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일기] 사망에 대한 면책권리. 의사, 의술을 말하다.2012.07.07 AM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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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 마지막 선택- 환자가 주인공이 되는 수술을 위한 상식과 진실, 강구정, 공존, 2007.


5월에 꽤나 아팠다. 이유는 간단한 결석 2개, 누가 봐도 별 것 아니다만, 난생 처음하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 특히나 하반신 척추 마취라는, 잠시나마 반신불수를 경험해야하는 불안함은 더했다. 그리고 수술 후, 혼자 반나절을 고개만 까딱하며 누워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돌덩이 같은, 허리 아래에 대한 잡념이 온통 머리 위를 떠다녔다. 혹시나 하는 어처구니 없는 초조 때문이었다. 그 초조함이 '수술'에 대한 책을 집게 만든 셈이다.


수술, 마지막 선택을 다 읽었다. 각 질병에 대한 소개(외과적 치료가 필요한)와 치료법에 대한 개요가 환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서술되어 있다. 질병마다 관련된 일화가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다. 눈길 가는 것은 저자의 진솔한 고백이다. 본인이 낸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적혀있다. 사망에까지 이른 사고인데도 말이다. 이 정도의 치부까지 솔직히 드러내는 것 또한 용기라 생각한다. 격정적 내용에 비해 어조의 담담함은 저자에 대해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치부에 대한 서술의 객관성을 볼 때, 내가 보기엔 자책을 넘어선 어느 정도의 경지로서 풀어 놓은 듯 하다.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에서 안광익이 허준에게, "생목숨 안잡은 명의 있더냐?"라고 반문했는데, 저자는 '이는 사실이다.'라고 실토한다. 실수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의술에 대해서 '실수'는 입밖에 감히 내기 힘든 금기 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만, 인식의 수준에서라도 모두 같은 인간임을 이해한다면 의사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 책은 그 기대를 위해서 쓰여졌다. 수술과 회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환자의 의지와 의사에 대한 마음, 따뜻한 신뢰라 한다.


저자의 어조가 달관한, 그리고 인생사의 허허로움이 엿보였다. 글쓴이는 졸필이라고 하지만 잘쓴 글이 항상 문학적으로 유려한 문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의학적 소견에 대한 기록, 일화에 대한 소개가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오늘 또 한걸음 이해의 폭을 넓힐 수가 있었다. 한 가지 의아스러웠던 점은, '내용보다 저 평가된 책' 리스트 중에 이 책이 수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읽는 내내 참 흥미로웠는데 말이다. 어느 사회나 안 그렇겠냐만은(그러나 사회적 안전망이 적은 국가일수록 더욱 그렇다), 특히나 건강이라면 참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이슈를 끌만 하기도 했을텐데... 짐작가는 부분은 바로 표지이다. 표지 자체가 참 투박한 사진으로 메워졌을 뿐 만 아니라,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심지어 웃고 있다. 이 '인지부조화'적 장면 때문에 아무래도 독자들의 손이 쉽게 가지 못했을 거라 추측한다. 그러나 내용만은 확실히 진국이다. 추천하는 바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목차를 꼭 소개해야 되지 싶다. 아래 목록의 질병에 대해 어떤 외과적 조치가 취해지는지 궁금하신 분은 사보셔도 후회하지는 않으시겠다.


1부 과유불급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중용의 수술
1장 충수염
2장 치질
3장 제왕절개
4장 자궁 질환
5장 탈장
6장 소아 질환
7장 허리 디스크
8장 인공관절

2부 개선광정 좋도록 고쳐서 바로잡는 치유의 수술
9장 전립샘 질환
10장 담석증
11장 간 이식
12장 신장 이식
13장 뇌졸중
14장 심근경색증
15장 파행증
16장 하지정맥류

3부 지피지기 암과의 전쟁과 공존을 모색하는 전략의 수술
17장 암 환자 상식
18장 위암
19장 간암
20장 간문부 담관암
21장 췌장암
22장 대장암
23장 후두암
24장 갑상샘암
25장 폐암
26장 유방암
27장 품위있는 죽음

4부 인간 그리고 의사 메스를 든 외과의사의 고뇌
28장 수술중독증
29장 VIP증후군
30장 임상시험
31장 외과의사의 실수
32장 즐거운 3D
33장 누가 명의인가



Ps. 책 속에서 찾은 기억에 남는 말 한자락.

지난 해 3월 초에 외과의 신입 전공의들을 환영하는 연례행사가 시내의 음식점에서 있었다. 한 신입 전공의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외과를 지원한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 제가 외과를 지원하게 된 것은 외과가 3D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3D란, Dynamic(역동적인), Dramatic(극적인), Dreaming(꿈이 있는)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해서 저의 꿈을 이루어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의 3D 선언은 외과에 몸담아온 선배 전공의들과 교수들에게도 큰 울림이 있었다. 돌아보니 내게도 그가 말한 3D에 해당하는 경험들이 많았다. - p.354.



Ps2. 간만에 평어로 하니, 글빨이 좀 어색하네요. 죄송합니다. 감안해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위의 3D 선언은 제게도 많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제 현재 위치와 꿈을 생각해보니, 저도 나름 3D일 수 있을 것 같아 좀 흐뭇했습니다. ^^

간략 스케치한 걸 그대로 올리는 형편이네요. 그래도 안 올리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 주섬주섬 합니다. 요즘은 나름 인생의 단계를 올라가려고 끙끙대고 있는 중이라, 시간보다 심리적 여유가 없네요. 그런데... 이와중에 하고 있는 게임은 '캐서린(;;)' 아. 장기 연애자 중 한 명인 저로서는 참... 여러모로 와닿는 게임입니다. ^^;;

그러면 다들, 좋은 밤 되세요~~. _(_.,_)_

타오카카♥, 체홉님 댓글 감사합니다~.


댓글 : 2 개
간만에 님의 독서일기 보게 되네요 ㅎㅎ 이번에는 무식한 저도
글을 따라갈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일단 날도 덥고 하니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감상이네요. 제가 부족한걸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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