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아름다운 구속] 아름다운 구속 리부트. 이런 하렘은 싫어! 프롤로그.2013.05.13 PM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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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렘은 싫어!

“선배 좋아해요 저랑 사귀어 주세요!”

대학시절. 그 때 그 인간의 한마디는 평생 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 한마디가 나의 삶을 완전히 뒤바꿨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도 가끔씩, 그 때 그 일만 없었다면 지금 내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모든 일은 OT준비에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나는 과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키와 체격이 좋다는 이유로, OT 준비에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짐꾼 노릇을 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가뜩이나 과에 남자 수가 적고, 체격이나 체력이 좋은 남자가 더욱 적었던지라. 우선 산더미처럼 쌓인 맥주 박스를 내가 전담하다시피 과 사무실에서 운동장으로 옮겨야 했다. 그렇게 열 번 정도 4층이나 되는 거리를 왕복으로 다니며 스무 박스를 과 사무실로 올려 보내던 중. 한 여자아이가 온갖 식재료가 가득 든 상자를 들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나는 너무 지쳐 맥주 박스를 잠시 내려놓은 뒤,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봤다.

“뭐야? 겨우 OT준비인데 뭐 이렇게 무리하는 거야?”

밀가루며 계란. 참기름 병처럼 그리 가볍지 않은 물건들이 상자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대충 봐도 덩치가 있는 나도 쉽게 들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녀는 아무리 잘 봐 줘도 키는 150을 못 넘길 것 같았고, 팔은 내 손가락 세 개 허리는 내 허벅지 정도나 될까 싶을 정도에 다리는 내 팔과 비슷할 정도로 가느다랬다. 다만 얼굴만큼은 큼직한 상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앞도 잘 보이지 않았는지, 이리저리 휘청거리면서 걸어 내려가다가 한 쪽 다리를 삐끗했다. 그리고 균형을 잃고 상자 안의 내용물을 쏟으며 앞으로 넘어졌다.

“야! 위험하잖아!”

순간 나는 머리 위로 밀가루와 계란 등이 떨어지는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뛰어 올라가 그녀를 한 팔로 낚아챘다. 그리고 내 팔에 붙들린 그녀는 너무도 가벼웠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괜히 얼굴이 붉어지며 가슴 속이 괜히 간질간질했다.

단정하게 앞과 목덜미를 쳐낸 단발. 방울처럼 크고 동글동글한 눈에 끝이 살짝 곡선을 짓고 있는 적당한 크기의 코. 그리고 은근 작고 촉촉한 입술. 약간 토실해 보이는 듯 하면서도 뽀얗고 작은 얼굴. 그리고 그녀를 붙잡았을 때 내 가슴팍에 닿은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둘 다 옷을 얇게 입은 탓에,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돌기까지 살에 닿는 것 같았다. 아마 가슴이 작다고 브라를 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때 순간적으로 아랫도리가 뜨거워 질 뻔 했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별명을 ‘햄스터’로 정했다.

나는 내 심장이 뛰는 걸 감추기 위해 일부러 ‘햄스터’를 살짝 떼어놓았다. 그러자 그녀 쪽이 떨어질까 무서워 내 가슴팍을 꽉 끌어안았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다소 딱딱한 투로 한마디 던졌다.

“조심해야지. 괜히 무거운 걸 들고 무리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러자 ‘햄스터’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야. 울지 마! 울지 말라고! 화 난 거 아니니까 그만 울어!”

내가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그녀를 다그쳤지만, 내 목소리랑 말투 탓인지 그녀는 더욱 크게 울면서 내 셔츠를 눈물로 적셨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정말 죄송해요.”

‘햄스터’는 울면서 죄송하다는 말만 여러 번 읊조렸고, 나는 결국 그녀를 한 팔로 끌어안은 채 계단 위로 올린 뒤. 계단에 쏟아진 밀가루나 계란 등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녀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딸국질을 하는가 싶더니, 서서히 눈물을 훔치면서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 때 누군가의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려댔다.

“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과대표를 맡은 ‘이쑤시개’ 선배였다. 비쩍 마른 몸에 비해 목소리는 공룡 마냥 둔한 내 귀가 울릴 정도로 컸다. ‘햄스터’는 ‘이쑤시개’선배를 보며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도 깜짝 놀라서 움찔할 정도였으니 그녀한테는 오죽할까 싶었다.

“죄송합니다. 물건을 들고 내려가던 중에 얘가 저랑 부딪쳤거든요.”

‘햄스터’가 다시 한 번 울음을 터트릴 것 같자, 내 입에서 곧장 변명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이쑤시개’ 선배는 내 뒤통수를 가볍게 때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에라 이 곰 같은 놈아! 조심해서 다녔어야지. 니 그 덩치에 사람 하나 잡을 일 있냐? 어쨌건 사람 안 다쳐서 다행이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뒷정리라도 잘 해. 앞으로도 사람들 많이 돌아다닐 텐데 추가 피해자 늘리지 말라고.”

나는 뒤통수를 문지르며,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예.”

‘이쑤시개’ 선배는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못 쓰게 된 건 내가 교수님한테 얘기해서 추가주문으로 할 거니까. 쟤 너무 겁먹게 하지 말고 적당히 달래. 그러면 먼저 내려갈 테니까 다 정리되면 내려와.”

‘이쑤시개’ 선배는 말을 마친 뒤, 밀가루랑 계란 등이 널브러져 있는 계단을 그대로 밟으며 내려갔다. 대체 왜 그러나 싶었는데, 잠시 내 옆으로 가더니 귓속말로 아주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리고 말이야 쟤한테 너무 잘 해주지도 말고 가까이 붙지 마. 이유는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 줄 테니까 일단은 내가 말하는 거 명심해서 들어.’

선배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사근사근 얘기했지만, 나는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이쑤시개 선배는 그런 내 표정을 못 봤는지, 살짝 미끄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어깨를 으쓱한 뒤 곧바로 자세를 낮춰 계란 껍질과 유리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그리고 ‘햄스터’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상자를 가져와, 내 옆에 갖다 놓았다.

“앗! 이런 빌어먹을.”

유리병을 줍다가 기름에 손이 미끄러진 탓에, 검지가 날카로운 파편에 베였다. 나는 손가락을 흔들어댄 뒤, 방울방울 배어 나오는 피를 혀로 핥았다. 그러자 갑자기….

“저기 선배…. 손가락 줘 보세요.”

그녀는 곧바로 피가 배어나오는 내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넣고 혀로 핥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보여줬던 모습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게다가 그 손가락은 방금 전 내가 혀로 핥았던 상태였으니, 이 정도면 ‘과감하다’라는 말로 끝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순간.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봤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입 안에 들어있던 손가락을 재빨리 빼냈다.

그리고 그 때. ‘햄스터’의 얼굴 표정이 잠시나마 바뀌는 걸 봤지만, 그 표정이 어떤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붉게 물들어 있던 그녀의 얼굴이 곧바로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표정으로 변하자, 가느다란 몸인데도 내 아래가 묵직해질 정도의 색기가 느껴졌다.

나는 애써 그녀의 얼굴을 피한 채 황급히 병 조각과 계란 껍질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온갖 찌꺼기가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 한마디 했다.

“뭐 됐어. 이 정도는 별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가서 다른 일 도와줘. 대신 네 몸 생각해서 무거운 물건은 들고 다니지 말라고.”

“예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녀는 깍듯이 인사한 뒤, 내 앞에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한 뒤 씩 웃었다.

“전혀 예상도 못 했는데. 처음부터 꽤 괜찮잖아 이거.”

물론 그 때에는 순수한 호의였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도 순수한 호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호의가 부메랑이 되어 내 뒤통수를 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 참고로 여자 주인공 이름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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