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일기] 독서일기. 권력과 국가를 향해 펜촉을 던지다. 2012.12.12 PM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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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 동물농장, 조지 오웰, 동서문화동판, 2009.

※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10.


흔히 영국인의 자긍심으로 풀이되죠. ‘월리엄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 인도인 입장에서 보면 참 얼척 없는 발언입니다. 뭐, 이 문장의 타당성을 잠시 접어두고, 그만큼 영미 문학 안에서 셰익스피어의 위치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조지 오웰은 그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작가라는 거죠. 시대를 20세기로 한정한다면, 단연 으뜸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문학적으로 비교하자면, 전자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개별적 배경과 사건으로 푼 반면, 후자는 개별 사건(물론 역사적 흐름에 있는)에서의 통찰을 인간 보편적 이성에 호소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상징과 메타포로 인해 당해 역사와 독립성을 지니는 반면, 조지 오웰은 작품은 직시성과 실현 가능성 때문에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딛고 있는 실상과 밀접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감동과 고민보다 소름이 돋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당면한 현실이니까요.


빅 브라더라는 한 단어로 압축 가능한 작품, 1984는 독재와 파시즘이 결부되어 대중화된 사회, 자기 감시 · 자기 검열이 자기 생존의 요소로 자리매김한 세계상을 그려냅니다. 전시 영국의 사회상을 빌어 말이죠. 그리고 그 속에서 어정쩡한 회색분자의 정체성마저 파괴하는 폭력적 현실을 보여줍니다. 흘러가는 메모를 기억하고 일상의 기록을 남기며 때론 여자도 만나보는, 중년 턱을 갓 넘어가는 시시한 남자조차 감시가 만연된 사회에서는 그냥 두질 않습니다. 그게 ‘타락’의 시작이라는 거죠.


‘1984’나 ‘동물농장’의 시대적 가치나 문학적 평가는 중후한 평론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성심성의껏 하신 게 많으니, 제가 굳이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대신 제 눈길이 닿은 두 가지 정도를 거론해 볼까 합니다. 첫째는 정치로서의 ‘언어’고 둘째는 생뚱맞게도 ‘사랑’입니다. 이는 두 작품 모두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먼저, 언어. 1984의 경우 소설 초반에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슬로건이 나옵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문구입니다. 한편, 동물농장의 경우는 폭군 돼지 나폴레옹이 조작한 최후의 계명,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입니다. 첫 번째 문구가 역설에 가깝다면, 두 번째 문장은 모호에 근접합니다.


조지 오웰은 기자였습니다. 누구보다 언어의 힘에 민감하고 그 힘의 폐해 또한 체험한 저자라 할 수 있죠. 그는 하나의 문장이 권력의 요구에 따라 주조되고 구성되어 일종의 슬로건으로서 대중에게 등장하는 과정을 핍진하게 보여주고 그 폐해에 대해 매서운 비유와 통찰을 덧붙입니다. 1984에서는 전개에 있어 비극의 절정으로 치달을 때, 일종의 반동 인물인 오브라이언이 몇 페이지를 걸쳐 주구장창 설명하지요. 직접 읽어 보시면 그 궤변의 섬뜩함에 놀라실 겁니다. 심지어 읽는 독자가 설득마저 되려고 하니까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와 같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언어 주조가 지금 한국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겁니다. 한 어구로 줄일 수 있습니다. 바로 ‘4대강 살리기’죠. 실제로 강을 죽이는 토목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름을 살리기로 붙이고 홍보를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죠. ‘4대강 살리기’란 프레임이 완성되면, 그 안에서 온갖 격론이 펼쳐진데도 결국 담론으로는 ‘살리기’를 못 벗어납니다.


‘4대강 살리기’는 위와 같은 ‘오웰식 화법’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문맥에 따라 오웰식 화법을 폄훼한다면 ‘궤변의 치장’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미국 공화당 대중여론전문가 ‘프랭크 런츠’는 이 오웰식 화법에 대해 좀 뻔뻔한 입장을 취합니다. 사안에 대한 도덕적 가치판단을 배제한다면, 오웰식 화법은 정치인이 마땅히 가져야할 능력이라는 겁니다. 여러 이익단체가 물려 있는 복잡한 안건을 ‘다수 대중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단순화하고 쟁점화 시키는 건, 다수결의 입각한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정치 지도자나 정당 머신(machine)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부분이라는 거죠. 물론 프랭크 런츠의 말도 ‘정책을 추진하게끔 하는 정치인의 미덕’을 말한 거니 일리는 있지요. 하……. 어찌되었건 펜촉은 진실을 향한다라 강변한 조지 오웰이 관 뚜껑을 열어 제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두 번째, ‘사랑’. 1984는 구조화된 폭력 속에서 개인 간의 사랑이 어떻게 망가지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빅브라더의 회복, 다시 말해 ‘학습, 이해, 수용’의 순서를 거쳐 회개로 돌아서며 자신의 연인을 진정으로 배신하고 맙니다. 소설에서 공포의 산실로 불리는 101호실에서 말이죠. 개인적인 일화를 적자면, 제가 올해 결혼을 했는데요. 이 부분을 읽은 뒤 제가 직접 작성한 혼인 서약문에서 ‘영원히 사랑하겠다.’란 부분을 빼버렸습니다. 저역시 그 상황에서는 배신의 선택을 피할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101호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과 같습니다.


다음, 동물농장의 경우는 ‘공동체로서의 연대적 가치(사랑)에 대한 믿음’이 잘못된 지도자를 만났을 때 서로와 자신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숫말 ‘복서’입니다. 복서는 풍차를 지으면 구성원들의 노동력이 경감되고 그로 인해 동물 농장에 유토피아가 온다는 돼지 나폴레옹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릅니다. 본인의 고생을 일종의 숙명으로 받아들이죠. 그 과정에서 다른 동물들의 우려나 비판은 지도자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죠. 젊은 복서는 물리적 ‘힘’이 충만했습니다. 그가 마음먹기만 했다면, 나폴레옹의 어설픈 획책 정도는 쉽게 분쇄시킬 수 있었죠. 그러나 그는 합리성이 결여된 신념으로 거부해 버립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본인의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과 더불어 확신의 강도는 커지고 나중에는 고통마저 종교적 고행으로 받아들입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물론 공동체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치죠. 순박한 맹종이랄까……. 그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읽는 3자의 입장으로서는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두 작품은 큰 틀에서 볼 때, 권력을 대하는 각 계급의 한계를 지적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방향성은 있었지만 연대는 배제된, 그 결과 미농지 같은 얇은 일탈과 반항을 일삼는 알량한 지식층 혹은 중산 계급을. 동물농장의 뚝심 있는 숫말 복서는 맹목적인 신념과 열렬한 열정은 충분했지만 과정을 차분히 복기하고 비판하는 의식이 부족한 노동자 계층을 비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계급에 대한 냉철한 시각은 그의 에세이에도 꾸준히 이어집니다.


한국에서는 조지 오웰이라고 하면, 그 특유의 교육과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훌륭한 소설가’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그는 소설보다 철저한 르포라이터와 진솔한 에세이스트로 더 많은 명성을 쌓아 올렸는데 말이죠. 오히려 소설이 숱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나 르포가 다져진 결정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볼 수 있습니다. 감동 또한 마찬가지죠. 그리고 이와 같은 감동은 ‘직시’에서 나옵니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직접 본 것을 쓰는 걸로 명성이 높습니다. 스페인 내전을 스페인 시민군으로 ‘전투병으로 자원하여’ 쓴 <스페인 내전을 돌이켜보다>나, <스페인 비밀을 말하다>는 당시 스페인의 정치적 현실에 대해 질곡하게 묘사하였으며(심지어 목을 관통당하는 부상도 입었습니다), <코끼리> 같은 경우 그가 인도에서 제국경찰로 생활하며 경험했던 코끼리 사살 일화를 소개함으로서, 백인의 허위의식과 제국주의의 허탈감, 그리고 개인으로서 순박한 대중들에게 상황으로 ‘내몰리는’ 강박의 자업자득을 지적합니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이와 같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에세이 29편이 실려 있으며, 이 작품들은 하나하나 소개하고 싶은 충동이 절로 들 만큼 정말 수작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문장이 매력적인데요, 어떤 화려한 수사나 비유보다 체험에서 나온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이 읽는 이에게 설득과 공감으로 다가옵니다.


개인적으로 참 기억에 남는 것은 1940년에 발표한 ‘좌든 우든 나의 조국(My Country Right or Left)’입니다. 사실 좌파는 우파에 비해 국가관이 좀 희박한 게 사실입니다. 이는 한국 뿐 만 아니라 좀 공통적인 부분입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억압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며 국가보다 계급의 혁명이 중요하다는 시각이 이어져 왔거든요. 이의 원조 볼 수 있는 19C 독일의 경우, ‘단일 국가로서의 구성’의 우파와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연대’의 좌파가 정면충돌한 역사가 있을 정도니까요.


2000년대로 들어선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좀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좌파의 투쟁은 국민 다수가 ‘국가=정부=정권’이라는 ‘의식적 미분화’상태에서 벌어졌거든요. 그러니 어떻게 보면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자칫 괴물이 된다.’는 니체의 격언처럼, 국가를 보는 좌파의 시각도 조금 경도되어 있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어느 지식인은 ‘자신의 자녀가 ‘한국인’이 아닌 ‘세계인’으로 크길 바란다.’라 지면까지 빌어 발언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내셔널리즘'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랄까? 이해될 부분도 많지만 민중의 생각과 조금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지 오웰은 이와 같은 좌파의 경직성에 일침을 가합니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이 어찌 되었든, 생각하는 주체의 사고나 감성적 기반은 본인이 밟고 있는 땅, 바로 ‘국가’를 떼어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강변합니다. 좀 어렵게 정리하자면, ‘토양’이 배제된 주장은 주장하는 이 스스로를 ‘타자화’시킨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조지오웰이 국가 전진의 목적을 좁은 의미에서 ‘영국의 이득’으로 가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영국의 이익과 인류 보편의 가치가 합치됨을 바라며, 나아가 둘이 상충될 경우 보편의 가치를 쫓는 게 더 마땅함을 주장한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저자의 삶으로 오롯이 증명했습니다.


그는 영국 제국주의 상징이라 부를 수 있는 제국 경찰을 그만두고,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영국의 치부라 할 수 있는 빈민의 삶을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서 POUM(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에 참여해 시민군으로 싸웠으며 영국의 중립에 비판의 칼을 드리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육군으로 자원해(하지만 건강상 이유로 거부당함) 국방 시민군의 중사로 근무. 군수 공장에서 본연의 임무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주저하는 평화주의자들을 향해 ‘정의’를 추구하는 자세가 무엇인가 내세우며 정의를 위해 지식인이 어떤 걸 희생하고 감내해야 하는가에 대해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사후 50여년이 넘은 지금에까지 조지 오웰이 추앙받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올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저자를 꼽자면, 바로 조지 오웰입니다. 특히나 국가관에 있어서 감흥이 컸습니다. 한 개인에게 ‘국가’라는 개념을 어떻게 소화시켜야 하는지 일종의 잣대를 제시한 셈이거든요. 막스 베버식으로 말하자면, ‘국가는 위임한 폭력의 총체’라 건조하게 풀이할 수 있지만, 그건 머리로 이해하는 대답이지, 가슴으로 와 닿는 대답은 못 된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지금에 조지 오웰의 저서는 이 땅의 청년이라면 마땅히 관심가져야 볼 만한 양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적극 추천하고요, 특히 소설과 에세이집 모두 ‘한꺼번’에 읽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러면, 소설이란 형식 속에 은근한 조지 오웰의 사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실 수 있을 겁니다.



Ps. 아... 두 권을 함께 몰아 쓰려고 하니 확실히 버겁네요. 항상 댓글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

낭만군™ // 1984랑 동물농장 소장중입니다...ㅎㅎ 근데 1984 번역이 옛날 번역이라 빅브라더가 아닌 대형...옛날 번역이라 읽으면 왠지 80~90년대 향수가 물씬나는것 같아요^^

댓글 : 3 개
잘 읽고 갑니다. 두 권다 읽었을때 충격이 컸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한 충격이였죠. 특히 동물농장은...
매번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도 잘 읽고 갑니다.
독서 슬럼프네요.
책이 손에 안잡힙니다.. ㅠㅠ
꾸준히 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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