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담] 유모차와 유아차. 그리고 청각장애인2023.11.08 PM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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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모차와 유아차 그리고 청각장애인(농인)

 


  최근 난데없이 유모차, 유아차 논쟁으로 시끌시끌합니다. 유명 유튜브 프로그램에서 손님이 발언한 유모차 어휘를 자막에서 유아차로 바꿔 표기한 사건 때문입니다. 사실 이를 어휘로 보면 유모차와 유아차 모두 복수 표준어이자 일상에서 대응 가능한 어휘기에 둘 다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자막을 임의대로 바꾸었다는 흔히 말하는 괘씸죄도 이해가 갑니다.

 

  사실 저는 이 논쟁에 참가할 마음은 없었으나, 다음 내용의 댓글 때문에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발음대로 자막을 표기하지 않은 것은 청각장애인에 대한 기만이다.”

 

  물론 청각장애인 그리고 농인에 대한 자막 및 수어 통역은 되도록 1:1 대응을 하는 게 일반론이긴 합니다. 하지만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용어이긴 하나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어와 단어의 일 대 일 대응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는 아닙니다. 오히려 적은 편입니다. 단어는 등록 어휘를 세리기도 어려울 정도이나 수어는 시각 정보라는 한계 때문에 대다수의 경우 다양한 한국어 어휘를 (수위나 수향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의 수어로 표현하는 다수 대 일 대응이 많기 때문입니다.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청각장애인(농인)은 한국어와 한국수어 중 무엇을 모국어로 생각할까요? 답은 한국수어입니다. 이게 미묘한 해석의 차이를 낳는데요. 거칠게 말하자면 농인들은 한국 수어를 배우면서 그에 대응하는 한국어를 익힌다고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본론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수어에서 유모차 혹은 유아차는 어떤 형태일까요? 사진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수어 수형으로 볼 때 유모차, 유아차는 ‘ 아기 + 밀다.’의 합성어 형태입니다. 정리 하자면 한국수어로 봤을 때 유모차, 유아차의 어휘 논쟁에서 유아차가 더 직관적이자 대응이 되는 어휘가 되는 겁니다.

 


  물론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소비하는 행태에 대해 공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 댓글의 내용은 일견 청각장애인(농인)을 배려하는 듯한 입장으로 보이나 실상은 청각장애인(농인)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단순히 ‘장애’를 논거로 소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저는 유모차, 유아차 논쟁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청각장애인에 대한 큰 고려 없이 자신의 주장을 위해 단순 소비하는 행태에 거부감이 들 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런 면도 있다는 걸 한번 쯤 생각해 주십사하는 부탁으로 끄적였습니다. 다들 편안한 저녁 되세요.





댓글 : 3 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추천!
혹시 농아 및 청각장애인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인지요? 혹 제 의견이 무례할 수도 있기에 먼저 여쭤보고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저도 말씀하신대로 본문에서 언급한 댓글이 그리 큰 고민이 없이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사실 논쟁도 싸움이라 자신이 이기려면 자신이 유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오니까요.

다만 주인장님이 주장하시는 것 역시 무조건 옳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않나 조심스레 주장해봅니다.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은 어려서부터 수화를 배웁니다. 그러나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되는 이들도 적지 않은 수가 존재하는 게 청각장애인의 세계입니다. 이들은 기존에 쓰던 사회의 언어에서 수화(요즘에는 '수어'라고 하더군요)를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이는 비단 청각장애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점자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언어로서 배워야 하는 하나의 또 다른 언어이죠. 그렇기에 이들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기 전에는 기존 사회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기존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아차' 이전의 '유모차'라는 단어가 상당히 중요해집니다. 왜냐면 사회의 변화와 그에 대한 언어체계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구 체계의 언어가 우선될 터이니까요.

헬런 컬러가 언어를 배울 때 기존의 단어들을 말하며 발생하는 설리번 선생님의 성대 떨림을 느끼며 따라했다는 것(단순히 삼중고의 상황을 떠나 기존 개념에 대한 사람들의 언어를 알아야 하기에..)은 유명하죠. 즉 장애인이 장애인과 소통할 때는 수화가 우선이지만, 그 외의 세상과 소통을 할 때는 기존 언어가 우선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즉 이쪽 언어는 이를 이렇게 표현하니 그걸 그대로 기존 언어에 적용해서 단어를 함부로 변환 표기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겠죠.

앞서서 말했듯 주인장님이 꼬집은 댓글의 결론 도출 과정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주장이 무턱대고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단어를 변환할 수 있는 상황(순화 및 대체)은 미디어에서 극히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틀을 깨고 자의적 판단으로 자막 작업을 하는 것은 요즘 영화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배리어 프리' 움직임에도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있었던 본문의 소동은 실제적으로는 자막의 옳고 그름- 즉 교열 작업의 문제가 아니라 그 행위의 이유가 정당한가 아닌가에 띠른 것이었다고 봅니다. 페미니즘은 그저 하나의 구실이 되었을 뿐이죠. 물론 그게 근래 치열한 논쟁거리이기에 그쪽으로 치우쳐서 불붙고 있으나, 정당한 이유없는 자막 작업은 매스미디어가 미치는 파급력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혹시 제 댓글이 불손한 부분이 있었다면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인장님이 말씀하신 주장의 근본적인 핵심은 언어란 쓰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저도 그 부분은 절실히 공감하구요. 다만 그렇기에 합의되지 않거나 소수가 쓰는 언어에 있어 그걸 위주로 미디어 자막을 만드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어 댓글을 달아봅니다.

장애인과 좀 더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1인으로 주인장님의 글도 소중한 가치가 있는 글이기에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전혀 이런 것에 생각이 없던 누군가가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다른데서 써먹을까봐 글을 쓴 것이니, 너무 괘씸하게 여기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주인장님이 언급하신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세상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며 자신들 편의대로만 이용하려는 이들에 대한 일침은 저도 분명 공감하는 바이니까요.

그럼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
청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현직에서 종사 중입니다.

물론 말씀하신대로 청각장애인의 언어 인식은 장애 정도에 따라 다양하기에 저도 굳이 청각장애인(농인)이라는 괄호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농인)에 대하는 비장애인의 주된 고정관념 중 하나가 한국어를 우선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언어가 다르면 사고 방식과 문화가 다르지요. 말 그대로 청인과 농인은 문화 자체가 다릅니다. 다른 국적 다른 언어 사용자의 의사소통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정말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어 화자와 일본어 화자 정도라고 봐도 될 듯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어 사용자의 언어 인식에선 무엇이 우선일까요? 당연히 한국어가 됩니다. 그리고 통역에 있어 그에 알맞은 다른 외국어 어휘를 찾는 게 적절하겠지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유아차와 유모차의 논쟁에선 한국수어에서 한국어 번역 시 유아차가 더 직관적인 이해와 직역에 가깝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더군다나 유모차와 유아차는 동일 대상을 가리키는 복수 표준어이기도 하죠. 그러면 수어 형태에 어울리는 단어로 번역하는 게 적절하다고 봅니다.

다시금 말하지만 저의 의견은 유아차 유모차 논쟁과는 별개의 건입니다. 첫번째는 청각장애인를 논거로 사용한 것에 대한 불편함, 둘째는 통역에서의 적합성 정도입니다. 좋은 의견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ps. 참. 시각장애인의 점자는 단순히 한국어의 표기 수단입니다. 언어 체계가 아니예요. 예전 한글 이전 한국어 표기를 한자로 했듯 표기 방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니 언어 체계 자체가 다른 수어와는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점역이란 말은 있어도 점어라는 별도의 언어는 없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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