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아름다운 구속] 이런 하렘은 싫어! 4(내 마음을 배신했겠다!)2013.05.26 PM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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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사무실 앞까지 도착하자마자, 날 잡아 끌고 간 오난희 후배는 문을 두들기며 다래를 불러내려 했다.

“다래야! C선배 왔다. 어서 문 열고 나와.”

“안 믿어! 안 믿는다고!”

하지만 다래는 안 믿는다는 말만 하며 철문 두들겨 패는 소리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그러자 난희는 나를 죽 훑어본 뒤, 마지막에는 눈을 바늘처럼 가늘게 뜬 채 따가운 눈빛을 보냈다.

“선배! 대체 얼마나 심한 말을 했으면 애가 저렇게 상처를 받아요? 그따위로 하면 평생 여자 못 사귄단 말이에요!”

아까부터 조교나 교수님도 그랬지만, 난희까지 계속 다래하고 사귀라는 뉘앙스로 말하는 게 거슬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는 걸 참지 못하고 난희의 멱살까지 잡아가며 역정을 냈다.

“야! 너 내가 쟤한테 무슨 말을 한 지 알기나 해?”

하지만 난희는 무섭다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비웃음을 띠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자, 나는 불에 데인 것처럼 손을 놓았다. 난희는 나한테 잡힌 옷깃을 다듬은 뒤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이제는 여자한테 멱살잡이 까지 해요? 우와 이 선배 진짜 쓰레기네. 제가 다래하고 가장 친한데 다래가 들으면 참 가만 있겠네요?”

망했다. 이걸로 약점만 하나 더 늘었다. 나는 그냥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 난희는 다시 한 번 내 등을 떠밀며 한마디 했다.

“어쨌건 이건 꼭 선배가 얘기해야 할 것 같으니까 빨리 사과 할 테니까 들여보내 달라고 말하세요! 그래야만 다래가 문을 열어줄 걸요? 선배가 문을 열면 제가 다래를 잡아끌고 나올 거니까 빨리 다래를 부르시라니까요!”

나는 난희한테 등을 떠밀린 채, 문이 마치 폭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두들겼다. 잠시 후 문에 묵직한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로 되돌아와, 나는 깜짝 놀라 쥐 죽은 것 같은 소리로 다래를 불러냈다.

“다래야. 나다 C선배라고. 지금 문 앞에 있으니까 그만 진정하고 문 좀 열어줘.”

“C선배!”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냄새라도 맡은 모양인지 다래가 내 이름을 부르며 곧바로 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뒤를 힐끗 돌아보며 주춤거렸지만, 난희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느릿느릿 사무실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 후배는 곧바로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공포영화 같은 상황에 문을 두들겨대며 문고리를 잡고 마구 당겼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마 문 앞에 뭔가를 걸어놓은 모양이었다.

“야! 뭐 하는 거야! 빨리 와서…”

그 때 다래가 내 이름을 불렀다.

“C선배!”

나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흠칫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너무나도 해맑게 웃고 있는 다래의 얼굴을 보자마자 식은땀을 흘렸다.

“으, 으윽!”

그러자 다래는 그대로 나한테 뛰어들어, 내 품에 안겼다. 아니 더 정확히는 미식 축구선수 마냥 달려들어 나를 꽉 끌어안았지만 말이다. 그녀는 내가 뒤로 물러나지 못하게 두 팔을 깍지 낀 채 꽉 달라붙어,

“서, 선배. 결국 와 주셨네요. 선배가 절 찾으러 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역시 저한테는 C선배밖에 없어요.”

그녀는 나를 꽉 끌어안은 채,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을 내 가슴팍에 마구 비벼댔다. 나는 이런 상황일수록 냉정하게 잘라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 선배! 너무 아팠단 말이에요! C선배. 선배가 제 마음을 받아줄 거라고 믿었는데 너무해요 선배!”

한참 동안 흐느끼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자, 약간 따듯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과 함께 내 입에서 나와야 할 한 마디가 그대로 녹아 내렸다.

‘빌어먹을 이래서 문제라니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은 뒤,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남은 한 손으로 그녀를 살짝 밀어냈다.

“잠깐만. 그만, 그만 하라고 다래야. 그만 하고 내 얼굴 좀 쳐다봐.”

결국 나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러자 다래는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다시 한 번 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꽉 끌어안은 뒤 평소의 그 밝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봤다.

“선배. 그래도 안 와줄 줄 알았는데 와 줘서 고마워요. 역시 저한테는 C선배밖에 없어요.”

나는 여러 사람들한테 등을 떠밀렸다는 얘기는 그냥 삼키기로 했다. 만에 하나 실수로라도 튀어나왔다가는, 이번에는 모니터가 아니라 내가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아. 그, 그게 말이야. 아까는 미안했어. 조금 더 신중하게 말한다고 한 건데 너한테 좀 상처가 된 것 같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선배! 그러면 제 마음을 받아주는 건가요? 예? 절 받아주는 거죠?”

다래는 곧바로 내 손을 맞잡은 뒤 그걸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댔다. 그녀의 따듯한 체온과 부드러운 감촉이 내 손을 타고 흘러들어왔지만, 뱀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소름부터 돋았다.

“선배 느껴보세요! 선배 때문에 가슴이 마구 뛰고 있단 말이에요!”

나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떼어놓은 다음. ‘가급적’ 차분한 말투로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다.

“아니 이거랑 그건 얘기가 다르잖아. 역시 서로 사귄다거나 하는 건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조금은 여유를 갖고….”

아니나 다를까 역효과였다. 나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력 질주하는 트럭에 치인 것 같은 충격을 받고, 몇 초 동안 허공에 떠올랐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키는 186 체중은 95kg다. 그 큼직한 몸뚱이가 공중에 떠다닌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 곤두박질치기 전. 그녀가 두 손을 앞으로 내 뻗은 게 내 눈에 들어왔다.

“선배! 선배는 내 마음을 배신했어!”

그녀의 네 배는 될 법한 내 몸뚱이를 지푸라기 인형처럼 밀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는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다윗과 골리앗’ 그 생각을 끝으로 뒤통수부터 번개에 얻어맞은 것 같은 감각과 함께, 서서히 눈앞이 흐려지며 온 몸이 무거운 것에 짓눌린 느낌이 들었다.

“선배! 괜찮아요? 선배! 선배!!”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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