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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일상?]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돌아가신 소식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2017.06.29 AM 12:18
월요일 저녁.
밤늦게 고교 동창 몇명을 만나게 되었다.
요즘들어 부쩍 잦아진 야근으로 참석할 수 없다고 했지만, 밤 12시가 되도 좋으니 오라는 말에
밤 11시가 다되어 도착. 서먹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과거 얘기를 나누며 옛날처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술잔이 몇잔 돌고 이미 내가 오기전부터 취해있던 아이들은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선생님은 학부모와 바람이나서 잘리고, 누구는 돈을 떼먹고 도주하고 등의 선생답지 않은 한심한 이야기들 뿐이어서
실소를 흘리며 대화를 하던 와중에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친구
-야 너 3학년때 몇반이었냐?
나
-나? ㅁㅁ반이었는데 왜?
친구
-그럼 담임 ㅇㅇㅇ 아니냐?
나
-ㅇㅇ. 맞아 그렇지 잘계시냐 예전에 역근처에서 한 번 봤었는데
친구
-야. 돌아가신지 꽤됐어
나
-어???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별로 듣고 싶지 않던 한심한 스승들 이야기속에서 이제야 듣고 싶은 선생님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런 소식이라니
나름 좋아하던 과목이었고, 좋아하던 선생님이었기에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부고 소식을 듣게되니 죄책감까지 더욱 커졌다.
조용히 혼자 술잔을 들이키고 나는 말했다.
나
-혹시 암으로 돌아가셨냐
친구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너 돌아가신 것도 몰랐잖아.
대답대신 술 한잔을 또 마셨다.
고등학교시절, 나는 취미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중학교때부터 설정이 막히거나 혹은 인정받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학교 과학 선생님들을 찾아가 설정을 보여주며 자문을 구하곤 했는데
(중학교시절 sf설정을 쓰고, 양자캐논에 대해 물어보러 갔다가 양자역학에 대해 1시간 가까이 길고 긴 강의를 듣기도 했다. 결론은 양자캐논 이라는 용어는 잘못됐다고...)
고3 담임이었던 이 선생님은 생물을 담당하고 계셨고, 과학 과목중에 생물을 제일 좋아했던 나는 담임선생님의 수업이 끝나면 찾아가 궁금한 부분을 물어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은 교무실로 나를 부르시더니 자기 컴퓨터로 영상 하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투박하고 어설픈 3D그래픽으로 세포분열과 DNA합성 같은게 나오는 영상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은 자기가 직접 짬날때 3DMAX 같은 툴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뿌듯하게 자랑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부모님은 다 암으로 돌아가셨어.
어렸을땐 암이란게 뭔지도 몰랐는데, 그 이후로 그게 뭔지 그걸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지 공부하려고 생물 선생이 됐단다.
나는 말이다. 이 영상 교재를 꾸준히 만들어서 학생들이 생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서 언젠가 생물학 전문가가 많아지고,
의학이 발전하고 하면 모두가 함께 암을 극복할 수 있지 않겠니?
그리고 나는 이 교재로 특허를 받아서 돈을 많이 벌고 말이야 ㅎㅎㅎ 농담이다.
친구들과 만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학교와 선생님 성함을 검색해보았다.
혹시라도 부고 소식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으나, 인터넷에 일개 교사의 부고까지 나오지 않아
역시나 하는 와중에 선생님의 성함이 적힌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내가 졸업하고 3년 후의 일이었구나
그래도 선생님의 노력이 성과를 이루었구나... 하는 마음에 다시 옛생각에 잠기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 늙은고추
- 2017/06/29 AM 12:29
- chimbang
- 2017/06/29 AM 12:45
저는 제가 고3때 모 대학교를 진학하겠다고 하니 빈정대던 담임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머, 운이 좋았는지 그 대학교를 진학하긴 했지요 ㅎㅎ
- SKY만세
- 2017/06/29 AM 12:48
- 원펀치투강냉이
- 2017/06/29 AM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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