서 지갑을 열어본 뒤, 인상을 찌푸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나한테 다가왔다.

“선배! 이거 맛있어 보이는데 나 하나만 사줘! 점심도 안 먹었으니까 선배도 하나 먹고.”

닭꼬치 가게 앞에서 ‘킹콩’이 꼬치 두 개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나는 지갑을 열어 텅 빈 속을 일일이 보여준 뒤, 바닥에 패대기치며 한마디 던졌다.

“나 돈 없으니까 작작 처먹어라. 왜? 살 더 찌워서 나 또 깔아뭉개려고?”

내가 무작정 도망치려고 하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 심한 말도 그냥 넘겨버린다는 게 그나마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그러자 ‘킹콩’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닭꼬치를 내려놓았고 그 때. 킹콩과 마담 뚜 못지않게 내 신경을 긁어놓았던 ‘촐싹이’ 선배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C야 그러니까 니가 여자도 없이 맨몸으로 복학한 거지. 아무리 니가 돈이 없다고 해도 그걸 대놓고 말하는 건 너무 심했다.”

순간 ‘촐싹이’의 상판을 닭꼬치 굽는 그릴 위에 처박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C선배 남자 맞아요?”

‘촐싹이’의 같잖은 충고에 이어, 후배 중 한 놈이 다짜고짜 한마디 던졌다. 방금 전 내가 숨은 곳을 ‘킹콩’에게 안내해줬던 놈이다. 나는 그 후배의 머리통을 잡아 뽑아서 ‘킹콩’의 주둥이에 처박고 싶은 충동을 꾹 눌러 참았다. 나중에 다른 동기나 선배들의 얘기로는. 남자 후배 중 가장 싸가지가 없다는 얘기를 듣는 ‘후레자식’이었다.

어쨌건 ‘후레자식’ 놈은 침이라도 뱉는 것 같은 말투로 한마디 더 했다.

“에이 선배.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게 말하면 남자 체면 안서잖아요. 선배 돈만 없는 게 아니라 좆도 없어요?”

“이런 저 새끼가!”

나는 곧바로 주먹을 들어 ‘후레자식’의 강냉이를 몇 개 팝콘처럼 튀어 나가게 만들어 주려 했다. 하지만 ‘촐싹이’ 선배가 그 앞을 가로막은 뒤, 건들건들 거리면서 한마디 했다.

“야 너 나이도 어린 후배한테 한 대 날리려고? 이거 완전 깡패 아냐?”

이에 ‘후레자식’은 ‘촐싹이’한테 착 달라붙어서는 방울을 딸랑거리기 시작했다.

“P선배. C선배 하는 거 봤죠? 우와 어쩌다 저런 조폭 같은 사람이 문예창작학과에 들어왔대요? 저 무서워서 도저히 학교 못 가겠어요.”

‘후레자식’은 내가 해야 할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물론 공감이 가기는커녕 숨통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갑갑함에 속이 쓰렸지만 말이다. 게다가 저 둘이 나를 조폭이니 깡패니 운운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저 두 사람이 공갈협박단이나 사기꾼으로 보였다.

덕분에 동기나 선배들이 모여서 남 뒷담화를 할 때마다 한 대 까고 싶은 1순위로 치는 녀석이다. 단 ‘촐싹이’ 선배와는 잘 어울려 놀긴 했다. 물론 ‘촐싹이’도 그 뒤를 이어 한 대 까고 싶은 2순위였지만 말이다.

여담으로 저 ‘후레자식’은 이전에 ‘킹콩’에게 고백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특유의 싸가지를 발휘해 킹콩의 얼굴을 정면으로 한 대 때렸던 놈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다’ ‘용감하다’ 등의 이유로 과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꽤나 높았다. 나이가 어리다는 점과 겉모습이 번듯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킹콩’ 쪽이 전부 다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그 모습들을 빤히 봐 놓고도 화살이 내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그 짐작이 맞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킹콩’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면 당장 과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쓰레기’ 소리나 들었을 게 뻔했다.

어쨌건 나는 ‘촐싹이’의 만류에 주먹을 내려놓긴 했지만….

“선배. 기껏 여자하고 같이 다니는데 그런 식으로 차갑게 굴면 절대 여자 못 사귈 걸요.”

여기에 ‘마담 뚜’를 비롯한 여자 후배들까지 은근히 내 자존심을 비틀어 꼬집었다. 결국 다시 한번 성질이 끓어올라 이를 악 다물려는 순간. ‘촐싹이’ 선배는 내 손에 만 원짜리 한 장까지 쥐어줬다.

“야 돈은 내가 빌려줄게. 둘이 하나씩 사 먹어라. 갓 군대 전역한 복학생이 돈 없는 건 나도 잘 안다.”

아무리 잘 봐줘도 방위. 혹은 군 면제자처럼 보이는 ‘촐싹이’가, 마치 장교나 부사관 같은 말투로 군대 얘기를 들먹이는 꼬락서니에 주먹을 꽉 쥐었다. ‘킹콩’은 닭꼬치 네 개를 들고 ‘촐싹이’와 ‘후레자식’한테도 하나씩 쥐어줬다.

“고마워요 P 선배. 잘 먹을게요. 여기 P선배 거 하고 H것도 샀어.”

‘킹콩’은 마치 자기가 선심 쓴다는 투로 한마디 했다. 그 순간 그 ‘촐싹이’마저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나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야 선배가 배푼 호의니까 땅바닥에 버린다거나 환불한다거나 그런 건 하지 마. 알았지?”

“에이 아무리 C 선배가 양아치 같아도 보는 앞에서 그러겠어요.”

‘내가 양아치면 넌 거렁뱅이다 새퀴야’

속으로는 그렇게 읊조리고, 또 촐싹이나 킹콩한테도 온갖 욕을 한 사발 퍼부으면서도. 킹콩이 주는 닭꼬치를 받아들었다.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 당장에라도 어린애처럼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목으로 넘어가지도 않는 닭꼬치를 억지로 삼키다가 세 번이나 목이 막힐 뻔 하고 막대기가 혀나 잇몸 등을 찌른 건 셀 수도 없었다. 아마 지금 입을 벌리면 드라큐라 백작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르겠다.

닭꼬치를 마치 똥이라도 된 것처럼 씹어 삼킨 뒤에도 ‘촐싹이’랑 ‘후레자식’은 떠날 줄을 몰랐다. 게다가 ‘마담 뚜’ 까지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킹콩 옆을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덕분에 나는 꼼짝없이 킹콩과 같이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그 대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킹콩과 최대한 거리를 두려 했다. 이쯤 되자 킹콩도 더 이상 달라붙으려 하지 않고, 킹콩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쓰레기 군단’과 더 어울려 다녔다. 이 때 나는 슬슬 눈치를 보다가 일부러 다들 들을 정도로 혼잣말을 흘렸다.

“그래도 명색이 OT고 또 학교도 꽤 오래 쉬었는데 아직도 아는 사람이 너무 적잖아. 최소한 다른 후배나 동기 녀석들한테 인사 정도는 해야 할 텐데.”

그러자 킹콩은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괜찮아 선배. 선배한테는 나만 있으면 돼.”

여기에 ‘후레자식’ 까지 한 마디 거들었다.

“어차피 C선배는 뭘 해도 아싸 될 것 같은데 K선배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아?”

마지막으로 ‘마담 뚜’ 까지 한 술 더 뜨는 말을 던졌다.

“C선배 다른 여자한테 붙으려고 하는 거죠? 그냥 포기하세요.”

그러나 유일하게 ‘촐싹이’만 곰곰이 생각하는 시늉을 하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 듣고 보니까 C말도 일리는 있네. K야 네 옆에 계속 붙여놓고 싶은 심정은 알겠는데 C가 잠깐 다른 애들하고 어울리게 놔둬라.”

‘뭐, 뭐야 저 미친 새끼. 갑자기 정상적인 소리를 다 하고.’

‘촐싹이’는 내 등을 밀면서, 유달리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저녁때까지 우리끼리 또 놀고 있을게. C는 다른 애들한테 인사라도 하고 와.”

“예. 그러면 이만 갈게요.”

그 때부터 불길함을 느꼈어야 하는데 나는 멋도 모르고 씩 웃으며 킹콩한테서 멀리 떨어졌다. 하지만 바로 그 날 저녁. 역시 촐싹이는 촐싹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될 만한 일이 터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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