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먹을 거에 눈물난 이야기2017.01.11 PM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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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병훈련소에서였다.

저녁에 컵라면이 같이 나왔다.

사회에 있었으면 정 먹을 게 없다면 모를까

평소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물건이

왜 그리도 반가웠을까.

 

우리는 컵라면을 들이키고 밥을 말아먹을 생각에

컵라면이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악마같은 조교 새퀴가 승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니들만 밥 먹냐!! 빨리 먹고 자리 안 비켜 줄 거야!!

당장 나가 이 새끼들아!!!"

 

설마 다 먹지도 않았는데 정말 내쫓기야 하겠어?

라며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정말로 다 쫓겨났다.

식판을 들고 서 있다가 컵라면이 너무 아까워서 먹기 시작했는데

또 그 적절한 타이밍에 조교가 나타나 승질을 부렸다.

"니들이 그지새끼야? 다 엎드려 뻗쳐!!"

 

그리고 친절하게도 허리 위에 그 컵라면을 얹어주더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상태에서 허리 위의 물건을 보존하기가 참 어렵다.

결국 쏟아진 라면을 맨 손으로 치우는데

내 자존심이나 그런 것보다 흙 묻은 면발에 눈물이 났다.

시발, 그게 뭐라고.

 

2.

자대에 가서 처음으로 뛴 혹한기 훈련.

그 동안 자잘한 훈련은 몇 번 있었지만

큰 훈련은 처음이라 바짝 긴장해 있었다.


저녁에 그 산꼭대기에서 분대장과 진지에 들어갔는데

저 멀리 GOP의 경계등이 보였다.

그걸 보며 감성에 젖어 있는데

"바나나 니 오늘 생일이지? 주말에 뭐 해 주려 했는데 훈련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네.

이거라도 먹어라. 복귀하면 주말에 제대로 파티 해 줄게."

 

그랬다. 훈련 시작하던 그날이 생일이었다.

분대장이 주머니에서 꺼내 준 초코파이는 이미 뭉개질 대로 뭉개졌는데

그걸 입에 넣으면서 괜히 눈물이 났다.

시발, 그게 뭐라고.

 

3.

세월이 흘러 전역할 때가 되어

중대장과 대대장 승인을 받고

우리 포반 애들을 다 끌고 읍내에 나갔다.

내가 30만원을 대고

내 후임으로 포반을 맡게 될 후배 하사가 20만원을 대고

또 애들도 지들끼리 한 20만원을 모은 모양이었다.

 

읍내 나가서 바로 고기를 구웠는데

한 끼 밥값이 55만원인가 나왔다.

하 시발, 존나 잘 처먹네.

입으로는 궁시렁거리면서도

이 녀석들과 이제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뿌옇다.

시발, 잘들 살아라 개생키들아.

그게 벌써 10년도 전 일이네.

다들 잘 살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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