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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몬스터 인 파라다이스] 몬스터 인 파라다이스 022013.05.03 PM 09:23
멀건 대낮의 세리울 공원. 콘크리트를 떠올리게 하는 회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어깨 위에 기껏해야 열 서너 살 정도의 소녀를 목마 태운 채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서로 굉장히 대조적인 외모 탓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둘에게 몰렸다.
가뜩이나 둘의 키 차이도 큰데다가, 남자 쪽은 무쇠덩어리를 깎아 만든 것처럼 굵고 단단한 체격인 데 비해. 여자아이 쪽은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처럼 가녀리기까지 했다.
옷차림 역시 판이하게 달랐다. 남자 쪽은 각을 맞춰 깎은 것 같은 짧은 흑발과 별 장식이나 맵시도 없이 딱딱해 보이는 정장 차림이나, 여자아이 쪽은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호랑이 인형 모자. 목에는 고양이 모양의 지갑이 붙은 목걸이에 짐승의 털가죽 같은 손목 보호대까지 차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아이를 어깨 위에 태운 채 길을 걷다가, 동물 인형들을 잔뜩 늘어놓고 파는 노점상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들어 그녀의 표정을 살펴봤다. 그녀는 먹이를 올려다보는 강아지 같은 시선으로 인형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남자는 어깨를 한 번 흔들면서 슬며시 웃었다.
“애드. 저것도 사 줄까?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오래간만에 받는 휴가니까, 이번 기회에 밀린 돈도 팍팍 써야지.”
애드라고 이름이 불린 여자는 먹이를 입에 넣은 햄스터 마냥 두 뺨을 잔뜩 부풀렸다. 그리고 두 뺨을 부풀린 채 손바닥으로 남자의 머리를 마구 때려댔다.
“이봐 드랑크르!”
드랑크르는 팔을 위로 뻗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마치 인형 다루듯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허리를 숙였다.
“왜 애드?”
그럼에도 워낙 체격 차이가 큰 탓에, 애드는 까치발을 든 채 고개를 위로 바짝 들어 드랑크르를 쳐다봤다. 거기다가 두 뺨을 잔뜩 부풀린 탓에, 큼직한 두 눈마저 가늘어져 있어. 마치 애완동물이 먹이 더 달라고 보채는 모습 같았다.
“목마 태워달라고 한 건 내 키가 작아서 풍경이 잘 안 보이는 것 때문이었잖아.”
“그렇지. 그런데 왜?”
“몸이 작은 것뿐이라고. 그러니까 제발 애 취급 좀 하지 마! 나이만으로 따지면 내가 네 증조할머니라고 알아!”
그러자 드랑크르는 잠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숨을 참았다. 그 다음 눈웃음을 지은 채 애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한마디 했다.
“밤에 잠도 혼자 못 자서 매일같이 내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증조할머니가 어디 있어?”
이에 애드는 두 뺨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드랑크르는 그녀를 안아 올리려 했고 애드는 그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붙잡은 채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내가 언제 그랬다고?”
“매일같이 증손자뻘 되는 놈의 침대에 기어 들어와서 ‘아이 만들자’ 라고 하는 증조할머니가 세상에 어디 있어?”
드랑크르가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들기며 대답하자, 애드는 크게 화를 내며 드랑크르의 머리를 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이게 진짜! 장난 좀 그만 치라니까!”
그리고 그 때 그녀의 엉덩이에서 꼬리가 나오고, 머리 위에서 호랑이 귀가 튀어나와 모자가 벗겨졌다. 그 때 꼬리가 필립의 등에 닿았고. 드랑크르는 크게 놀라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봐, 그만둬!”
드랑크르가 애드의 손목을 잡아 흔들자,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만져본 뒤 그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벤치 밑으로 들어가 웅크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놓칠세라, 각자 휴대전화를 꺼내 내장 카메라로 그녀의 사진을 찍어댔다. 몬스터에 대한 정보만 흘려도 인신교 교단에서 잉크도 마르지 않은 빳빳한 지폐 다발의 은총을 내리기 때문이었다.
“이 개새끼들이! 당장 안 꺼져!”
드랑크르는 오른손만으로 벤치를 무처럼 뽑아, 사람을 후려쳐 쓰러트리다가, 아무데나 던져 버렸다. 그리고 쓰러트린 사람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휴대전화를 일일이 손으로 바스러트렸다.
그 때 눈치 없는 누군가가 그의 앞에서 플래시 불빛을 터트렸다. 그러자 드랑크르는 가로등을 부러트려 그 남자의 발 빝을 향해 던졌다. 그 다음 지금 막 사진을 찍은 젊은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사진기를 사과 마냥 두 손으로 쪼개버렸다. 청년은 겁에 질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사, 살려주세요.”
드랑크르는 그를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벤치 밑에 숨어 있는 애드를 쳐다봤다. 그리고 한숨을 내쉰 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 다음 두 손을 주머니 안에 찔러 넣었다.
“당장 꺼져! 니가 팔아넘기려는 저 여자 때문에 살아남은 줄 알아. 아니었으면….”
드랑크르는 이미 두 동강이 난 카메라를 밟아 부순 뒤 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
“이렇게 되었을 테니까.”
그러자 청년은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채 갓난아기처럼 기었다. 이에 드랑크르가 이를 드러내며 그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찼다. 그럼에도 주변에 모여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뭘 봐! 다들 구경났어! 험한 꼴 보기 싫으면 당장 꺼져!”
그러자 다들 살충제를 피해 달아나는 바퀴벌레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안심해. 다들 물러났으니까 나와도 된다고.”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정리한 뒤, 드랑크르는 한숨을 내 쉬며 상의 윗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하지만 애드는 고개를 저으며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에게서 약봉투를 가로챘다. 그리고 봉투 상단을 뜯고 내용물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귀와 꼬리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제야 애드는 고양이 마냥 벤치 밑에서 천천히 기어 나왔다. 드랑크르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애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인신교의 용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드랑크르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버린 뒤, 그녀를 조용히 안아들었다.
“가뜩이나 약도 부족한데. 이런 곳에서 흥분하면 안 되잖아. 사람들 앞에서 정체가 드러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미안….”
드랑크르는 다행히도 사람들이 눈치 채지 않았는지 다들 제 할 일에 몰두하고 있었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걸로 일일이 미안해하지 말라고. 자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그 때 드랑크르의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터져 나왔다. 드랑크르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댔다.
“예 성전사 관리국의 레이건 럼스펠드 입니다. 오래간만입니다. 용사 드랑크르 씨.”
“빌어먹을. 가장 받기 싫은 전화가 왔군 그래.”
“하하 그 받기 싫은 전화 덕분에 필립 씨가 그 아가씨와 함께 먹고 사는 게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재수 없으니까 웃지 마. 다음에 얼굴 마주칠 때 강냉이 몇 개 날려먹기 싫다면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드랑크르 역시 웃고 있었다.
“그럼 늘 그렇듯 이번에도 안타까운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휴가는 오늘로 끝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성전사 관리국으로 오셔야 하겠지만….”
레이건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웃음소리와 함께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꼬마 아가씨와 함께 계시겠죠?”
드랑크르 역시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쳇 개코군 그래.”
“당신이 휴가 기간에 뭘 할지는 제 코가 개 코가 아니라, 지능지수가 오카모토 여왕님 수준이라도 맞추는 게 당연한 게 아닙니까? 아무튼 곧 메일로 임무 내용을 보내드릴 테니까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그녀하고 오붓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끝으로 럼스펠드는 전화를 끊었다. 드랑크르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자마자 애드는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얼굴에 주름 생긴 거 봐. 또 일이야? 요즘 들어 계속 손에 피를 묻히고 오는 것 같아서 무서워.”
드랑크르는 애드를 향해 씩 웃어 보이며 그녀의 머리를 다독였다.
“할 수 없지. 약도 거의 다 떨어져 가니까. 이번에는 레이건 녀석한테 약을 더 늘려달라고 부탁해볼 생각이야. 그 친구 말투하고는 다르게 아주 좋은 녀석이니까. 별 무리 없이 약을 늘려 줄 거야.”
애드는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나 때문에….”
“신경 쓰지 마. 지금은 우리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니까.”
드랑크르는 다시 한 번 애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방금 전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라 그냥 주먹을 꽉 쥔 채 주머니 안에 찔러 넣었다.
“일단 집에 들어가자. 그리고 약이 다 떨어졌으니까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가급적이면 외출은 하지 말라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순히 드랑크르의 품에 안겨 고개를 끄덕였다.
드랑크르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애드를 내려다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반드시 살아남는다. 썩은 살점을 주워 먹고 온 몸에 피를 뒤집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아 보이겠어.’
댓글 : 1 개
- 3rdimpact
- 2013/05/04 AM 10:13
애드 귀엽네요. 좋은 갭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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