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일기] 독서일기, [생존을 위한 재난재해 보고서] (완독)2011.07.11 PM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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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씽커블 - 생존을 위한 재난재해 보고서, 아만다 리플리, 다른세상, 2009. (완독)


이 책의 가치는 분명하다. 희소성이다. 구글신의 도움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난심리’라는 검색어로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번역본이다. 번역본이라는 말인즉슨, 한국인 저자가 한국어로 이 분야에 대해 대중적으로 쓴 책은 없다는 뜻이다. 이게 굉장히 의외였다. 다들 알다시피 한국은 유달리 재난이 많은 국가다. 그것도 인재(人災)라는 측면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문민정부 때 육·해·공의 트리플 크라운(부산구포역열차전복사고·성수대교·삼풍백화점, 서해 페리호, 대한항공 여객기 괌섬 추락)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무척 가슴 졸였던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까지. 미국은 911 이후에야 ‘언씽커블’이라는 단어로 예측할 수 없는 재난으로 가득찬 ‘극단의 세상’을 표현했다손 치더라도, 한국은 위와 같은 출판 상황으로 볼 때 아직 요원함이 틀림없다. 우리는 예로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재난의 고리에 아직도 무지한, 언논(unknown)의 세계에 살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중심 문장만 놓으면 매우 간략하게 요약될 수 있다. 인간은 상상 이상의 재난이 닥칠 경우 거부(denial) - 숙고(deliberation) -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의 세 단계를 거친다. 각 단계에서 일견 어리석게 보일 수 있는 행동은 실상 생존본능과 관련된 일이며 결과적으로 오히려 생존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 또한 생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회복력(resilience)이며, 이 회복력은 인간의 정신력보다 대뇌피질 안의 해마의 크기가 우선된다. 해마의 크기가 클수록(혹은 발달될수록) 개인은 재난의 ‘트라우마’에 대해 극복의 여지가 높다. 즉, 공포는 극복의 관점보다는 적응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옳다.


그렇다면 공포는 어떻게 적응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개인의 범주에서 말하자면 한마디로 ‘훈련’이다. 재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자신이 대부분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는 절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심리적 적응은 간단한 숨쉬기만으로도 이룰 수 있다. 흔히 미국 경찰들이 말하는 ‘전투 호흡’이 그 예가 된다. 총격전이라는 비일상적 사건이 벌어지면 그들은 4초간 들어 쉬고 4초간 내쉰다. 싸이렌 소리에 맞춰 하면 더 좋다. 현장의 상황을 미리 인지하면서 심호흡에 맞춰 일상에서 재난으로의 인식전환을 한다는 말이다. 즉, 뇌 속에 비상 스위치를 쉽게 켤 수 있도록 만든다. 반복된 연습이 이를 가능케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상황에 평소부터 익숙해야 한다. 화재의 경우, 개인은 소화전 위치나 비상구의 위치를 평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반복으로 시뮬레이션 작업을 거쳐야 한다. 대피 행동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이를 뭉뚱거려 ‘재난 인격’이라 정리한다. ‘911 사건’ 때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전원을 끈다고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한 것은 평소 자신의 ‘재난 인격’에 대한 인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부단계에서 죽는다. 일상이 지속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단호한 한명이 이를 타파할 수도 있지만 운은 그렇게 공평하지가 않다. 그렇기에 숙고의 과정을 영민한 몇몇 개인의 범위로 한정짓고 책임지우기에는 인재로 도살되는 희생자의 수가 너무 많다. 숙고의 과정은 과학적으로 구축된 알고리즘으로 집단 내에 구축되어 있어야 하며 개인은 이를 의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재난 훈련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하며, 그 지시는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고압적이어야 한다. 집단은 개인 별로 재난 시 책임을 지워줘야 하며 이를 복기 시켜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이다(또 비용과 번거로움의 문제이기도 하다.).


반면 가끔 소수는 위와 같은 생태적 공포를 극복하고 ‘돌발상황’에서 영웅적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도, 진화적 관점에서도 고찰될 수 있다. 카네기 영웅기금위원회에 따르면(사례수집의 편중가능성을 고려하더라도), 영웅의 91%는 남자이며(반면에 요구조자의 61%도 남성이다), 노동계급이고, 도덕적의무감을 지니고 있다. 반면, 희한하게도 종교적 열정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를 밉쌀 맞게 진화적으로 분석하면, 대부분은 남성이고 독신이고, 아이가 없으며, 젊은 사람일 경우가 많다고 추측된다. 이타적 행위가 결국 유전적 생존 가능성을 증대시키며, 집어 말해 영웅적 행동을 통해 번식기회를 확대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타주의를 믿는 사람에게는 곤혹스러운 말이겠지만 심층의 아래에는 쾌락주의가 잠재함도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이는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확인되는 분명한 본능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와 같은 실체화된 진실보다 설득력이 있었던 부분은, 영웅의 대부분은 실상은 ‘겁쟁이’라는 사실이다. 영웅은 ‘만약 위험을 무릅쓰고 도움을 주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상상력이 넘친다. ‘무릅쓸 수 있다.’는 근거 빈약한 낙관론에 비해 ‘도와주지 않았을 경우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가책은 너무도 무겁다. 양심의 저울이 지나치게 후자 쪽으로 기운 사람들이다. 후에 이어질 ‘트라우마’에 대한 회피를 위해 현재의 위험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바로 영웅인 셈이다. 아~. 이 불쌍한 사람들아. 그들의 ‘약함’에 대해 공감이 가고 눈물이 절로 겹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만약 영웅 심리가 이기적 유전자의 결과라 할지라도 이를 반대로 말하면, 누구나 특정상황에서 이타적 행동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영웅 숭배의 비극적인 허상에 매달릴 게 아니라 ‘범인(凡人)’의 개인적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이와 같은 행동을 장려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Ps. 스마트 월드에서 ‘티핑 포인트’가 무척 강조되었다. 이른바 질적 변화라는 부분이다. 몇몇의 책들은 내 사고 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곤 한다. ‘언씽커블’도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직장 내, 내 사무층 소화전의 위치를 떠올렸으나 생각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직접 확인했는데, 실소가 절로 나왔다. 내 층 소화전 위치는 바로 입구 옆이었다. 이걸 평소에 수백번이나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지 밖’이니 생각이 안났던 것이다. 이 글 읽으시는 분들은 장소를 불문하고 소화전과 비상구를 한번 살펴보시길 바란다.


Ps2. 이 책에 대해 할 이야기가 좀 더 있습니다. 다음에 간략하게 잡담하는 식으로 써볼 요량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나저나 테크노마트의 대처를 생각하면 진짜 골때리네요(;;).


댓글 : 2 개
생존에 관련된 게임을 만들려고 하는 저에게는 정말 도움이 되는 책이 될 것 같군요.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로카유// 어떻게 만드시는 가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겠네요. 이게 일상생활에서의 재난이 주된 내용이라 서바이벌 하고는 거리가 있어서;;

절체절명도시 같은 도시 안의 대규모 재난이나 만화 '생존게임'과 같은 총체적 재난에 대한 내용은 아닙니다.

대형 건물에서의 화재나 비행기 추락시 탈출 아니면 군중 사이에서의 압사 사고 같은 일회다발성 재난에 대한 내용이라서요.

어쨌든 별개로 생존게임을 만드신다니 기대되네요. 나중에 만드시면 한 줄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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