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62013.05.02 PM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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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 대령은 초저녁쯤이 돼서야 유리의 가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운전병은 별로 배도 고프지 않았는지,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커스터 대령은 그 모습에 괜히 화가 났지만, 자신은 운전대를 잡을 줄 모르기 때문에 조용히 그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운전병은 눈을 뜨자마자 커스터 대령을 노려보며 콘베트 어로 뭔가를 열심히 떠들어댔다. 커스터 대령은 콘베트 원주민이 떠드는 말이 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욕이라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커스터 대령이 알아듣지도 못할 욕을 들으며 이를 바득바득 갈 때, 유리는 오른쪽 입 꼬리를 이죽거리며 커스터 대령의 등에 대고 인사했다.

“계약 감사합니다. 만약 제품에 문제가 생기거나, 계약 사항에 추가적으로 궁금한 게 있다면 저희가 알아서 찾아가겠습니다. 안심하고 부대로 복귀하세요.”

운전병이 시동을 걸고 바로 차를 움직이자 커스터 대령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냥 안 오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단 말이야. 하여튼 그 좆같은 놈들 때문에 너희 같은 도깨비들하고 또 마주치고 싶진 않다고.”

커스터 대령이 말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병이 갑자기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비닐 랩에 감긴 소책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커스터 대령은 화들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봤다. 두 사람은 이미 가게 안으로 들어갔는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커스터는 다시 고개를 돌려 소책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사람 뱃속에서 나왔는데도 바싹 말라 있는 비닐 랩을 벗기자, 소책자 앞표지에 쪽지 한 장이 붙어 있는 걸 확인했다.

커스터 대령은 쪽지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도깨비라서 미안하네요. 저희들의 방문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 운전병을 통해 응용 매뉴얼 북을 하나 더 보내드립니다. 이걸로 5공 호루라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대신 저희들은 계약이 완료될 때까지 대령님의 부대를 방문하지 않겠습니다. 그 점 명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쪽지를 다 읽은 커스터 대령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이 새끼들. 인간이긴 한 건가?”

그러면서도 쪽지를 고이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은 뒤, 그들이 추가로 보낸 소책자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스터 대령이 한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서서히 입 꼬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커스터 대령은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서야 막사에 도착했다. 아침 때 파스타와 햄버그 한 입. 그리고 독한 술 한 병이 그날 하루 식사의 전부였던 커스터 대령을 반긴 것은. M-16 총신에서 신나게 볶아져 나온 5.56mm 쇠콩이었다.

장교 몇몇이 커스터 대령의 지프 옆을 겨눈 채, 조정간을 연사로 놓고 마구잡이로 총알을 뿌려댔다. 물론 가급적 커스터 대령을 피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말콤 이병은 손을 들어 장교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리고 커스터 대령을 내리 까는 시선으로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여기까지는 늘 있어왔던 모습이다.

“자네들 이게 무슨 짓인가?”

하지만 커스터의 행동은 약간 달랐다. 평소대로의 커스터라면, 권총을 뽑아들고 ‘이 빨갱이 새끼들이 어디서 반란이야!’라고 외치며 마구 쏴재꼈을 테지만. 지금 그는 느긋하게 파이프를 문 채 장교들에게 조용히 따져 물었다.

이에 말콤 이병이 커스터 대령을 향해 돌을 던지며, 평소처럼 그를 질책했다.

“다들 굶고 있는데 늦은 저녁시간까지 뭘 얻어 처먹고 온 거야? 우리들을 죄다 굶겨 죽일 일 있어!”

그러자 커스터 대령은 어깨를 으쓱한 뒤, 캔 오프너를 꺼내 흔들어댔다. 그리고 씩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만 굶은 게 아니라고. 나도 오랜 시간 동안 컨테이너 열쇠를 얻어내기 위해 헤매느라 점심식사도 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가게도 간신히 찾아냈지만 급한 사정 때문에 저녁 식사 대접도 거절하고 지금 막 돌아왔다.”

뒤이어 커스터 대령은, 자신의 천막 앞에 무수히 쌓인 전투식량 팩을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너희들은 비축해둔 식량으로 점심은 해결했을 거 아냐?”

커스터 대령이 차분한 투로 거짓말이 섞인 변명을 던지자, 이번에는 말콤 이병이 더욱 사납게 따지고 나섰다.

“개소리 집어쳐! 이게 다 네놈이 고르게 돌아가야 할 식량을 독차지해서 생긴 일이잖아! 그 비축분이라는 것도 네가 다 뒤에서 삥땅친 물건이고!”

말콤 이병의 항의에 병사들은 서로 앞 다퉈 커스터 대령에게 갖은 욕을 쏟아 부으며 잡쓰레기와 돌을 던져댔다. 이에 커스터 대령은 할 말이 없어졌다. 한참 동안 입만 오물거리던 커스터 대령은 결국 호루라기를 꺼내 힘껏 불었다.

“다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그러자 연병장에 있던 이들은 말콤 이병을 제외하고는 죄다 조용해졌다. 말콤 이병 혼자 마구 욕을 퍼부으면서 화를 내다가,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고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커스터 대령은 씩 웃으면서 말콤 이병에게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말콤 이병. 그래서 내가 비축해뒀던 얼마 안 되는 식량을 한 번에 풀어서 모두 배부르게 해 줬나?”

그러자 뒤에 서 있는 병사들이 야유를 내뱉으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말콤 이병이 약간 머뭇거리며 장교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장교들은 서로 고개를 돌려 병사들을 쳐다본 뒤, 다시 말콤 이병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에 말콤 이병은 다시금 이를 악 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항변했다.

“미친 놈. 지금 원주민 병사까지 해서 사람이 몇 명인데 겨우 전투식량 서른 팩으로 전부 다 배부르게 먹었을 것 같아?”

순간 커스터 대령은 씩 웃으며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자 말콤 이병을 제외한 모두가 커스터 대령을 쳐다봤다.

“그렇지? 다들 덜 배부르게 먹을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내가 너희들을 배불리 먹여주지.”

커스터 대령이 말을 마치자마자, 병사들의 시선이 커스터 대령 쪽으로 몰렸다. 이에 장교들은 슬슬 눈치를 살피다가 커스터 대령 쪽을 쳐다봤다. 커스터 대령은 눈알을 한바퀴 빙 돌려, 자신에게 몰린 시선을 확인한 뒤. 말콤 이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대신 마음껏 먹고 싶다면 말콤 이병을 입 다물게 만들라고!”

그러자 장교들은 말콤 이병에게서 슬슬 멀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병사들은 자기들끼리 뭔가 수군거리더니, 앞 다퉈 입고 있던 옷을 찢어 그걸로 말콤 이병을 묶었다. 그리고 병사 중 한 놈이 자신이 입던 속옷을 뭉쳐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커스터 대령은 천천히 조수석에서 일어나, 컨테이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캔 오프너를 컨테이너 벽에 갖다 댄 뒤 마치 통조림을 따듯 죽 내리그었다.

특이하게도 컨테이너 벽면이 마치 통조림 뚜껑처럼 휘어지며, 활짝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쏟아진 건 레토르트 팩이나 통조림으로 된 식량이 아니라, 겉보기에도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싱싱한 고깃덩어리와 진한 향을 풍기는 치즈. 보기만 해도 아삭함이 느껴지는 온갖 야채와 과일이었다.

커스터 대령을 포함해, 연병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더욱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컨테이너 안에서 전장의 군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 나왔다. 코카인이라고 표기된 종이상자와 대마초 잎이 그려져 있는 상자. 그리고 벌거벗은 젊은 여자까지 컨테이너 안에서 기어 나왔다.

이 때 커스터 대령은 머리통이 터져라 호루라기를 분 다음, 마치 자기가 베푸는 것처럼 기세 좋게 외쳤다.

“이게 다 너희들 거다! 오늘 밤은 신나게 즐기라고!”

연병장에 나와 있는 이들 모두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뺨을 꼬집어봤다. 그리고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안기 바빴다.

단 한 명 말콤 이병만큼은 오줌 맞은 지렁이처럼 요동치며, 두 눈을 부릅뜬 채 커스터 대령을 노려봤다. 하지만 커스터 대령은 그저 말콤 이병을 내려다보며 이죽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다들 커스터 대령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장교와 부사관들 역시 커스터 대령 옆으로 다가와, 실실 웃으면서 그의 파이프에 불을 붙여주거나. 구두를 닦아주기까지 했다.

이에 커스터 대령은 몸을 마구 뒤틀고 있는 말콤 이병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마치 큰 아량을 베푸는 것 같은 투로 한마디 던졌다.

“야 풀어 줘. 아무리 미워도 저 녀석 우리 부대에 소속인데 같이 즐기라고 해야지.”
말콤 이병은 풀려나자마자, 병사와 장교들의 옷깃을 붙잡고 흔들며, 다급하고 간절한 투로 그들을 설득했다.

“다들 그만둬! 어떻게 컨테이너에서 살아있는 여자까지 나올 수 있냐고! 이건 악마의 장난이라고 악마의 장난! 그게 아니더라도 저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 저걸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고 나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커스터 대령한테 묶여 살 거야?”

하지만 모두들 말콤 이병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 도중. 항상 말콤 이병과 함께 앞에 서서 커스터 대령을 비웃던 장교 한 명이 말콤 이병에게 다가왔다. 말콤 이병이 화색을 띠며 그를 반기려는 순간. 바위 같은 주먹이 말콤 이병의 코를 직격했다.

“이 미친 놈! 이 새끼가 돌았냐? 악마건 지랄이건 간에 다들 재미 좀 보려는데 어디서 산통을 깨려고 들어?”

병사들은 코를 얻어맞고 나뒹구는 말콤 이병을 보며 폭소를 터트렸다. 말콤 이병의 코를 주저앉힌 장교는, 말콤 이병이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마구 밟아댔다. 그리고 그에게 침을 뱉은 뒤, 잘 익은 배 같은 가슴이 흔들거리는 여자 한 명을 끌고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신호 삼아, 병사들은 재빨리 불을 피우고 고기를 칼로 썰어 굶주린 배를 채울 준비를 했고. 장교와 부사관들은 각자 술병과 담배, 마약 상자를 천막 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속옷 한 장만 입은 채 다시 천막 밖으로 나와 발가벗은 여자들을 끌고 들어갔다. 다만 커스터 대령은 파이프를 문 채 지프차 루프에 앉아, 부하들이 소돔과 고모라 축제를 벌이는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말콤 이병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해 기어가는 와중에도,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커스터 대령에게 따지듯 물어봤다.

“네, 네놈은 왜 아무것도 안 먹지? 이 자식! 숨기고 있는 게 있지 네놈!”

커스터 대령은 팔에 주사자국이 나 있는 소위 두 명을 불러왔다.

“예. 커스터 대령님.”

“이봐 말콤 이병이 또 발작을 일으키는 모양인데, 흥 깨지기 전에 손 좀 봐줘. 만약 다음날에도 이 자식이 멀쩡히 기어 다닌다면….”

커스터 대령은 담배연기를 뱉으며 시커먼 게 군데군데 끼어 있는 이를 훤히 드러냈다.

“너희들은 앞으로 좀 배고프게 살게 될 거다.”

약에 찌든 장교 두 명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말콤 이병을 잡아끌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말콤 이병이 몸을 웅크린 채, 두 팔로 얼굴을 막았다. 하지만 두 장교는 그의 팔을 붙잡아 올린 뒤, 끈으로 단단하게 묶었다. 그리고 지퍼를 내리며

“이제 여자도 질릴 만큼 즐겼는데. 이번에는 다른 걸로 장난 좀 쳐볼까?”

두 장교는 말콤 이병을 내려다보며, 말콤 이병의 옷을 찢어발겼다. 잠시 후 그리고 두 장교는 다리 사이에 축 늘어져 있는 고깃덩이를 손으로 주물러 딱딱하게 굳혔다. 그 다음 빳빳한 몽둥이를 세운 채 말콤 이병에게 다가갔다.

뒤이어 말 그대로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소리가 천막 밖으로 새어나왔고, 짐승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커스터 대령은 반쯤 열린 천막 틈새로, 말콤 이병에게 벌어지는 일을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 무릎을 치며 오래 묵은 걸 털어내듯 목이 터지고 입이 찢어져라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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