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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독서 일기.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2011.06.27 PM 06:22
2004년에 쓴 걸 이제야 올려 봅니다. 사실 '스마트 월드'에 대한 소개글이 이어져야 할텐데요;; 주말에 악천후를 뚫고 태안에서 띵가띵가한 덕분에 또 밀리고 있습니다. 게으름이 비처럼 쏟아지네요. ㅠ.ㅠ.
광범위한 사색의 틀
―<나무>를 읽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글을 발표할 때마다 서평에 '놀라운 상상력'이라는 수식어를 등장시키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명이다. 이런 베르베르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선택하자면 '타나토노트'를 꼽겠다. 사실 저승 여행이라는 모티브는 신화에서 출발해 '신곡'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낳은 인간 본연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허나 타나토노트는 그 중 특별했다. 타나토노트는 산자의 '죽은자 탐구'에 대해 기존의 꿈이나, 천사나 악마와의 계약 같은 몽환적이고 불분명한 요소에서 벗어나 가사 체험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접근, 분명한 논리로 글을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즉 말이 되게 쓴 것이다. 여기서 말이 된다는 것은 그의 작품에서 꽤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타나토노트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천사들의 제국'은 글의 모티브, 구성, 전개, 설정은 거의 대부분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그 글감들이 전 세계적으로 진실일 것이라 용인 받는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득력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은 이 작품이 베르베르의 타 작품보다 판매 부수가 현저히 떨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결정적 이유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실례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들의 결정적인 매력은 비과학적인 것에 대한 과학적 접근, 또는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으로 단언할 수 있겠다. '천사들의 제국'은 이 두 요소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한 예라 본다. '개미'로부터 발달된 그의 작품군들은 어느 정도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규정지을 수 있겠다. 하지만 베르베르 자신은 이러한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있는 듯하다. 출판이라는 올가미에 얽매여 있지도 않으며 자신이 이제까지 쌓아온 작가로서의 명성에도 연연해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이 같은 그의 행동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프랑스 작가라는 점과 그 본연의 느긋한 성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전적으로 작가에 대한 호감에 기인하여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싶다. 결과적으로 그의 창작은 돈벌이로서의 글쓰기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나무는 우선 작가도 밝혔듯이 한 가지 물음에 대한 상상을 그 기본으로 한다. ‘만일 인간이 투명한 피부를 가지게 된다면.', '만일 별똥별 하나가 파리 뤽상부르 공원에 떨어진다면.’ 등등의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요번 작품들은 앞서 말했듯이 글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에 관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단편이라는 길이의 한계 덕분에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무릇 장편이라는 것은 글의 아이디어보다 글의 구성과 전개에서 글의 재미를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처음의 상상은 발상의 발칙함이 상당 부분 제약되어지고 일련의 논리 순서에 맞게 재구성된다. 즉 글의 다양한 매력이란 측면에서 장단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글들은 애초부터 상상의 자유로움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 쓰인 글들이라 할 수 있고 그 결과물들이 이번 나무라는 단편집이다. 사실 나무의 작품 하나하나가 작품성이 높고 하나의 단편으로서 완성된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또한 글의 전개나 문장력에 있어서도 수준급이라 평하기는 어렵다. 특히나 이번 작품들의 몇몇의 끝맺음은 조악한 결말로 마무리되고 있어서 이 단편집이 베르베르의 작품 계보에서 쉬어가는 글 이상의 의미를 두기는 매우 힘들다. 그러나 요번 작품들을 평가하는 주된 판단 요소가 위의 일반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평론가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나무를 통해 광범위한 사색의 틀을 독자들에게 편하고 재미있는 농담처럼 제공했다. 그의 팬들에게는 이와 같은 상상의 장들이 콜럼버스의 달걀과 비견될 만하며, 또한 일종의 '선구자’라 평가받는 이유가 된다.
이번 단편집은 필자에게는 크게 두 분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흥미 있는 글이요, 다른 하나는 진부한 글이다. 이와 같은 기준의 척도는 다름 아닌 ‘발상’이다. 분류하자면 [냄새],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수의 신비], [완전한 은둔자], [그 주인의 그 사자]가 전자라 할 수 있고, (내게 너무 좋은 세상), (바캉스), (투명 피부), (황혼의 반란), (조종), (가능성의 나무), (취급주의: 부서지기 쉬움), (사람을 찾습니다.), (암흑), (어린 신들의 학교)가 후자라 할 수 있다. 위에서 구분하지 않은 {달착지근한 전체주의}, {허깨비의 세계}, {말없는 친구}는 일단 평가 보류인 묶음이다. 모든 글들을 세세히 평가하기에는 능력상 무리가 있지만 대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냄새]는 그야말로 발상으로 평가받아야 될 작품이다. 발상도 놀랍지만 그보다 인간의 아둔함을 조롱하는 베르베르식의 유머가 더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상식적인 상상으로는 지구에 손가락으로 오물 한 덩이를 집어넣을 수 있는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에서 보여준 상상의 세계를 감안한다면 그를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독자로서 순순히 받아들일 만하다.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는 인류가 인류의 시각이 아닌 3자의 시각에서 인류를 분석해 놓았다는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줄 수 있겠다. 사실 베르베르는 이러한 시각을 소설을 전개하는 데에 매우 번번이 사용한다. 베르베르의 입을 빌리자면, 개미가 지극히 낮은 곳으로부터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라면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으로부터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인간에 대한 다른 관점들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관점은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운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베르베르다운 유머를 마음껏 발견할 수 있는데 남, 여를 구별하는 데 있어 좀더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 암컷이라는 구분법에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수의 신비]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흥미가 있는 글이다.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재미있다. 그의 조카의 무리 중에는 십 이상 세는 부류와 십을 못 세는 부류 간에 서열이 존재한단다. 이에서 출발한 상상은 숫자를 매개로 하는 지식의 격차에까지 미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수에 대한 완전한 이해다. 1에 대한 이해: 1은 인간이 살고 있는 우주를 뜻한다. 사실 이 글은 끝이 매우 조악하게 끝나는 글 중 하나지만 숫자에 대한 이해라는 놀라운 발상에 비하면 그 정도의 결함은 묵인할 수 있다.
[완전한 은둔자]는 독자를 자연스레 사색으로 이끈다. 뇌를 남김으로서까지 세상 만물의 진리를 이해하고 싶어한 귀스타브의 삶이 옳은 것인가? 혹은 발현되지 못하는 지식 혹은 지혜는 가치가 있는 것인가? 등등의 다양한 물음이 나올 것이다. 글의 결말에서 저자는 귀스타브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어디까지나 독자는 독자만의 결론을 내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 주인의 그 사자]는 유행에 대한 베르베르의 꼬집음이 돋보인다. 일부 소수의 이해관계(利害關係)가 빗어낸 사회의 촌극은 사자를 통해 극단적으로 표현된다. 그 과정도 매우 말이 되게 전개되며 힘을 가진 자가 펼치는 횡포의 전개가 대단히 현실적이라 판단되기에 글을 읽은 뒤 씁쓸한 맛이 더하다.
여기까지가 재미있는 글이라 한다면 따분한 글이라고 전적으로 내 맘대로 평가한 다음 글들은 어떤 약점이 두드러지는가 둘러보도록 하자. 따지고 들어가면 다음에 이 글을 읽을 독자의 흥미까지 반감될 수 있으니 말 그대로 둘러본다.
(내게 너무 좋은 세상)은 발상의 평이함에서 상당히 점수를 깎이고 들어간다. 알고 보니 나도 기계다라는 내용은 이제 진부할 때도 됐다.
(바캉스)는 ‘결국 보험이다.’라는 결말이 재미있으나 결말까지 이끄는 글의 전개가 너무 급박하고 숨쉴 틈을 두지 않는다. 글에서 나오는 캐릭터는 거의 가치가 없을 정도로 밋밋하고 16세기 프랑스에 대한 묘사도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못된다.
(투명 피부)는 할 말이 없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발상이고, 전개도 평이하며, 그렇다고 베르베르 특유의 유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에게 호감을 느끼는 상대가 한국 여자라는 점?
(황혼의 반란)은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격리 수용하는데 이에 반기를 든 노인들이 새로운 세력을 만든다는 전개가 흥미롭기는 하나 조금 억측이 있다. 또한 내용 자체가 ‘효’를 근간으로 하는 한국에서는 더욱 반감을 가질 법하다.
(조종) 역시 진부하다. 이런 글들은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차라리 ‘팬티 속의 개미’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 비슷한 류는 아니지만 토탈호러라는 단편집의 탐욕스러운 입이 더 기억에 남을 법하다.
(가능성의 나무)는 단정적으로 말해 소설이 아니다. 에세이라고 해야 어울릴 듯하다. 그래서 소설로서의 재미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들’에서 부각된 '최소 폭력의 길'이라는 개념이 그나마 흥미롭다.
(취급: 부서지기 쉬움)은 기본 맥락은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와 같이 하지만 쥐가 등장하는 결말 부분은 아무래도 사족이라 생각된다. (그들을……)처럼 맺고 끊음이 분명했으면 더욱 좋을 뻔했다.
(사람을 찾습니다)는 독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베르베르답지 않게 너무 직설적이다. 그의 글은 은근한 맛이 있어야 제 맛이지 싶다.
(암흑)은 (조종)과 맞먹는다. 자아의 억측이 글의 재미라고나 할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린 신들의 학교)는 베르베르가 천사들의 제국의 후속편이 될 다음 작품의 작은 실마리라고 말하던데, 본인으로서는 이 작품이 요번 단편집 중에서 가장 최하라고 평가할 만큼 매우 실망했다. 시드마이어의 문명시리즈를 즐겨본 독자들이라면 필자와 같은 입장을 취할 것이라 단언한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단편과 같은 설정이 그대로 쓰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상이 나름대로의 따분한 글이다.
선정 기준은 위에 나열했듯이 발상이 평범하거나 글의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다거나 단편으로서의 최소한의 규범을 무시한 글들이 골라졌다. 전적으로 필자만의 분류라는 걸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평가 보류인 글들은 적혔다시피 평가 보류라서 적지 않기로 한다. 글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의 긍정적인 횡포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소감들은 독자와 저자가 상호보완적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아도 시공간을 넘어서 함께 호흡하는 그들만의 편애로서 내용이야 어쨌든 매우 긍정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의도적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대단히 영리한 작가이다. 그는 상상에 대한 우선 점유와 수확 체증의 법칙을 본의는 아니겠지만 빠른 걸음으로 시도하고 있다. 요점은 이렇다. 베르베르는 특이한 상상을 하고 이러한 상상을 추려서 발표를 한다. 그 작품들이 독자들을 열광케 한다. 독자들도 베르베르의 작품에 모티브를 두고 상상을 한다. 다양한 작품들이 나와 일종의 작품군을 형성한다. 이 중에서 베르베르의 작품은 독보적이다. 상상의 틀을 먼저 제시했기 때문이다. 베르베르의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이와 같은 순환은 벌써 실체를 드러냈다. 나무에 이어 ‘나무2’가 발간되었다. 독자들이 쓴 나무라는 부제를 당당히 달고 나온 이 모음집의 실상은 필력도 검증되지 않은 작가들의 습작 엮음이다. 이미 베르베르류의 상상이라는 브랜드는 시장에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브랜드 파워는 소멸되기 마련이라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소비 상품에 국한되는 과정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사상과 행동 그리고 지적 쾌락을 지배한다. 결론적으로 베르베르의 독자는 매우 흥미로운 과정을 저자와 공유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능성이다. 소비자인 독자라 할지라도 상상의 실체화의 과정을 거친, 걸러진 발상들이 자연스레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19C에 E.A. 포의 ‘모드가(家)의 살인 사건’에서 비롯된 추리물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여과기 속에서 갈래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재탄생시켜 20C에 주류로 진입하는 데 성공을 거둔 바가 있다. 베르베르가 나무라는 초석으로 만들어낸 순수 상상물은 상상예찬이라는 CF가 공중파를 타는 21C에 공상 과학의 장르가 아닌 또 다른 갈래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는 시간 문제일 수도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아무래도 그이기에 분명 글이 더 재미있다.
Ps. 어느 분께서 '책 왜 이렇게 많이 읽어요? 예전에 쓴 거 올리는 거 아녜요?' 라고 물으시던데요, 이번 것은 예전에 쓴 게 맞습니다;; 하지만 되도록 지금 읽는 것을 쓰고 업데이트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독서 일기의 틈이 너무 길어질 때 마이피 방문하시는 분들이 잊지(;;) 않으시도록 예전에 쓴 것을 끼워 올려봅니다. 내일은 특별한 일 없으면, '스마트 월드'가 이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Ps2. 광고!! 7월의 책 추천 받습니다! 소설을 제외하고 교양서 중에서 크게 두껍지 않고 유익하다 싶은 것 추천해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댓글 : 2 개
- 니나가라군대
- 2011/06/27 PM 06:32
이걸 군대에서 읽었는대 재미있더군요
- 불교신자박주영
- 2011/06/27 PM 06:38
저도 군대에서 읽었습니다 ㅋ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야하나 유쾌한 기분이 드는 책이없어요 . 일본서적중엔 공중그네도 괜찮긴 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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