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아름다운 구속] 아름다운 구속 102013.05.02 PM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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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우리 같이 왕 게임 해요.”

그 괴물은 ‘상황통제’를 하겠다며 동행을 허락받은 이쑤시개 선배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막대 몇 개가 들어있는 통을 들고, 나에게 왕 게임을 하자고 제안 아니 강요했다. 나는 곧장 이불을 덮고 드러누우면서 머리만 내민 채 차갑게 내 쏘았다.

“내가 왜 너랑 그걸 해야 하는데? 나 피곤하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그러자 ‘킹콩’은 씩 웃은 다음, 조용히 이불을 덮었다. 나는 이불을 살짝 걷어 그 인간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래 봤다. 그 인간의 얼굴이 말린 대추처럼 변하더니, 이윽고 같은 방을 쓰는 후배 중 나이가 제법 있는 몇 명을 데리고 어딘가로 나갔다. 그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서서히 스며들며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칠 대로 지친 모습으로 나온 후배들은 같은 방을 쓰는 동기나 선배들까지 전부 다 깨웠다. 그리고 ‘이쑤시개’ 선배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팍팍 내 쉬었다. 그 상홍에서 그 상황에서 ‘킹콩’은 한참 단잠을 사는 사람들이 좀비처럼 어기적거리며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느긋하게 담배를 피웠다. 그 때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마피아 보스 그 자체였다.

그 순간 나는 등 뒤에 찬물을 흘려 넣는 것 같은 감각에 부싯돌처럼 이를 부딪치며 온 몸을 떨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척, 아니 죽은 척을 했다.

잠시 후 후배들이 나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머리끝까지 덮어 쓴 이불이 벗겨지고, 후배 몇몇이 나를 마구 흔들면서 그 인간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 모습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인간의 눈초리가 점점 가늘어지고 양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자, 나는 크게 한숨을 내 쉬며 조용히 일어났다.

“야 니들. 잠깐 밖으로 나가자.”

나는 후배들을 이끌고 베란다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후배들은 마치 귀머거리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곧장 목소리를 높이려 하자, 그 인간이 후배들을 죽 훑어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인간에게 한마디 던졌다.

“알았어. 알았다고. 빨리 왕 게임인지 뭔지나 빨리 하라고.”

그러자 ‘킹콩’은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모르는 것처럼, 아니 알면서도 탱크 트랙으로 사람 짓이기듯 간단히 깔아 뭉개버리면서. 일부러 깜짝 놀라는 척을 했다.

“정말이에요 선배? 그러면 왕 게임 빨리 시작해요.”

그 인간은 이미 제비뽑기에 쓸 숫자 써진 막대기까지 바닥에 펼쳐놓고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배들은 어느새 재빨리 자리에 앉아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머리에서 피가 날 정도로 마구 긁어댄 뒤, 마치 지뢰밭에 발을 들이는 것처럼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득 찬 탄창으로 벌이는 러시안 룰렛이 시작되었다.


그 인간의 제의로 시작된 왕 게임은 마치 썩은 고깃덩이에 달려드는 하이에나 무리의 식량 쟁탈전 같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 인간만이 느긋한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가장 굶주린 짐승 같은 모습을 보여준 건 아무래도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손에 제비 하나씩을 쥔 채 그 인간을 제외한 모두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손을 크게 들고 외쳤다.

“제, 제가 왕인데요….”

한 여자 후배가 왕 제비를 뽑은 것이다. 그녀는 한참 동안 머뭇거렸지만, 킹콩이 한 번 노려보자, 그 다음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바퀴 죽 둘러봤다. 그리고 또 잠깐 동안 뜸을 들이다가 간신히 명령을 내렸다.

“저기 그러면. 4번이 1번한테 고목나무 매미 하세요.”

나는 내가 뽑은 제비의 숫자를 확인했다. 내 숫자는 아주 공교롭게도 1번이었다. 그 다음 주변을 한 번 둘러보니, 그 인간이 나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살며시 제비를 내밀었다. 그 제비에 새빨간 매직으로 쓴 4라는 숫자가, 내 눈에는 죽을 사 자로 보였다.

나는 아이스크림 막대로 만든 제비를 부러트린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쑤시개’선배는 내 손을 붙잡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히려고 했다. 이쑤시개선배는 다른 후배들을 가리키면서 한마디 얹었다.

“야 다들 재미있게 놀려고 하는데 너 혼자 그렇게 파토를 놓으면 어떻게 해? 딱 10초만 해라. 복학하자마자 분위기 흐릴래? 너 이런 식으로 하다가 1년을 아싸로 지내려고?”

나는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변한 그의 모습에 눈살을 확 찌푸렸다. 그리고 다른 후배들도 일제히 나를 쳐다보며 불편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나는 다시 바닥에 주저앉은 뒤 목을 길게 빼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 같은 투로 말했다.

“예 알았어요. 딱 10초만이에요. 이거 한번만 하고 그냥 들어가서 잘 거예요.”

그러자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 인간은 입맛을 다시며 내게 진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다시 한 번 오한을 느끼며 돌이라도 씹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나는 선후배들이 빙 둘러싼 한 가운데에 섰다. 다들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부는 모습이, 먹이를 요리하기 전 춤과 노래를 즐기는 식인종 무리 같았다.

그 인간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본 뒤, 내 몸을 꽉 끌어안았다. 그 때 나는 몸이 프레스기에 눌리는 것 같은 압박감에 개구리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인간은 높이 뛰어올라, 내 허리쯤에 두 다리를 얹었다.

그리고 그 직후 나는 밑동 잘린 나무처럼 뒤로 넘어가, 그 인간의 몸뚱이 아래에 깔려버렸다. 마침 술 때문에 속이 은근히 느글거리던 참이다. 그 때 그 인간은 자신의 몸을 나한테 마구 비벼댔다.

뜨겁고 시큼한 액체가 자꾸 목구멍을 통해 넘어오려고 했다. 결국 그 인간이 자기 몸뚱이로 나를 한 번 눌러대자, 결국 걸쭉하고 희멀건 액체가 내 입가로 흘러 내렸다. 잠시 후 내 두 뺨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화산폭발을 보여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그 때 몇몇 후배가 그 인간을 간신히 떼어놓은 덕분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은 간신히 모면했다. 나는 손으로 입을 막아 국물이 새어나오는 걸 틀어막은 뒤,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내장의 위치가 바뀔 정도로 토악질을 해댄 뒤, 나는 재빨리 문을 열고 무작정 달렸다. 그리고 병아리를 채가는 독수리처럼, 양 손에 이불과 베개를 채간 다음, 베란다 문을 열고 곧장 베란다에 이불을 깔고 베개를 내려놓았다. 그 다음 베란다 문을 잠그고, 난간에 다리를 반쯤 걸쳤다. 그리고 후배들이 곧바로 문을 열려고 하자.

“건드리지마! 만약 열려고 하면 바로 뛰어내릴 거야!”

그러자 후배 중 한 명이 문을 두들기면서 날 설득하려 했다.

“선배. 즐겁게 놀자는 OT인데 그런 농담은 재미없잖아요. 돌아와서 그냥 왕게임 다시 해요.”

하지만 ‘후레자식’이 여기에 또 한 번 찬물을 끼얹었다.

“어차피 뛰어 내리지도 못해. 다들 물러나봐. 내가 창문 깨고 저 새끼 밀어버리게.”

‘후레자식’은 소화기를 꺼내 창문을 후려치려 했다. 그 모습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다른 후배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거기에 ‘촐싹이’까지 식칼과 신나 병을 들고 한몫 거들었다.

“야 요즘 본 공포영화에서 시체 처리하는 장면 있었거든. 그거 한 번 실제로 써먹어볼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이쯤 되면 완전 싸이코 소굴이었다. ‘후레자식’이 실실 웃으며 소화기를 들어 올리자, 그 싸이코패스의 우두머리가 ‘촐싹이’와 ‘후레자식’을 밀어내며 한마디 했다.

“그만들 좀 해. 왜 다들 C선배를 괴롭히는데. 내 앞에서는 C 선배 괴롭히지 마.”

나는 순간 입을 반쯤 벌린 채 확 풀어진 눈으로 ‘킹콩’을 쳐다봤다. 잠시 후 킹콩은 베란다 창에 얼굴을 바짝 붙인 뒤 한마디 흘렸다.

“저기 그러니까 선배. 술도 깰 겸. 저랑 잠깐 바람 쐬러 가는 게 어때요?”

그리고 씹다 뱉은 낙지 같은 흉측한 물건이 입을 오물거리며 꿈틀거리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베란다 문을 세게 후려쳤다. 유리창에 직접 닿은 게 아니라 유리창 바깥의 창살로 된 부분이 닿은 덕분에 킹콩의 얼굴이 유리창 파편에 난자당할 일은 없었다. 대신 창살이 크게 휘어졌고, 내 주먹은 껍질이 벗겨져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야 이 씨발 새끼들아!

나는 베개를 던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문을 주먹으로 마구 때려대며, 베란다 창살을 발로 걷어찼다. 한마디로 나는 그 때 철창 안에 갇힌 고릴라마냥 온갖 난리를 피웠다. 그 기세에 ‘이쑤시개’선배는 물론 ‘후레자식’과 ‘촐싹이’ 심지어 ‘킹콩’마저도 순간 지뢰를 밟은 표정을 지었다.

“나 여기에서 잘 거니까 건드리지 마!”

결국 문을 닫은 것도 모자라서, 이불과 베개를 뭉쳐 베란다 문을 틀어막아 놓았다. 물론 맘만 먹으면 금방 걷어내고 날 끌어낼 수도 있었지만, 방금 내 미친 모습을 보고 더 이상 건드리려는 사람들은 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씨발 이게 뭐냐고 대체.”

복학하자마자 핑크빛 대학 생활을 기대하던 내게 날벼락을 맞춘 것도 모자라, 계속 그 인간에게 끌려가고 또 놀림거리만 되었다. 나는 결국 팔을 베개 삼고, 패딩 재킷을 이불 대신 덮은 채 팔을 눈물로 적시며 잠을 청했다. 그나마 술에 잔뜩 취해 금방 잠이 온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포탄이 터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폐허더미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게다가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뭐, 뭐야 이거.”

일단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고, 무슨 상황인지 알 겨를도 없다. 그런 내가 주변을 다 둘러보기도 전에,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심한 지진이 사방을 마구 뒤흔들었다. 그리고 내 귀에 듣기 싫은 기름 낀 목소리가 흘러들어와 머릿속을 마구 뒤흔들었다.

“선배! 어디로 도망간 거야! 선배 내 마음 몰라?”

소리가 터져 나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대형 빌딩의 몇 배나 되어 보이는 그 인간이 건물을 마구 부숴가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면서, 그 인간을 올려다봤다. 그 인간 역시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입가에 침을 줄줄 흘리는 모습으로 아래쪽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 인간의 아랫도리가 내 눈에 들어왔고, 그 때 나는 한 번 더 속이 뒤집히는 불쾌함에 헛구역질을 했다. 그리고 그 때….

“선배 이제 도망 못 가요!”

그 인간이 나를 발견한 것과 동시에, 내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채 나를 붙잡기 위해 달려갔다. 그 인간이 한 걸음을 뗄 때마다 건물들이 박살나 그 잔해가 내 발 밑으로 떨어졌고, 팔을 휘두를 때마다 두 동강이 난 빌딩이 주저앉으며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 심하게 요동쳤다.

결국 나는 무너져 내리는 건물 잔해에 깔렸다. 나는 건물 잔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마구 발버둥을 치고 손톱이 벗겨질 정도로 땅을 긁어댔다. 손톱에서 나온 피로 바닥에 오선지를 그어댔지만, 내 허리 아래를 짓누른 건물더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내 허리를 짓누르던 건물 잔해가 치워지는가 싶더니, 거대한 크레인 같은 것에 옷깃이 붙잡혀 높이 들어 올려졌다.

“이제 찾았네. 선배.”

그 인간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자, 그제야 내가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인간의 손에 붙들려 코앞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나는 살충제를 맞은 곱등이처럼 팔 다리를 휘적거리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사, 살려줘!”

“에이 제가 언제 선배를 죽인다고 했어요. 잘 먹겠습니다 선배.”

그 인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맛을 다신 뒤, 입을 쩍 벌렸다. 그 인간의 입 안에는 사람 뼈와 씹다 만 고깃덩이가 여기저기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그 인간의 입 속에 들어가기 싫어 팔 다리를 마구 버르적거렸지만, 그 인간은 아예 내 몸뚱이를 손으로 꽉 쥐어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선배! 이제야 제 게 되었네요. 앞으로 절대 도망 못 가게 만들 거예요.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 주세요. 선배!”

그 인간은 입을 벌린 뒤, 그대로 나를 집어 삼켰다. 내가 그 인간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사방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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