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고등학교의 추억2016.08.25 AM 08:47
문득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에 입학한 게 벌써 20년 전이구나...
내 고향은 충북 제천.
작은 시골 동네이지만, 그래도 나름 공부 좀 한다는 애들만 모이는 고등학교에 갔었더랬다.
자랑 좀 보태자면, 3년 내내 학년 내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만 모아놓는 반에 있었다.
지금도 그 학교가 그렇게 잘 나가는지는 모르겠다.
작년에 무슨 토론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야간 자율학습은 중학교에서도 했던 거라 특별히 뭔가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시간은 늘어서 1학년은 10시, 2학년은 11시, 3학년은 12시까지였다.
3학년 중에서도 성적이 좋은 친구들은
도서관에 감금되어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해야 했다.
그 시절엔 기숙사가 없었다.
학교는 정문에서 언덕을 올라가야 있었다.
선생님들은 지각생을 교문에서 잡지 않았다.
교문을 통과할 땐 분명 세입이었는데,
운동장까지 올라가면 엎드려 뻗쳐야 했다.
그 오르막길을 오리걸음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건 덤.
1학년 때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산골 촌놈들이 섬에 가니 신났겠다 싶었지만
몇몇 애들 말고는 노는 법을 몰랐다.
그보다 여기 사람들하고는 말이 잘 안 통한다는 루머가 퍼져서
아무도 숙소에서 탈출하려 시도하지 않았다.
안내역을 겸한 버스 기사 아저씨가 우리는 참 운이 좋으면서도 안타깝다면서
"저렇게 한라산이 깨끗하게 보이는 건 제주도 사람들도 쉽게 못 본다. 근데 한라산 올해부터 입산 금지됐다."
라고 하셨다.
우리는 좋은 건 알겠는데 대체 뭐가 안타깝다는 건지를 몰랐다.
학교로 복귀하던 날, 선배들 공부하는 데 방해되면 안 된다며
저녁시간에 맞춰 복귀하기 위해 치악휴게소에서 1시간을 그냥 서 있었다.
참 징한 학교라고 생각했다.
동아리는 방송부, 밴드부, 문학회 정도였다.
나는 문학회에 가입했는데, 공식적인 이유는 책이 좋아서였지만
(실제로 어릴 때부터 방구석폐인이었다. 아부지가 내 방을 서재처럼 꾸며주셨을 정도)
속내는 동아리 활동을 제천여고, 제천상고(여초학교, 그 전에는 여고였다)와 함께 한다는 거였다.
여름방학 때 모여서 캠핑을 갔는데 옆 자리에 텐트를 친 아저씨가 알고보니 우리 담임이었다.
나는 3일 내내 텐트에 갇혀 있어야 했다.
동아리에서 1년에 두 번 제천 시민회관을 빌려 시전을 했는데
그 전날에는 3학년이라도 야자를 빠지는 게 허용됐다.
가입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10월이 되자 개교 50주년 기념 행사를 했다.
제천 시내에서 차가 제일 많이 다니는 도로를 막고 퍼레이드를 했다.
학교에서 공설운동장까지.
공설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기념 행사의 사회자가 코메디언 임하룡 씨였다.
듣자니 우리학교 선배님이라 하셨다.
축하 공연은 무려 녹색지대였다. 최고의 인기가수가 산골 동네 고등학교 행사에 오다니.
사실 여자 가수 한 명도 더 왔는데 기억이 안 난다. 난 뒤쪽에 있어서 잘 보지도 못했다.
2학년이 되자 일요일에도 자율학습을 하러 가야 했다. 그나마 사복 입고 가는 게 다행이었다.
여름방학 때에도 물론 자율학습은 계속 되었는데 점심시간이 3시간이었다.
그럴 바엔 그냥 집에 일찍 보내주었으면 했다.
학교에 하키부가 있어서, 선생님들의 몽둥이가 대부분 목 부러진 하키스틱이었다.
특히 해병대 출신 수학선생님이 들었을 때 위력이 배가되었다.
난 그 선생님하고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남들이 1점에 1대 맞을 때 따불로 맞았다.
졸업하고 딱 10년 만에 수능 접수하러 학교를 다시 갔더니
교무실에 여자 선생님이 반이었다.
나 땐 학교 전체에 3명인가 그랬는데.
요즘은 이 학교 애들도 졸업사진을 약 빨고 찍는 모양이던데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아 보기 좋긴 하다.
사실 우리 때도 그런 끼가 있는 애들이 없진 않았는데
그런 애들은 대부분 반 죽어 나가서(…)
- 그카지마
- 2016/08/25 AM 10:06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