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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에피소드 2 2013.07.13 PM 06:59
언덕 위에 있는 무너질 것 같은 집들끼리 서로 기대서 버티는 것 같은 달동네. 모든 이야기는 그 달동네 한 곳에 위치한 노준석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이 새끼! 또 이따위밖에 못 해!”
오늘도 노준석의 집은 험악한 욕설과 온갖 집기가 깨지는 소리에, 모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저분한 몰골의 중년 남자가, 딱 봐도 비실비실해 보이는 고등학생의 멱살을 잡고 은행나무 털듯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 소년의 가슴에는 노준석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이런 일이 벌어지지만, 오늘 유독 소리가 큰 걸 보아하니 아마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은 모양이었다. 특히 노준석의 집은 방학 직전만 되면 집이 융단폭격을 맞은 것처럼 난장판이 되곤 하는데 가장 큰 원인은 노준석과 그의 아버지였다.
“우리가 여태까지 너 하나 여기까지 키우려고 얼마나 허리가 휘었는지 알지. 그런데 고작 성적이 이 정도밖에 안 나와? 다른 애들은 학원이고 뭐고 없이 수석도 졸업하고 의사 변호사 뚝딱 되던데 넌 커서 뭐가 되려고 성적이 이 따위인데?”
노준석의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목을 조르다시피 멱살을 틀어쥐자, 노준석은 기침을 해대는 와중에도 말대꾸를 했다.
“내가 뭘!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잘난 아빠가 다 알 거 아냐?”
그의 말대꾸에 더욱 화가 난 중년 남자는 노준석을 헝겊인형 마냥 바닥에 패대기쳤다. 노준석은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고, 그의 머리통이 바닥에 닿자마자 깡통 차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노준석이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벽에 걸려 있던 액자들이 마구 떨어졌는데, 노준석의 아버지가 정장을 입고 금배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과 나란히 악수를 하는 사진. 그리고 역시 노준석의 아버지가 굉장히 비싼 옷과 액세서리로 온 몸을 뒤덮은 뚱보에게 감사패를 받는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방 구석진 곳에서 썩어가는 옷장 위에 먼지가 가득 쌓인 감사패와 높은 분들과 함께 찍은 인증사진 등이 올라와 있었다.
“에라 이걸 그냥!”
중년 남자는 액자 하나를 들어 노준석의 머리통을 후려치려다가, 혀를 차며 액자를 벽에 걸고 준석의 머리통을 발로 밀어 차 버렸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더니 아무데나 연기를 뿜어대며 한마디 했다.
“에이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보험용으로 한 새끼 더 싸질러 놓을걸 그랬어.”
그러자 방구석에서 난장판을 피해, 마치 쥐가 호박씨를 까먹는 것 같은 모습으로 봉제인형 눈을 끼워 맞추고 있던 중년 여성이 비아냥거렸다.
“이 인간이 진짜.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요?! 당신 닮은 애 하나 더 나으면 나더러 죽으라는 말이에요? 당신이야말로 고졸 주제에.”
그러자 중년 남자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재떨이를 집어 들어 아무데나 던졌다. 그러나 중년 여성은 늘 있어왔던 일인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인형 눈알을 끼워 맞췄다.
“뭐? 이년이 진짜 2년제가 대학이냐? 지금 전문대 수료증 하나 가지고 나한테 텃세부리는 거야? 맞벌이라도 해오면 내가 아무 말도 안 해. 이놈의 집구석을 그냥 확 엎어버려야지! 어쨌건 준석이 너! 대학 못 갈 거면 호적 파버려!”
중년 남성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데도 느긋하게 인형 눈을 맞추고 있는 중년 여성의 행동에 더욱 크게 화가 났다. 중년 남성은 준석 어머니의 손에 들고 있는 인형을 뺏은 뒤, 마구 찢어발기며 끼워 넣고 있는 눈알을 마구 흩뿌렸다. 그제야 중년 여성이 준석 아버지의 뺨을 때리며 한마디 했다.
“진짜 도움은 못 줄망정 다들 쪽박이나 차고 있네. 그리고 돈도 없는 것들이 대학은 무슨! 허튼 생각 하지 말고 당신이나 돈 똑바로 벌어와! 그리고 노준석. 너도 그냥 고등학교나 대충 졸업하고 노가다나 뛰어!”
“뭐 엄마? 노가다나 하라고! 나더러 죽으라는 거야?”
그러자 중년 여성은 인형으로 노준석을 북어 마냥 신나게 두들겨댔다. 그 모습에 중년 남성마저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이 새끼가 말버릇이 그따위가 뭐야! 오늘 저녁 굶어!”
노준석의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노준석의 엉덩이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이에 노준석은 굶주린 개 같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화를 참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안 먹으면 될 거 아냐!”
그 한마디를 끝으로, 노준석은 방금 전까지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차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가며 일부러 박살 날 정도로 문을 세게 닫았다.
물론 지금 그의 지갑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고, 지금 이렇게 집 밖으로 나가면 새벽 세 시나 되어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결국 노준석은 그 날 밤도 저녁을 굶은 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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