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일기] 간만에 독서일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2014.04.06 AM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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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2012.


헤아림에 대한 사람의 호기심은 본능일지 모른다. 무엇에 대해 정의하고 같고 다름을 구분 짓고 거기에다 척도를 정해 정량화하고 가치를 부여하면 통계란 게 나온다. 세상 수많은 것들에 대한 통계는 여지없이 존재하고 책 또한 마찬가지다. 그 중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코자 한다. 다음 물음. ‘20세기 이후 가장 많이 구입되었으나 가장 읽히지 않은 과학도서는?’ 다시 말해, ‘서재의 장식품으로 전락한 베스트셀러는?’ 답은 88년에 출간된 스티븐 호킹의 대표작 ‘시간의 역사’이다. 명료한 제목과는 달리 복잡한 개념 때론 전문적 기술로 소수의 경탄과 다수의 탄식을 이끌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여러모로 비운이다.


그럼 이 질문의 대상을 2010년 한국으로 돌린다면 어떨까? 바로 응대하는 퀴즈만큼 싱거운 건 없지만 답은 하나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돌이켜보면 2010년의 ‘정의’열풍은 돌풍이라 할 만큼 뜻밖이었고 또 그만큼 거셌다. 인문학 불모지라 일컬어지는 한국도서의 생태계에서 100만부 이상(2011년 4월 기준)의 철학을 ‘팔아치운’ 괴물의 등장은 사회적 현상으로 그만큼 한국 사회가 정의에 목말라 있다는 걸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2008년의 촛불 집회와 2009년의 용산 참사의 참혹한 집단 상처가 2010년의 ‘정의’ 화두를 등장시켰다.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각종 매체에선 시대의 요구라 호들갑을 떨고 특히나 진보 매체에선 대중의 각성에 방점을 찍고 다시금 ‘응답하라! 2008!’을 외쳤지만 14년인 지금에서 돌이켜 보건데 이 정의 돌풍은 무기력해진 공동체적 시민의 자기 위안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대선 이후 레미제라블로 대표되는 대중의 힐링 코드와 동일하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려웠다. ‘정의’란 화두를 자기 위안의 소비재로 삼기가 그리 녹녹치 않음은 분명했다.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나 이른바 ‘최소 · 최대의 자유론(타인의 피해를 최소로 하는 범위에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 더불어 칸트의 선험적 도덕 주체, 나아가 좋은 것 뿐 만이라 옳은 것도 추구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론까지. 이 숱한 학자와 개념과 사례가 난무하는 저서가 완독되길 바라는 건 하버드생 제자를 둔 저자에게는 일상이겠지만 대중서로서는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장정일이, ‘이 책은 간단한 정리와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간단한 개념 정리만 아니라, 개념 훈련을 위한 골치 아픈 사례들이 병렬적으로 제시되어 있어 독자를 혼돈에 빠뜨린다.’라고 혹평했을까. 그래서 오히려 ‘정의…’의 완독보단 ‘정의…’ 강의 시청이 ‘정의…’를 대한 대중의 더 일반적인 선택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정의…’ 이후에 국내에 소개된 대중서로는 본격적인 후속작이라 평할 수 있다. 이 책은 전편의 복잡한 학설, 또한 독자 입장에선 읽는 족족 곤혹일 수밖에 없는 추상화되고 제한된 딜레마 속에서의 선택 등을 훌훌 털어내고, 상대적으로 명료했다고 평가받는 ‘경제적 정의’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앞서 말한 학자와 개념과 사례에서 학자의 전부와 개념의 반을 덜어내고 그 빈 공간을 숱한 사례로 메웠다. 어떻게 보면 전개가 말랑해졌다는 비평이 있을 법하나 예시의 다채로움과 메시지의 일관성은 그대로고 더 무거워졌다. 무엇보다 한국사회에선 MB시대로 방점 찍힌 신자유주의의 횡포를 여실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전작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시사적이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가진(having a market economy)시대에서 시장사회를 이룬(being a market society) 시대로 급속도로 휩쓸려 왔다. 두 개념의 차이는 이렇다. 시장 경제는 생산 활동을 조직하는 소중하고 효과적인 도구이다. 이에 반해서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 방식이다. 시장사회에서는 시장 이미지에 따라 사회 관계가 형성된다.’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서문>


저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폐해를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상징되는 탐욕이라 규정짓지 않는다. 탐욕은 거래 만능 시대의 부분적 진단일 뿐이라 말한다. 본질은 시장이 시장가치가 원래 속하지 않는 영역으로 팽창하는 것. 그리고 현대정치가 이와 같은 시장 팽창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어 논쟁하길 꺼려한다는 점이다. 중세 암흑기의 신앙에 대한 도그마가 시장으로 대상만 바뀌어 반복되는 현실을 방관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와중에 유일하게 던져지는 질문은, 경제학자들의 평이한 물음. ‘그건 얼마죠?’가 전부이다. 그래서 샌델은 이 책을 통해 ‘그래. 과연 그것은 얼마냐?’ 라 지독히도 되묻는다. 그것도 나선형으로 사례는 늘리고 논점은 좁히면서 말이다.


평등주의 원칙이 내재된 줄서기 도덕을 위협하는 ‘각종 새치기’는 얼마에 거래되는가?, 임신 권리를 스스로 사고파는 대리모와 불임시술에 대한 인센티브는 얼마인가? 신의와 우정의 상징인 사과와 축사를 대행해주는 대리사과서비스와 결혼식 축사판매는 어느 정도 가격이면 적당한가? 주경기장에 붙는 이름의 가격은 얼마에 거래되어야 하는가? 나아가 내 목숨은 얼마인가(사고를 대비한 생명보험이 이윤 창출의 수단인 사망 채권으로 변질된 경우)? 독자는 위와 같은 현재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이 숱한 현실에 대해 일일이 답해야 되는 노역에 맞닥뜨리게 된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이 물음에 모두 통용될 수 있는 공식을 마련해 두었다. 그것은 ‘공정성’과 ‘부패’이다. 공정성이란, 구성원 모두가 공정한 조건에서 거래를 이룰 수 있느냐? 다시 말해 시장의 거래가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를 보장하는가? 에 대한 평가이다. 다음으로 부패는, 어떤 대상이 재화로 규정되는 순간 변질되는 대상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규준이다. 풀이하자면, 공정성은 사회적 약자의 불평등한 교섭력에 대한 지적(가난한 이의 신장거래)이고 부패는 교섭력의 차이가 없다하더라고 거래될 수 없는 대상(우정, 사랑)이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독자에게 이 두 가지 잣대로 시장주의 사회에 대해 나름의 가치관을 세울 수 있게 유도한다. 그리고 시장의 맨얼굴을 직시하게 만든다.


시장은 특정 가치를 구현하고 한번 재화화된 공동체적 규범이나 추상적 가치에 대해 반드시 생채기를 남긴다. 이는 이스라엘의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한 유명한 실험으로 증명된다. 이스라엘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도입했다. 그런데 이 결정은 사실상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경우를 거의 두 배로 늘리게 했다. 부모들은 벌금을 지각에 대해 자신이 자발적으로 지급하는 비용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어린이 집이 약 12주 후에 벌금제도를 없앴지만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의 수는 늘어난 상태 그대로였다. 금전적 지금으로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가 일단 잠식당하고 나자 과거의 의무감을 되살리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이 강조하는 점은 시장은 단순한 메커니즘에 불과하지 않다는 시장사회의 수면 아래 진실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이 시장사회에서 역시나 저자의 결론도 공동선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고민을 하게끔 하는 시민 의식의 고취로 돌아간다. 정의로운 사회의 기본 조건을 좋은 삶에 대한 기준이라고 강력히 변론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금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인용은 이 주장의 백미이다.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 - 아리스토텔레스” 그렇기 때문에, 샌델은 이타주의 ? 관용 ? 결속 ? 시민 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라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고 평했다. 또한 그래서 저자는 자극의 도구로서 현실 정치에서 정치인들의 도덕적 논쟁이 필요함을 새삼 강조한다. 이제는 철학의 한 분파였던 정치철학이 철학 전면에 나서야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이나, 2010년 마이클 샌델이 내한 했을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정의를 왜 지켜야 합니까?”였다고 한다. 이 일화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일화가 납득할 수 있는 범주에 든다는 게 현재 대한민국의 분명한 불행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돈으로 사지 않아야 되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다행히 이번 작은 ‘정의…’ 모호함에서 벗어났다. 그 답은 책 속에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정답은 분명 보이는 길이나 모진 가시밭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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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 간만에 쓰니까 확실히 힘드네요. 평소 쓰는 시간의 2배 정도 걸린 듯 합니다. 역시나 글쓰기는 습관인 모양입니다. 한번 멈추니 다시 굴리기가 쉽지가 않네요. 짧게 나마 쓰는 습관을 붙여야 되겠습니다. 그럼 여유로운 휴일 되세요~`. _(_.,_)_


아래는 전 게시 때 달아주신 댓글.

푸뇽푸뇽//
마이클 샌델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고 '왜 도덕인가' 까지 봤는데
'왜 도덕인가'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재탕처럼 보여서 관심도 안 두고 있었는데 이런책이 나왔었군요.
독서 일기 잘보고 갑니다 /.ㅁ./

꼬박// 매번 관심있게 보아 감사합니다. ^^
댓글 : 3 개
직접 이렇게 장문의 후기를 작성하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ㅜㅠ
저는 책만 읽을 줄 알지 나중에 독후감 쓰려고 하면 되게 막막해져서 안써지게 되던데
마이클 샌델 도서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봤지만 내용이 많이 어렵더라구요 저에게는;;;
이 책도 공부 다 하면 읽어봐야겠네요 ㅎㅎㅎ
감사합니닷!
요즘 서점에서 그리고 도서관에서 자주 보게 되는 보물~!
언젠가는 꼭 필히 읽어봐야 할 보물중에 하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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