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아름다운 구속] 아름다운 구속 72013.04.30 PM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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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군단’ 과 떨어지게 된 이후. 그나마 오후에 간신히 몇 명의 동기들과 얼굴을 익히고, 후배들과도 조금은 말문을 트게 되었다. 하지만 ‘후레자식’과 ‘마담 뚜’의 말대로, 여학생들과는 말을 트기는 고사하고. 내가 괴물이라도 된 것처럼 피하기 급급한 탓에 얼굴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물론 그 때에도 수상한 공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나도 저지른 짓이 있었던지라. 그냥 쓴 침을 삼키면서 어깨를 으쓱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어이 C자기소개는 잘 하고 다녔어?”

저녁 식사 전. 다들 숙소 앞에 모여 있을 때, 촐싹이가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띤 채 질문을 던졌다.

“잘 하긴요. 아싸 인증이나 했겠지.”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후레자식’이 빈정대는 투로 한 마디 흘렸다.

‘저 새끼는 날 알지도 못하면서 뭔 말을 저렇게 아무렇게나 뱉어대?’

그것도 모자라 ‘마담 뚜’는 ‘후레자식’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역시 C 선배한테는 K밖에 없다니까.”

여기에 마무리로 ‘킹콩’이 날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나는 그 인간들과 한 자리에 붙어 있는 자체가 구역질이 나는 탓에,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숙소 옆 매점에서 컵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식사 시간으로부터 세 시간쯤 지난 저녁 9시. 그제야 괴물 같은 그 인간에게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해졌다. 나는 호텔 밖으로 나와, 친구에게 OT첫날 내내 있었던 참상을 낱낱이 하소연했다. 물론 교수님이나 조교. 혹은 다른 선후배들의 귀에 들어와서 좋을 리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야외 화장실 앞에서 목청껏 불평을 늘어놓았다.

“진짜 오늘 하루 종일 죽을 뻔 했다. 아니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거냐?”

“대체 여자 하나 갖고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이냐? 적당히 잘라 끊으면 되잖아.”

“아 그게 말처럼 쉽냐고! 다른 사람들도 자꾸 그 쪽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란 말이야.”

“그것 참 무슨 캠퍼스 라이프 시트콤이냐?”

“씨발 대체 이게 뭐냔 말이야.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골 때리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 나 다시 1년 쉴까봐.”

하지만 친구 녀석은 위로를 해주거나 같이 화를 내 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배부른 소리 한다는 식으로 툭 던졌다.

“야 그래도 여자가 너한테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와 주는 게, 니 인생에 몇 번이나 있겠냐? 잘 해 볼 생각은 없냐?”

“너 죽고 싶냐? 차라리 군대에 말뚝을 박고 말지. 아니면 너한테 그 인간 소개시켜줄까 응?”

“아 그래주면 고맙지. 일단 사진이나 한 번 보자.”

“미쳤냐? 내가 그딴 쓰레기 사진을 뭐 하러 갖고 다….”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전화 도중 처음 보는 번호로 문자가 한 통 날아왔는데, 잠시 전화를 끊고 문자를 확인해보니. ‘킹콩’의 얼짱 각도 사진이 첨부된 스팸메일이었다.

“뭐, 뭐야 이거? 그 인간이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게 된 거야.”

아직 친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서 전화번호를 받았을 리는 없다. 그 외에는 교수님을 졸라서 전화번호를 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교수님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별로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던 중. 나는 순간 버스에 탔을 때 ‘킹콩’의 옆자리에 앉았던 게 떠올랐다.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었지만, 그 괴물이 내 휴대폰 번호를 알 만한 기회가 그 때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씨발. 버스 안에 CCTV를 설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잖아.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냔 말이야.’

나는 몇 초간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전화기를 열고 방금 통화했던 친구의 번호를 찍었다.

“그 괴물 상판 한 번 보고 싶다고 했지? 후회 하지 마라 씨발.”

나는 곧바로 그 괴물의 사진을 친구에게 전송했다. 잠시 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기를 열고 귀에 갖다 대자마자, 크게 놀란 친구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뭐, 뭐야 이 킹콩은! 아 씨발 내 눈이 썩잖아. 야 너 혹시 너한테 들이댄다는 여자가 이 괴물은 아니겠지?”

친구의 반응에 그제야 나는 처음으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정답이다. 내가 그 괴물 먹이가 되게 생겼다. 만약 내가 죽으면 내 뼈를 잘 거둬줘라. 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 진짜 이건 정도를 뛰어 넘었다. 그런데 저게 여자, 아니 사람이 맞긴 하냐?”

나는 방금 전 친구한테 의도치 않게 엿을 먹었던 것 덕분에, 친구에게 한 방 먹일 생각으로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니가 한 번 인간인지 아닌지 확인해볼래?”

“됐네요. OT끝나고 나중에 술이나 한 잔 하자. 그 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좀 얘기나 좀 들어보자.”

나는 친구가 기겁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슬쩍 웃었다. 그 때. 누가 내 등을 가볍게 건드렸다.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봤는데, 그곳에는 ‘킹콩’이 서 있었다. 나는 전화기를 대충 주머니에 구겨 넣은 뒤, 크게 화를 냈다.

“씨발.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신경질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킹콩’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 인간은 내 손을 잡아끌면서 한마디 했다.

“C선배 방 배정받는대. 빨리 호텔로 들어가야지.”

나는 ‘킹콩’의 손을 쳐내면서, 레몬을 통째로 씹은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신경 꺼! 난 내가 알아서 들어갈 거니까.”

그러자 킹콩은 그동안 본 적 없었던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하게 한 마디 흘렸다.

“그렇게 화내는 것도 지금까지라고. 이제 내 앞에서 웃게 될 거야 C 선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인간이 한 말이 이해가 되었을 때. 나는 오징어 다리로 목을 매달고 싶은 충동에 몸이 말라비틀어질 정도로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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