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102013.05.11 PM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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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낮. 커스터 대령은 호루라기로 병사들을 연병장에 모아놓았다. 연병장 한 가운데에는 장교들이 미리 준비해둔 철제 연단 하나가 솟아 있었고. 그리고 그 연단 위에는 철제 물컵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커스터 대령 역시, 미리 눈가에 침을 발라 놓은 상태에서 연단에 올라섰다.

연단을 빙 둘러싼 병사들 주변을 총을 들고 있는 장교와 부사관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말콤 이병은 또 한 번 장교들에게 묶이고 입을 틀어 막힌 채 커스터 대령의 천막 기둥에 매달려있었다.

커스터 대령은 말콤 이병이 발악하고 있을 텐트 안을 흘겨본 뒤,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잘 들어라. 나도 너희들을 배불리 먹게 해 주고 싶다. 우리도 그렇지만 너희들도 가족과 떨어져 생판 남들과 뒤섞인 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병사들의 반응은 말콤 이병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커스터 대령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커스터 대령은 다시 한 번 씩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게 다 누구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는 아는가? 지금 너희들이 끌려와 있는 건, 너희들 재산을 다 뺏어서 다 같이 굶어죽자고 외치는 빨갱이들 때문이다.”

커스터 대령이 계속 연설을 이어가려는 도중, 장교 한 명이 그의 연설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켈리 대위와 나란히 말콤 이병의 뒤통수를 쳤던 블레어 대위였다. 물론 그는 질문을 마친 뒤,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입 꼬리를 아주 살짝 올렸다. 그리고 커스터 대령 역시 오른쪽 입 꼬리를 슬쩍 올렸다가 내린 뒤, 한 숨 돌리는 시늉을 했다.

“대령님 전에도 빨갱이 얘기를 했는데 대체 빨갱이들이 여기서 뭘 하고 있다는 겁니까?”

커스터 대령은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한 다음,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아직도 모르고 있었나?”

말을 잠시 끊은 커스터 대령은 간이 테이블을 내리친 다음, 갑작스럽게 목청을 높였다.

“빨갱이라는 놈들은 자기가 직접 벌어서 생활할 수 없는 무능력자 주제에, 열심히 돈 벌어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물건을 죄다 뺏어서 평등이라는 핑계를 대며 아무데나 뿌려대는 약탈자들이다!”

그 때부터 반쯤 넋이 빠져 나가 있어 시든 풀 같던 병사들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커스터 대령은 다시 한 번 뇌성 같은 목소리로 병사들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그 빨갱이 놈들 때문에 너희가 전쟁에 휘말린 것이고, 지금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도 전부 다 빨갱이들 때문이다! 빨갱이들이 보급로를 차단하고 또, 보급 창고를 털어가서 너희들에게 줄 보급이 줄어드는 것이지. 그럼에도 이 야비한 빨갱이 놈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너희들의 가족과 재산까지 전부 다 집어삼킬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한 다음 커스터 대령이 물로 목을 축이자. 연병장은 마치 시장바닥처럼 서로 수군거리는 소리에, 마치 산들바람에 연못이 물결치듯 술렁였다. 커스터 대령은 연병장에 모인 병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본 다음. 한숨을 내 쉬며 머뭇거리는 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부대 안에 내분이 일어날 것 같아서 이 얘기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여기에서 커스터는 일부러 한 번 더 뜸을 들였다. 병사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서서히 들어올렸고, 장교와 부사관들은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이 부대 안에도 빨갱이가 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꽤 많이 섞여 있단 말이다!”

커스터 대령이 간이 연단을 힘껏 내리치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자 병사들은 깜짝 놀라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쳤다. 커스터는 철로 된 컵을 바닥에 팽개치며, 두 눈을 부릅뜬 채 얼굴이 터질 정도로 잔뜩 힘을 준 목소리로 외쳤다.

“이 안에 있는 빨갱이 놈들도 우리 모두가 다 같이 굶어죽기를 바라는 놈들이다! 그들 앞에 식량이 있다면, 평등이라는 핑계로 너희들에게 돌아갈 몫을 단번에 줄여버릴 것이다! 우리가 모두 먹고 싶은 걸 조금씩 참아가며 힘들게 모았는데 그 결과가 배고픔이면 받아들일 수 있겠나?”

커스터 대령이 말을 마치자, 여기저기에서 빨갱이라는 말과 온갖 욕설이 한데 뒤섞여. 마치 지옥 구덩이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변했다. 이에 커스터 대령은 더욱 굳어진 표정으로 선글라스를 낀 채, 사뭇 진지한 투로 연설을 이었다.

“나를 비롯한 간부들은, 지금 그 빨갱이들의 위협에 대비해서 보급품을 관리하고 있는 것뿐이다. 못 믿겠다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보관해둔 식량을 전부 다 풀어주겠다. 어떤가? 찬성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른손을 들고 반대한다면 왼손을 들어라!”

커스터 대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사들은 모두 왼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 사이에서 커스터 대령의 이름을 외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장교들 역시 커스터 대령의 이름을 외치며 두 팔을 들어 환호했다.

‘미친놈들. 이젠 다 끝났어. 이젠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라고!’

천막 틈새로 그 모습을 본 말콤 이병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은 마치 갓 총살당한 병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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