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금해서 적는 카테고리] 과거 보쌈이란 개념은 어떻게 생긴건가요?2015.12.14 PM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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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보쌈 말고

과부가 된 여성을 뭐지... 이불같은거 였나 자루같은거에 담아서 훔쳐 데려 온다는

그 보쌈. 말입니다.

남자들은 마누라 죽으면 새 장가 가고

여자는 남편이 죽으면 과부 신세로 혼자 살아야 한다는 점은 어린 시절에 생각해도
참 치사하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보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떄는 이거 인신매매? 납치 아닌가 생각해서

왜 조정은 저런짓 하는 인간들을 엄벌에 처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나이 들고 보니깐 과부된 여자 계속 혼자 살게 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일지도 란 생각이 들더군요.

뭐랄까 암묵적? 암암리에 어느정도 눈 감아 주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였나 생각도 들지만

이게 과거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일인가 싶었는데 과거 시대에는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했나 봅니다.--

근데 어쩌다가 보쌈 이라는 게 생긴건지 도통 알수가 없군요.

댓글 : 10 개
뭐 요즘도 고백은 통보가 아니라 확인이다 라는 말이 있는 것 처럼 서로 어느정도 눈이 맞은 상태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긴 하더라만...
이런 경우에는 여성쪽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도 할 수 있겠죠.
자의가 아니었다 라는 식으로...
요즘 고백은 진짜 고백이 아니라 그냥 서로 마음 확실하게 도장찍는 확인이 맞는듯요 썸탄다는 말이 새로 있으니 호감있는건 걍 썸...
고려든 조선이든 개가한 여성에 대해 사회적 차별이 심해서
궁여지책으로 서류상 등재되지 않도록 그랬다는 설이 있습니다.
비공식적 약탈혼이지요.
시초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저런 이유가 유력하다네요.
일본의 요바이랑은 좀 다른듯
고려는 안그랬어요. 여자도 족보에도 올라가고 재혼도 자유로웠죠. 임진왜란 전후로 성리학이 강해지면서 변했다고 알고있습니다.
안좋은사회분위기에서 어쩔수없는 꼼수였을듯..
당시에 사회적으로 여성의 재혼을 금기시 해서

저런 방식을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그냥 쇼죠 이미 사전에 합의가 됬던일
약탈혼은 다른 나라에도 있었고,
보쌈이 꼭 과부 보쌈만 있는 건 아닙니다.
남자 보쌈도 많았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아예 정의를 '처녀 액땜을 위하여 밤에 외간남자를 보(褓)에 싸서 잡아다가 강제로 동침시키던 일'이라고 해놨음.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6699&cid=46635&categoryId=46635
봉이김선달이나 어사 박문수의 일화에도 남자 보쌈에 대한
얘기가 나오죠,,

심지어 조선의 왕 효종도 평상복을 하고 야행을 나왔다가
남자 보쌈을 당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보통 남자 보쌈의 경우 첫날밤 치룬 시늉한 하고는 남자는 몰래 죽이는데
효종은 첫날밤 치루기 전에 무술에 능한 효종이 반항을 하고
팔장사라 뷸리는 효종의 호위무사들이 들이 닥쳐서 무사히 구출되고
그 집안은 풍지박살 났다고 함..
보쌈도 2종류가 있는데 양반들이 마을의 반반한 처녀나 기생
남의 첩을 훔치는 안좋은 경우도 있고

양반 가문의 과부를 재가 시키는 목적으로 하는
짜고 치는 합의적 범죄로 쓰이기도 했죠,,

물론 전자의 경우 걸리면 그냥 개망신에 처벌을
받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보쌈같은 약탈혼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고대에 전세계적으로 있었는데
아마도 여성의 인권이 취약했던 때의
여성을 상품으로 여기는 당시 사회관의 그릇된 관점이
만들어낸 범죄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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