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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영국음식] 1차대전 참호 요리2017.04.01 AM 06:30
해외여행갤에 장문의 글을 올리다 두번이나 날아가서 멘붕이 왔지만 애써
깊은 빡침을 가라앉히고 해외여행갤은 잠시 멀리 한 뒤 음갤에 올릴 음식이나
만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마음을 정한 즉시 이베이를 통해 2차대전 영국군
반합을 샀습니다. 전투식량이라 적지 않은 이유는 전투식량이라는 개념 자체가
2차대전 즈음부터 잡힌 것이라 1차대전 때는 보급 받은 통조림과 비스킷 등을
이용해서 각자 알아서 조리해서 먹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글 주제는 1차대전이면서 1차대전 반합을 안 사고 2차대전 반합을 산 이유는
그냥 2차대전 반합이 더 크고 싸더라고요. 어짜피 비슷한 재료로 만들었을 테니
뭐 그냥 넘어가는 걸로 하죠 허헣
요리 자체는 위의 영상을 보고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했습니다. 사실은 브로디 헬멧도
사다 음식할 때 쓰고 요리 해볼까 생각도 잠깐 해봤는데 아무래도 너무 혼|모|노 같고 븅신
같아서 그냥 말았습니다.
그저께 받아 온 영국군의 반합입니다. 1941년 2월에 생산된 놈이라 꽤나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여기다 조리를 직접 해야하기 때문에 최대한 깨끗하게 닦으려 노력했습니다.
식초를 넣고 몇시간 놔뒀다가 버리고 세재로 박박 문질러 닦았습니다.
너무 생각없이 박박 닦다보니 반합 정면에 찍힌 도장이 옅어졌네요 ㅂㄷㅂㄷ
완벽하진 않아도 요리할 때 못 쓸 만큼 더럽지는 않은 것 같아서 만족했습니다.
요리에 사용할 재료들입니다. 말이 요리지 영국음식 베이스에 참호식이기 때문에
사실 그냥 먹을 수 있는 것 정도로 불리는 것이 적당한 것이 만들어질 겁니다.
군용 비스킷은 구할 수가 없으니 그냥 마트에서 아무거나 집어왔고 콘드 비프는
두 개 사왔는데, 위는 브라질산, 밑은 캐나다산입니다. 아무래도 영국맛을 더
잘 살리려면 캐나다산이 적합할 것 같아서 최종적으로 선택했습니다.
1차대전 참호에서의 조리는 제한된 화력을 이용해 급하게 조리해 먹어야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최대한 작게 썰어야 했습니다. 저야 뭐 그냥 집에서 해먹는 거지만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하려고 저도 모든지 작게 썰었죠. 사실 야전에서 불을 이용해 조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당시 상당히 사치스러운 것으로, 평소에는 그냥 비스킷과
차가운 콘드 비프를 먹는 게 보통이였다고 합니다. 다만 이게 얼마나 맛이 없었던지
"참호에서 보낸 1460일"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영국군이 자국 통조림 까는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읽어본지 몇년 지난 책이라 다른 건 기억 안 나도 통조림은 기억나네요.
처음에 이걸 보고는 어떻게 뜯으라는 걸까 한참을 고민하면서
이리 만져보고 저리 만져보다가
결국은 분질러먹고
위대한 깡통따개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깡멘
그닥 스펨 같은 비쥬얼도 아니네요. 이때만 해도 맛이 어떨까 꽤 기대하긴 했습니다.
아무리 두둘겨도 안 나오길래 그냥 칼로 도려내고 포크로 찍어서 빼냈습니다.
저는 자제력 좋은 얌전한 파오후니까 딱 반만 넣겠습니다.
재현을 위해 본 영상에는 콘드 비프에서 나온 기름을 이용해 반합을
데우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콘드 비프에는 그닥 기름이라 할 만한 게
없더군요. 그래서 보관중이던 돼지기름으로 대체했습니다.
반합이 어느정도 달궈지면 감자를 제일 먼저 넣습니다. 다른 건 덜 익어도 먹을 수 있지만
감자가 덜 익으면 좀 많이 거시기해서;;; 겉이 좀 눌러 붙는다 싶으면,
양파랑 당근도 투척하고 같이 달달 볶습니다.
음식에 넣을 비스킷을 까봤는데 매우 괘씸하군요. 개발 의욕 떨어지게 저딴 식으로
꽈꽉 채워서 포장해놨습니다.
보세요. 질소가 충분히 보호를 해주지 못하니까 비스킷이 뜯기도 전에 벌써 두개나 부러졌네요.
얘네들은 한국에 가서 선진기술을 배워오는 것이 시급합니다 (쑻)
채소가 어느정도 볶아지면 물을 넣습니다. 물을 넣지 않으면 감자가 익기도 전에
겉이 타서 반합에 눌러붙어버려요. 그리고 감자를 눌렀을 때 살짝 으스러질 때까지
계속 익힙니다. 이렇게나 작게 썰어서 안정된 불로 조리하는 것인데도 감자를 완전히
익히는 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1차대전 요리를 소개하는 영상에서는
분명히 영상에 나온 병사에게 쉬는 시간으로 단 한 시간만 시간이 주어졌다고
설명하는데 이건 한 시간만에 해먹을 요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할 수는
있겠는데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이나 땅을 파서 불을 피우는 시간까지 합하면 결국
설익은 감자를 먹어야 해요.
감자가 다 익으면 비스킷을 좀 크게 부셔서 넣어주고 섞습니다.
잘 섞은 뒤 얼마간 또 조려주다 물이 모자란다 싶으면 조금 더
넣어줘도 됩니다. 그리고 적당한 때다 싶으면,
뭉텅뭉텅하게 부순 콘드 비프를 반합에 투척합니다.
채소를 익힐 때 소금이나 후추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만
애초에 콘드 비프가 짜기 때문에 저렇게 섞이면 결국 알맞은
간이 됩니다.
콘드 비프를 잘 섞어서 익혀주면 형체가 사라지고 핑크색 죽이 됩니다.
영상에서 이딴 식으로 만들면 실패라고 했는데 저는 실패했군요 흨흨
다 익혔으면 옆에서 레스팅 시킵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시에
HP 소스도 넣어줍니다. HP 소스는 영국 소스로 한국에서도 일반 마트에서 파는
돈까스 소스 맛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원래 HP 소스는 군 보급품이 아니였지만
이걸 넣어야 그나마 사람이 먹을 만한 맛이 되서 병사들이 사비를 털어 구해먹었다네요.
그리고 HP 소스도 잘 섞어줍니다.
그래서 이게 완성된 결과물인데 이거 비쥬얼이 꼭
전봇대 밑의 비둘기 뷔페 같은 느낌도 드네요. 식욕을 돋구는 비쥬얼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힘들게 만들었으니 먹어봅니다.
먹어본 소감으로는 한달 전 다녀온 영국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였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영국맛이네요. 반 정도 먹었는데 나중엔 좀 많이 느끼하고
더부룩해서 남겼습니다. 그래도 아까워서 놔뒀다 다음날 아침에 먹었습니다. 이딴 것보다
못한 것을 먹고 추운 참호에서 4년간 싸운 영국 병사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합니다.
- Zeclix
- 2017/04/01 AM 07:13
옛날엔 국내에서 파는 스팸도 저렇게 나오지 않았던가요
- 까나디엥
- 2017/04/01 AM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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