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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장국영과 야마구치 모모에2011.03.28 PM 07:57
-야마구치 모모에-
1976년 한 해 브로마이드 판매 실적 1위를 차지하고, 1978년 NHK 홍백가합전의 홍팀(여성팀) 피날레를 사상 최연소의 나이로 장식하는 등(10대 가수가 오오토리를 맡게 된 것은 사상 처음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기록은 깨어지지 않고 있다.)
로 1970년대의 일본 예능계를 대표하는 스타였으나, 1980년 3월 7일, 미우라 토모카즈와의 결혼과 함께 연예계 은퇴를 발표한다. 1980년 10월 5일 일본 무도관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개최했고, 같은 해 10월 15일 당시 소속사였던 호리프로의 20주년 기념식에서의 노래를 끝으로 완전히 은퇴했다. 약 7년 6개월여간의 짧은 예능생활을 마감한 그녀는, 1982년 안 루이스(アン ・ルイス)의 노래를 작사한 것 이외에는 예능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공리는 인터뷰에서 야마구치모모에는 나의 우상이라고 이야기 했고 이제는 고인이 된
장국영과 매염방 역시 야마구치모모에의 열렬한 팬이라고 말했고 노래도 리메이크 했다
고별 공연에서 부른 마지막 곡이 さよならの向う側 로
음악 콘테스트 2위로 데뷔하지만 무명 생활이 길었던 장국영을 일약 톱스타로 만들어준
곡이 바로 풍계속취와 모니카인데 풍계속취가 바로 さよならの向う側를 리메이크 한 곡이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열렬한 팬인 장국영은 자주 무대에서 후렴부隙 � 瞿뻬 � 가사 그대로 부르
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장국영은 언론의 가십성 기사로 지쳐가던 90년 도쿄국제가요제에서
천안문사태 관련 발언이 물의를 빚자 자주 야마구치 모모에처럼 최정상에서 은퇴하고 싶다던
장국영은 돌연 은퇴선언을 하고 만다 은퇴 선언후 고별콘서트에서 여느때와 똑같은 모습
으로 콘서트를 진행하다 결국 풍계속취를 부르다 눈물을 흘리고 만다(마지막 곡인 풍재기시는
담담하게 부른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은퇴발표로 고별콘서트까지 한 시점에서 '종횡사해'와 '아비정전'의
계약이 남아있던 장국영은 고별콘서트후에도 두 작품을 완성한 후에야 감독공부를 하겠다며
캐나다로 떠나는데 2년만에 '가수로서의 은퇴지 배우로서의 은퇴는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주성치와 '가유희사'로 화려하게 컴백하고 배우컴백 3년만에'총애 장국영' 음반을 발표하며
가수로도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몇일 후면 거짓말처럼 장국영이 떠난 만우절인데 만약 그가
자신의 우상처럼 그 떄 영원히 은퇴를 했다면 명연기를 볼 수 없었겠지만 그처럼 비극적인 결말
은 맞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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