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92013.05.11 PM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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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대위가 ‘실종’된 지 두 달 째. 가뭄의 단비 마냥 열흘에 한 번씩 헬기를 통해 보급이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커스터 대령의 부대에 보급품을 내려주는 건, 메리아카 육군 소속이 아니라 남 콘베트 국민방위군의 헬기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급량이 늘 그렇듯, 이번에도 열흘 치가 이틀 치로 홀라당 줄어드는 마술을 보여줬다. 커스터 대령은 그런 변변치 못한 보급을 받을 때마다 병사들을 천막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아두고 헬기를 맞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 한 명 수송하기도 힘들 것 같은 크기의 보급 헬기가 도착했을 때, 커스터 대령은 헬기 조종사에게 따지듯 물어봤다.

“이게 무슨 도깨비장난이야?

헬기조종사는어깨를으쓱하며 쓴 맛이 밴 표정을 지었다.

“남 콘베트 국민방위군 똥별 녀석들이 또 떼먹은 거죠 뭐. 어디 이게 하루 이틀입니까?”

커스터는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을 것처럼 이를 드러내며 따져 물었다.

“그게 아니라 왜 메리아카 본국에서 직접 보급을 주지 않느냔 말이야!”

“뭐긴요 메리아카 보급 담당관하고 남 콘베트 국민방위군하고 어울려 노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이 정도 보급이 나오는 것만 해도 최선을 다 한 겁니다. 나머지는 당신이 알아서 재량껏 해야죠. 본국에 추가 보급을 요구하던가. 아니면….”

헬기 조종사는 정글 너머 마을이 보이는 방향을 쳐다보며 혀를 찼다. 그 마을은 커스터의 부대원을 징집하기도 했던 마을이었다. 순간 커스터 대령의 눈이 빛났고, 헬기 조종사는 어깨를 으쓱한 뒤, 헬기에 올라타면서 한마디 했다.

“요즘 얘기를 들어보니 메리아카 쪽에서도 슬슬 물러날 생각을 하는 모양이더군요. 그러니까 의외로 잠깐만 버티면 다 끝날지도 모를 일이니까 차분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헬기 조종사는 문을 닫고 헬기를 띄웠다.

보급 헬기가 하늘 높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커스터 대령과 장교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보급품들을 각자 자기들의 천막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연병장 바닥에 적당히 널브러진 보급품들이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 뒤에야 병사들이 한 두명씩 굶주린 배를 붙잡고 천막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급이 들어온 바로 다음날 아침. 누군가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커스터 대령은 곧바로 옷을 주워 입고 천막 밖으로 나섰다.

그런 커스터 대령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말콤 이병이었다. 그리고 듬성듬성 모여 있는 남 콘베트 징집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손에 새나 뱀 같은 짐승들과 나무 속껍질 등을 들고 있었다. 말콤 이병은 반쯤 눈이 풀려 있는 콘베트 징집 병사들을 죽 둘러보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커스터 대령과 메리아카 장교 놈들에게 속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메리아카의 군 장성들. 그리고 기업가들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전쟁에 억지로 끌려간 것도 모자라, 전장 안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남 콘베트 병사들은 말콤 이병의 연설을 듣고 있기나 하나 싶을 만큼 건조한 태도로, 새의 머리통이나 나무 속껍질을 입에 넣고 오래도록 씹어대고 있었다.

“인간의 기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안 그래도 전장에 끌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최소한 굶주리고 헐벗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닙니까?”

병사들은 말콤 이병의 열변에 그저 손에 들고 있는 한 끼 식사를 뜯어먹으며 하품을 하거나 주린 배를 움켜쥘 뿐이었다.

“지금 여러분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러나 남 콘베트 병사들은 심지어 벌레까지 씹어 먹는 이들이 있음에도,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나지막한 소리로 수군거리는 게 전부였다.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커스터 대령이 모두 배불리 먹게 해준다면서 문을 열었던 약탈 통조림? 그건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전부 다 썩어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이후로 뭔가를 배불리 먹은 적이 있었습니까?”

말콤 이병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중에도, 콘베트 병사 중 몇몇은 손에 들고 있는 먹을거리를 죄다 씹어 삼킨 뒤. 생판 남 얘기라도 듣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글의 우거진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찢어진 가죽피리 부는 소리와 함께, 한약재 썩는 냄새가 풀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뒤이어 연병장 밖으로 나갔던 콘베트 병사들은, 오른손에 묻은 칡뿌리 조각 비슷한 찌꺼기를 털어내며 연병장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 와중에도 왼손에는 또 나무 속껍질을 들고서, 계속 씹어 먹고 있었다. 말콤 이병은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 쉬며 가슴을 움켜쥐었으나, 다시 눈을 부릅뜬 채 당장에라도 피를 토할 것처럼 크게 외쳤다.

“그렇다면 이 얘기도 하겠습니다. 약탈 통조림 건 이후 커스터 대령과 장교들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신 분이 계십니까? 약탈 통조림 이후에 보급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고 커스터 대령과 장교들은 입을 모아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배는 풍선처럼 부풀었고, 얼굴에는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지금 여러분들의 배는 등에 달라붙어가고 있고, 얼굴은 고목나무처럼 말라비틀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콘베트 병사들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딴 짓을 하다가, 말콤 이병의 말을 마치자마자 너나할 것 없이 먹을 것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결국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말콤 이병은, 텅 빈 연병장을 한참 동안 둘러보다가 전투모를 벗어 바닥에 패대기쳤다.

커스터 대령은 말콤 이병과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잠시 후 살짝 걷어냈던 천막을 조심스럽게 내린 뒤, 침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침대를 마구 두들겨 가며 목이 터질 지경으로 웃어댔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블레어 대위가 천막 밖을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

“대령님 저 대갈통에 바람만 든 새끼. 그냥 놔둬도 되겠습니까? 명령만 내리면 지금 당장에라도 가서 드라이버로 대갈통에 빵구를 내 버리겠습니다!”

커스터 대령은 계속 웃으면서도 블레어 대위의 질문에 대답했다.

“냅둬. 쥐새끼 마냥 지 명줄을 스스로 쏠아대는데 내가 거기다가 끈끈이라도 놔둬야겠냐? 며칠만 더 기다려 보라고. 재미있는 깜짝 파티를 준비해 줄 테니까.”

대답을 마친 커스터 대령은 다시 한 번 정신 나간 사람처럼 폭소를 터트려댔고, 블레어 대위 역시 그 웃음이 전염된 모양인지 서서히 웃음소리를 흘리는가 싶더니. 이내 커스터 대령처럼 배를 틀어쥐고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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