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몬스터 인 파라다이스] 몬스터 인 파라다이스 082013.07.08 PM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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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을 긁어내는 것 같은 모터소리와 휠의 마찰음이 사방을 뒤흔드는 것과 동시에. 메탈 밴드의 보컬을 떠올리게 하는 그로울링이 닐스의 귀를 마구 두들겨댔다. 그리고 35mm중기관총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은탄이 닐스의 몸뚱이 이곳저곳을 두들겨댔다.

닐스는 구식 장갑차까지 벌집으로 만드는 중기관총에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총알이 날아든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닐스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케리가 착용한 그것보다 훨씬 거대한 차량형 메탈이 서 있었다.

다리 뒤쪽과 발뒤꿈치에는 무한궤도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 트럭에서나 볼 법한 오프로드 타이어가 측면에 붙어 있었다. 덕분에 가뜩이나 두터워 보이는 다리 부분은 전차 마냥 당장에라도 짓이겨버릴 것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상반신은 마치 갑각류의 등딱지 같은 장갑판에 동그란 회전식 카메라가 붙어 있어 마치 게나 독거미를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어깨 측면에 댐 건설현장에서나 쓸 법한 대형 포크레인 같은 집게 팔 한 쌍. 윗부분에는 12련장 대전차 미사일 포트. 155mm강선포가 붙어 있었고.

본체의 양 옆에도 철퇴 같은 주먹의 왼손과 뭐든 잡아 찢을 것 같은 크레인 손이 붙은 인간형 팔이 장착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케리의 메탈과 공사장 중장비. 그리고 주력전차를 한데 뒤섞은 형상이었다. 이미 이정도 크기면 메탈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콕핏에 탑승해서 별도로 조종해야 할 정도였다.

거대한 메탈의 어깨에 장착된 미사일 포트가 불을 토해내며 말뚝 같은 대전차 미사일을 한꺼번에 뱉었다. 미사일은 회색 꼬리를 내뿜으며 새카만 몬스터와 닐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에 드랑크르의 등을 꿰뚫은 몬스터는 재빨리 바닥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하지만 닐스는 파리라도 달라붙은 것처럼 손을 흔들어 날아드는 미사일을 손으로 베어내며 냉기가 가득 담긴 코웃음을 쳤다.

“큭큭 그것 참 타이밍 좋게 방해해주시는군. 게다가 내 앞에서 아주 배짱 좋게 아주 둔해 터진 거북이 같은 걸 갖고 오다니 네놈부터 박살내주마!”

닐스는 높이 뛰어 오른 뒤, 발을 뒤로 젖혀 발뒤꿈치가 거대한 메탈의 몸뚱이를 향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닐스의 발뒤꿈치에 소용돌이 같은 새파란 기운이 맺혔다. 닐스는 그대로 체중을 실으면서 급강하 했는데 그 모습은 거대한 고드름 같았다.

잠시 후 닐스의 발뒤꿈치가 본체 윗부분을 내리 찍었고, 본체 윗부분의 해치는 닐스의 발꿈치가 닿자마자 모래먼지로 변해 폭삭 주저앉았다. 닐스는 빠르게 다리를 벌려 훤히 드러난 콕핏의 외벽 부분에 발을 딛었다. 그리고 얼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손끝으로 메탈 착용자의 이마를 찔렀다.

하지만…. 닐스는 크게 놀라면서 뒤로 뛰어 내린 뒤 두어 걸음 더 물러섰다.

“너, 너는? 애드. 네가 어째서 이딴 흉악한 물건을 움직이고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다고!”

탑승형 메탈의 조종석에는 머리 위에 호랑이 귀가 달린 애드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이마 한 가운데는 이미 닐스의 손톱에 찔려 피가 한두 방울씩 배어나오고 있는데. 애드는 피가 눈까지 흘러내리고 있음에도, 두 눈을 부릅뜬 채 닐스를 노려보았다. 그 탓에 닐스는 애드가 피눈물을 흘리는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뻔 했다.

“닐스…. 그러는 너야말로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그리고 뭣 때문에 드랑크르에게 칼을 겨눈 거냐고?”

닐스는 맥 빠진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애드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것은. 정의 때문이다. 저 남자가 사라져야만 너를 포함한 모든 몬스터들이 인신교와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저 배신자의 목만 있으면 두려움에 떠는 동지들에게 투지를 심어준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잘 생각해보라고 너도 몬스터잖아. 인간들에게 핍박받고 살 수 없는 몬스터란 말이다!”

이에 애드는 조종석 벽면에 고정시켜둔 기관단총을 꺼내 닐스에게 겨눴다.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무수한 총알이 닐스의 갑옷을 두들겨대며, 폭우가 양철 지붕을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하지만 닐스는 그저 가만히 총알을 맞을 뿐이었다.

“개 같은 소리 집어치워! 절대 당신 손에 죽게 하지 않을 거야. 아니 누구한테도 죽게 놔두지 않을 거라고!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사람은 내가 끝까지 지켜낼 거란 말이야!”

잠시 후. 애드가 쥔 기관단총은 방아쇠 당기는 소리와 격철 울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자 닐스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할 정도로 쥐어 짜낸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애드! 어째서 저딴 쓰레기 같은 놈을…. 그 남자는 너와 네 동족의 적이라고!”

애드는 메탈에서 내린 뒤 작고 가느다란 주먹으로 닐스의 투구를 힘껏 때렸다. 닐스의 투구는 흠집 하나 나지 않고 오히려 애드의 손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지만. 닐스는 고개를 팍 숙이며 나지막이 흐느꼈다. 애드는 피눈물을 흘리며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귓구멍 뚫고 잘 들어둬! 세상 모두가 네 편을 들고 드랑크르를 죽이라고 말해도 나만큼은 드랑크르의 편이야. 그러니까 드랑크르를 죽일 거면 나부터 먼저 죽이라고!”

그 한마디에 닐스는 힘없이 일어나 천천히 뒤돌아섰다. 닐스는 드랑크르와도 거의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힘을 잃어버린 몬스터인 애드 따위는 그의 손짓 한 번이면 먼지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닐스는 고개를 푹 숙인 다음, 자신의 몇 배는 될 법한 드랑크르를 떠맨 채 기어가다시피 하는 애드를 쳐다봤다. 그리고 금이 갈 정도로 이를 갈면서 한마디 던졌다.

“빌어먹을 드랑크르 이 개자식! 애드 때문에 살아남은 줄 알아라.”

그 한마디를 끝으로 닐스는 살며시 흘러들어오는 산들바람에 섞여 서서히 모습을 감췄다. 애드는 곧바로 배에서 피와 내장을 흘리고 있는 드랑크르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 그를 좌석에 앉힌 다음. 배 밖으로 튀어나온 장을 밀어넣은 뒤, 그의 무릎 위에 앉아 대형 메탈의 조종간을 잡았다. 그녀가 버튼을 몇 개 누르자 메탈의 각 관절부위와 추가 무장이 접혀 들어가고, 반대로 접혀 있던 휠과 캐터필러가 펴지면서 1인승 장갑차로 변했다. 애드는 장갑차의 엑셀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드랑크르. 당신은 내가 죽지 않게 할 거야. 절대 죽지 않게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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