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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 관료들이 자녀 스펙쌓기에 유독 골몰하는 이유2022.05.12 PM 07:20
-관료 계급에 대한 보상시스템 변화 때문아닐까.
“애들이 우리만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높은 자리는 권력을 동반하고, 권력은 크게 돈 걱정하지 않고 살았다. 불과 10여년전까지 그랬다. 어른들은 늘 말했다.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교수가 되거나 부장검사가 되면 사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시절이 그랬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났다. GAME OVER. 다시 오지도 않고 와서도 안된다. 여기서부터 꼬인다. “여보, 우리 애들은 우리만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외무고시출신 프랑스대사도, 삼성병원 부원장도, 대구지방국세청장도 자식들은 다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존재감도 없었던 친구는 용산에서 갈비집을 열어 고생하더니 지금은 한달 수천만 원을 번다. 일전에 사둔 수원CC 회원권 가격은 세배나 올랐다. 물론 아들은 식당을 물려받을 것이다. 딸은 이미 레인지로버를 타고 다닌다.
우리 아들이 특목고를 나와서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다고 한들 언제쯤 레인지로버를 탈 수 있을까. 나인 브리지의 다리가 몇 개인지 알 수 있을까. 출발점이 다르다. 이 나라의 자본주의가 비로소 꽃이 피고, 관료들의 그것은 참으로 초라한 것이 됐다. 물려줄 게 없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더 좋은 대학 좋은 스펙이라도 쌓아줘야 한다.
‘관료’라는 자리는 물려줄 수가 없다. 아버지가 치과 기공소를 하면 그 기공소는 곧 아들의 것이지만, 장관도 검사장도 태국 대사도 아들에겐 물려줄 게 없다. 그러니 아들에게 스펙이라는 갑옷을 더 단단히 입혀야 한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다 뭐라고...그냥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 갖고 살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이미 그런 삶에 익숙해져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잘 모른다. 관료계급은 늘 열심히 세상을 살아온 보상을 열심히 받고 살아왔다. 설령 ‘돈’이 아니여도 그것은 삶을 매우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최고위과정에서 만난 고향 후배가 설 연휴에도 아난티 리조트를 예약해주고, 작은아버지가 암에 걸리면 교회 집사님 통해 아산병원의 최고 종양외과 교수와 스케줄을 잡는다. 아내가 작은 전시회를 열려고 하면 중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하면 된다. 그 친구가 CFO로 있는 보험사에 예쁜 아트홀이 있는데 마침 2층이 비어있다. 다들 그렇게 엮여있다.
그런데 그 고리가 우리 자식세대에선 끊긴다. 하지만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들의 네트워크는 고스란히 아들에게 연결된다. 크고 작은 자본도 대부분 증여된다. 우리 다 같이 인생 열심히 살았는데...
지근거리에 본 훌륭한 인품의 관료들도 낙마했다 하면 대부분 자녀문제였다. 자신에 대한 욕구는 절제해도 자녀에 대한 욕구는 절제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단순히 자식사랑 때문일까.
내가 받는 사회적 보상이 내 자녀시대부터는 어렵겠구나 하는 불안심리가 지나친 스펙쌓기를 부추긴다.
그래서인지 코스닥상장사를 갖고 있거나, 디벨로퍼로 자신이 어떤 연금보험에 가입해 있는 지조차 모르는 자산가 분들은 자식 교육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회사를 물려받거나 내 자본을 물려받을 건데, 카이스트를 나오나 버클리를 졸업하는 것이 뭐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 대신 이분들 관심은 이런 거다. “대물림 핵심은 쪼개서 미리 미리, 차근 차근...”)
사실은 둘다 결국 ‘물려주기’에 방점이 찍혀있다. 권력과 돈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 투명한 사회일수록 이게 잘 안된다. 그러니 무슨 케냐 전문가라도 동원해서 스펙을 쌓아야한다. 내가 사는 이 성에서 쫓겨나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 관료 사회의 권력은 거의 다 해체됐다. 오히려 더 조심하고 눈치를 봐야할 때도 있다. 돌이킬 수 없으니 이제 익숙해져야한다. 투명한 사회가 오염 사회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몇가지 고칠게 있다.
일단 우수한 능력의 관료들에게 현직에서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한다. 그래야 유능한 인재들이 나랏일을 하는 동력이 유지된다. 재경행시 출신 과장에게 월급 500만원 주면서 자신이 맡은 수조원의 재정을 정당하고 투명하고 효율성 높게 집행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외부효과가 발생한다. 당장 청와대 들어가려는 부처 과장급이 부족하고, 국토부에 근무하던 여성 행정관은 헌재라도 가서 서울 생활을 이어가려고 한다.
최근 태국대사관을 떠난 한 젊은 여성외교관은 자신의 외시동기 6명이 벌써 그만뒀다고 했다. 그들이 옮겨간 곳은 대기업이나 유학이나 한국거래소등이다. 이들 직장이 외교관보다 나아진 것이다. 세상이 바뀌는데 관료에 대한 처우는 안바뀐다. 그들은 성직자가 아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우수한 인재로 나라를 경영하겠단 생각도 버려야한다. 북유럽처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하고 공무원해도 된다.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그만큼 올라왔다. 그럼 처우 개선을 안해도 된다. 대신 업무량이라도 줄여 줘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 과장 시켜준다고 해도 방콕의 UN에스캅에 지원하는 사례가 이어질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영달은 거의 포기했다. 남은 것은 영등포의 24평도 살 수 없는 세종시의 아파트와 자꾸 줄어만 가는 공무원연금밖에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자녀들이다. 그렇게 자녀들의 스펙이 한없이 높아진다. 고등학생이 십여년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계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에 의해 알바니아인들이 어떤 사회적 차별을 받았는지 분석한 논문은 그렇게 탄생한다.
- 김원장 기자 페이스북 -
- 비추무나리
- 2022/05/12 PM 08:49
제 생각은 이제 관료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부나 권력을 바라고 그 자리에 가기보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진짜 나라와 국민이 잘살게끔 봉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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