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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독서일기. 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2013.05.29 AM 07:34
※ 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 시험 잘 보며 세상 바꾸기, 버텔 올먼, 모멘토, 2012.
편집부터 상당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저자는 독자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교수로서 고등교육 과정의 채점 법칙을 알려 줄 테니, 대신 마르크스에 대해 알아보자. 라고 제안합니다. 단, 시험요령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1원칙은 능률을 추구할 수 있으므로, 다시 말해 요령부분만 읽을 수 있으므로, 시리얼의 초코볼처럼 중간 중간 섞어 놓겠다. 편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게끔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은 교묘한 액자식 구성으로 짜여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단원 별로 주제 분류가 아니라, 한 단원에 맑시즘과 시험보는 요령이 문단마다 겹쳐 놓여 있습니다.
도입의 문제제기가 재미있습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해 형식적으로 도전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권익이 극도로 위축된 지금 같은 사회에서 노동자의 구조에 대한 독단적 반기는 모난 돌이 정 맞듯이 두들겨 맞을 뿐이다. 그렇기에게 나는 나의 학생이 자본주의 생태에 충분히 순응할 수 있게 요령을 가르쳐주며 대신 그들에게 자본주의의 맨얼굴을 깨우치게 해 언젠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닐 수 있도록 계급적 역량을 키우게끔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일례로, 저자는 시험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 ‘시험 문제를 푸는 행동은, 과제를 해결해야 할 때 맞닥뜨려야 하는 시간과 형식을 일찌감치 규정함으로서 훗날 엄격한 노동규율을 학생들에게 대비시키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노동자를 훈육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라고 신랄하게 규정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오엑스문제에서 답의 실마리조차 안 보일 경우를 위해 다음의 통계를 기억해두라. 진위를 가리는 문항의 진술 중 ‘모든’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은 다섯 중 넷이 거짓이고, ‘아무도(아무것도, 조금도) ~ 않다’라는 식의 말이 들어간 것도 다섯 중 넷이 거짓이며, ‘항상’이 들어간 진술은 넷 중 셋이 거짓이다.’ 라고 앞서 비판한 자본주의 구조를 공고히 하는 시험, 그 거친 너울 위에서 서핑 보드 타는 방법도 천연덕스럽게 알려줍니다.
이를 한국으로 빗대본다면, 우석훈이 ‘필연적으로 착취의 시대를 살 수 밖에 없는 88만원 세대여, 토익책을 덮고 짱돌을 들라.’는 주장에 83년생 진보 논객인 한윤형은 ‘그건 각박한 경쟁 속에서 최소한의 자구책도 마련하지 말라는 386세대의 배부른 소리다.’고 맞받아치는 좁은 세대 간 대결에서 강준만 쯤 되는 노학자가 ‘그러지 말고 일단 배는 채워가며 머리도 깨우세.’라고 슬그머니 조언하는 형국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노회란, 현명한 적응을 뜻하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아직 57세인 강준만씨는 학자로서 한창이죠 ^^;;)
어떻게 보면, 이는 다음 세대에게 혁명이 아니라 순응을 종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방법적 타협이긴 합니다만, 맑시즘을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혁명이라 규정하고, ‘스무 살에 혁명을 꿈꾸지 않으면 심장이 없고, 쉰 살에 혁명을 꿈꾸면 머리가 없다.’는 보수적 격언에 대해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인간으로서 심장이 없던 사람이다.’라고 빈정거리는 열혈이자 순혈주의 학자에겐 이와 같은 타협도 차마 못 내켜하는 합의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함으로써까지 신자유주의를 벗어난, 다른 대안 사회를 꿈꿀 수 있는 인적 토양을 만들어 보겠다는 노학자의 노력은 참 고맙고 한편으로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능청스러운 유머와 일종의(채점자 입장에선 저자로서) 자기비하 우스개로 꽤나 밝은 어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근본적 처연함을 바탕에 둠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유쾌하게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페이소스로 승화시킨 서술이 일관적으로 가능한 거겠죠. 첫 문단에 소개한 입체적 구성은 이 책의 핵심이자 주제의식과 표현방식의 주물이라 평할 수 있습니다.
흠, 쓰다 보니 뭔가 서글프게 되었는데요, 이 책은 절대 감성적이거나 무거운 책이 아닙니다. 진행 내내 한결같이 ‘SNL 코리아’ 같은 저렴함과 고급스러움의 적당한 섞인 킬킬댐을 선사하고 있죠. 저자의 어조가 엄숙함과 비틀어냄의 경계에서 ‘논다’고나 할까요? 읽는 내내 쓴웃음 지으며 때론 호탕하게 웃으며 봤습니다. 어쨌건 이 필연적 경쟁 사회에서 요령을 키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되거든요. 끝으로, 저자가 일종의 권말 시험이라 던진 질문을 들며 마무리 짓겠습니다. 300p에 달하는 결코 짧지 않는 글의 핵심 중 핵심이니 잘 풀어 보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_(_.,_)_
[권말 시험] p.276
- 내 강의 내용을 전체를 간단한 질문 하나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백열 전구 하나를 갈아끼우는 데 자본가가 몇 명 필요할까?"
이게 전부다. 정말이다. 10초의 여유를 갖고 생각해보라. 정답과 여러분의 점수는 다음 쪽 아래에 나온다.
그 답은 ...
Ps. 저는 다음번 재게시할 때 정답을 공개하겠습니다. (독서 일기는 쓴 게 아까워서 2번 게시됩니다. ^^;;) 맞추시는 분은 이 책 읽을 필요가 없긔~~`. 는 농담!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 항상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_(_.,_)_
호아킴// 난독증.. 마크로스로 읽고 들어왔어요;;
충전완료 // 답 알려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seivhalt // 갈아끼우는 행위에 초점을 두면 0명, 전구를 생산하고 유통하는데 초점을 두면 전구를 판매하는매장오너1+전구생산공장오너1+전구재료유리,텅스텐,구리 생산과 유통에 각각3 =1+1+1+3+3=최소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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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 공개!
" 한 명 (또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들은 노동자를 고용해 전구를 갈아 끼우게 한다." 라고 대답한 학생은 F학점을 받고 이 강좌를 재수강 한다. 이번에는 절대 페이지를 건너 뛰면 안 된다. "한 명도 필요 없다."라고 대답한 학생은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뿐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하는 데도 자본가는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우등생 표창과 함께 졸업하고 이제 나가서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된다.
댓글 : 3 개
- 샴블로
- 2013/05/29 AM 07:53
젠장 마크로스가 아니었어
- 푸뇽푸뇽
- 2013/05/29 AM 08:18
으아니 챠! 답 생각하고 있었는데 답이 나와있다니!
- 두리번 두리번
- 2013/05/29 AM 08:40
나도 마크로스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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