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읽기] 허탈한 뒷걸음질. 영화 읽기 '제이슨 본'2016.08.04 AM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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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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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슨 본이 개봉했습니다. 제레미 러너가 주연한 본 레거시가 외전 평가를 받으니, 맷 데이먼 주연에 폴 그린 그리스 감독의 이번 작품은 본 트롤로지의 적통을 잇는 실질적인 후속작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전작 본 얼티메이티덤이 ‘007 시리즈가 꿈도 꾸지 못했던 경지’(이동진)란 평가를 받을 정도니 이 작품에 대한 일반 관객의 기대치는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싶습니다. 영화계의 기본 속설이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이긴 하지만 본 트롤로지는 이런 편견을 여지없이 부수며 첩보물의 문법을 바꿨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죠. 그러기에 이번 작품의 초점은 한 줄로 요약됩니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까?’

 

 

  결론부터 적겠습니다. 실패입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전작의 성취를 갉아 먹었다고 표현될 정도로 퇴보한 후속작 입니다. 본시리즈의 많은 팬들은 이런 평가에 대해 반감을 가지실 수도 있겠습니다. 여전히 전개는 내달렸고 과정은 긴박했으며 액션 또한 촘촘했는데 말이죠. 하지만 문제는 영화의 표면에 있는 게 아니라 핵심인 내러티브가 근본적으로 뒤틀린데 있습니다. 영화 전개의 근본이 되는 설정의 속성이 바뀜으로서 결과적으로 겉모습이 비슷한 다른 영화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기존 본 트롤로지의 핵심은 자아 찾기였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나를 둘러 싼 환경을 재인식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반성과 자아성찰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나아가죠. 인간의 성장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이었습니다. 또한 여기에 반동적 대립 항으로 기계적 조직인 CIA가 한 축으로 서게 됩니다. 이 두 축의 대립이 영화의 핵심인 셈이죠. 조금 어렵게 표현한다면, 합법적 폭력 주체이자 통제 받지 않은 괴물, 즉 국가를 상대하여 주체성과 자아를 획득하려는 개인으로서 투쟁이 내러티브의 본질이란 말이 되겠습니다. 단순히 소모품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톱니바퀴의 자존심이 주인공의 성찰을 이끌어내며, 본 슈프리머시에서 보여준 피해자 소녀를 앞에 둔 담담한 암살 고백은 이런 주제 의식의 백미였다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제이슨 본은 이런 전작의 성찰에서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전형적인 복수극의 형태를 띠고 있죠. 내러티브의 기반이 평면적으로 바뀌었고 여기서 오는 본질적 가벼움이 안타깝게도 영화 진행의 전반을 지배합니다. 전개의 원동이 개인사로 전락해 버리니, 인물 행동의 합리성이 관객의 공감과 납득을 얻기 힘들어집니다.

 

 

  그 단편적인 예가 암살자의 묘사에서 나타납니다. 본 트롤로지의 암살자들은 기계적이고 냉혹했습니다.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없는 조직의 도구였습니다. 이는 다분히 계산된 표현입니다. 킬러들에게 색을 입히지 않음으로서 주체로서의 개인을 지우고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머신으로만 존재케 함으로서 암살자 자체를 조직의 상징으로 인지될 수 있게 나타냈습니다. 다시 말해 암살자에게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본 시리즈의 개성을 역행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는 겁니다. 조직 내 머신을 상대함으로서 본의 주체성이 두드러지고 개인 대 개인의 격투가 아니라 조직과 개인의 대결로 관객들에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상대 암살자 역할을 뱅상 카셀이 맡을 만큼 암살자의 주체성이 상당히 강조됩니다. 여기서부터 근본 내러티브가 흔들리는데, 앞서 말한 암살자의 주체성이 내러티브의 보안이 아니라 그걸 훼손하는데 쓰였다는 겁니다. 대단히 평면적이고 쉽게 소모되는 사적 복수심에서 비롯된 인물의 원동은 여태껏 보인 개인과 조직이 부딪히는 거대서사를 지우는 역할을 하고 그 빈자리가 단순한 복수극으로 메워진 셈이 되었습니다. 관객들에게 호응이 전편보다 못한 이유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더욱이 텔링에 있어서도 여러 부분 아쉬운 점이 있는데요. 그 동안 은막 뒤에 숨어서 다음 스토리로 대기 되었던 여러 흥미로운 가능성을 모두 종결시킨 전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특히나 숱한 변주가 가능했던 닉키 파슨스를 이렇게 쉽게 소모한 점은 스토리상에 낙제점을 주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본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이라기 보다 더 이상의 본은 없다고 감독이 강변하는 것처럼 이해될 정도니까요.

 

 

  전작의 파멜라 랜디의 자리를 떠안은 정보 분석관인 해더 리의 욕망도 관객의 호응을 얻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전편의 여러 반동 인물은 기계화된 조직의 상징이었고(그래서 이해되는 악당이었으며), ‘파멜라 랜디는 그런 관료 조직에 맞선 합리적 양심이었습니다. 관객이 매료될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더 리의 경우는 지독한 출세지향이며 욕망의 실현도 꽤나 비현실적이라 이런 인물 설정이 관객들의 호감을 자아내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감독이 아무래도 이 인물의 극 중 위치를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검사역을 맡았던 베니치오 델 토로 정도로 설정하여 적과 아군이 불분명한 인물로 나타내어 전개에 긴박감을 더하려고 한 듯한데, 결과적으로는 아무래도 번지수를 영 잘못 잡은 모양새입니다.

 

 

  이번 제이슨 본은 스노든 이후에 더 노골적이 된 첩보 환경에 대해 묘사하려 노력하고 어느 정도 성취도 가져 옵니다. 특히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비롯한 자유의 보호를 극 전개의 배경으로 삼았다는 것은 고무적인 발전이라 할 수 있죠.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이 본격적인 스토리와 괴리되었다는 게 영화의 실책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기본의 본 트롤로지가 9.11 이후의 미 제국주의 반성을 담은 것에 비해, 이번 작품은 시대는 변하나 조직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족 이외에 영화가 담아낼 수 있는 큰 시대정신이 보이질 않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는 CIA를 그려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의미를 담을 수 있겠습니다만, 이런 주제의식이 전작의 배경으로서의 완곡한 접근이 아니라 각 인물들 대사에서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투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대사 자체가 사건 해결의 기계 장치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소한 부분에서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몇 가지를 줄여 말한다면, 먼저 이제껏 잘 써먹었던 여러 상징의 대비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가 없습니다. 전 시리즈를 관통하던 추락과 부활, 그리고 그 사이의 물이 주는 재생 이미지 등 영화의 세련미를 더해주는 여러 기법과 장치들은 이번 작에서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디테일의 몰개성이 이번 작품을 평범한 액션 영화로 전락시키는 데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자기 복제에도 실패한 개성 없는 액션 시퀀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극의 전개에 알맞게 수직 · 수평적 구성으로 여운과 긴장을 자아내는 전작의 액션에 비해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여기에는 지난 10년간의 액션 패러다임의 변화도 포함되는데요. ‘존 윅이후 돌아온 롱 테이크, 풀 샷의 정직한 액션이 다시 세 몰이를 시작하는 것에 비해 이번 본 시리즈는 여전히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어지러운 숏 컷으로 관객들에게 현장감만을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액션의 동선은 정확히 보이지 않고 캐릭터의 거친 감정만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를 본 시리즈의 전통이라 말한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볼 수 있겠으나 적다면 네 번, 많다면 다섯 번이나 이어지는 변화 없는 구성에 질리지 않는 관객이 몇이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비판적으로 본다면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짧게 마무리한다면, 이번 제이슨 본은 캐릭터, 텔링, 액션 시퀀스 등 모든 면에서 전작의 허들을 넘지 못했습니다만, ‘이라는 왕관을 벗으면 평타는 쉽게 치는 소위 볼 만한 영화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그 왕관에 너무나 끌린다는 거겠죠. 이상 간만에 영화 읽기 제이슨 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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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간만에 쓰니까 쓰기가 너무 힘드네요. 다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_(_.,_)_

 

 

 

 

댓글 : 7 개
너무 나도 기다려왔던 시리즈지만 이젠 고이 보내줘야만 하는 사실이 슬프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백번 동의

합니다.
보기전부터 별로라는 소리를 너무 들어서 그런지
기대를 내려놓고 보니까 그럭저럭 볼만하더라구요
예전 본 시리즈 느낌나고 좋았어요
앞으로 후속작도 나온다던데 다음편엔 좀더 재밌게 만들어줄거라고 믿어봐야죠.
최악의 본이였습니다 감독이 스카이폴을 감명깊게 본게 확실함
저도 개인적으로 최악.......
이런식이면
제이슨본 10탄 까지 나올수 있을것 같음
어? 배후가 또있어? 전조직 요원 죽음.
우르르-
조직에 왠한명이 또 조력자로.
어? 배후가 또있어? 우르르-
조직에 왠한명이 또 조력자로.
  • Coiie
  • 2016/08/04 AM 02:47
어느 정도 동감합니다.

전작 요소의 재활용, 이야기의 탄탄함이 없는걸 감안하고 조금 마음을 내려놓코 보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제 3세계에서 지내는 본 모습을 보여줬으면 더 나았을 것을 허허
글 잘 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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