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나는 선동한다... 모든 게 돈 문제, 경제학 배우시라' 장하준2023.05.13 PM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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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권력의 언어, 세상 바꾸려면 알아야

인간은 ‘이기적 존재’ 신고전학파 전제 버려야

파생 상품 모델로 상 받은 노벨상 수상자 파산

주주 자본주의 문제… 장기 투자자 혜택 줘야

나는 진영 눈치 안봐… 현실에 맞는 대안 찾을 뿐

부실 자산 폭발 임박… 최악 가정하고 방어해야




▲최근 서점가를 휩쓰는 베스트셀러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출간한 런던 대학교 경제학 교수 장하준. 

한국인 최초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임용돼 32년간 경제학 교수로 가르쳤다./사진=채승우



“UN에 가면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사다리 걷어차기’ 얘기를 많이 합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후진국의 정책가와 외교관이 주눅 들어 있다가, 이제는 협상테이블에서 ‘왜 너희가 한 일을 우리는 못 하게 하느냐’고 따져 물을 수 있게 됐다고 해요.”


런던 대학교 경제학 교수 장하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성과주의에 짓눌린 자기 착취의 현재를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피로 사회’로 명명했듯, 선진국 경제 발전과 세계화의 위선을 낱낱이 명명한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장하준의 주장에 따르면 자유 시장 정책으로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알려진 영국과 미국은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보호 정책을 사용한 장본인들이다.


그런 부자 나라들에서도 시장의 힘을 제어하는 데 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았던 혼합경제 시대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기간에 성장률이 둔화하고 불평등이 더 늘어나는 한편 금융 위기가 더 자주 발생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10년 만에 출간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경제학자와 셰프가 만나 신나게 퓨전 지식 테이블을 차리듯, 마늘과 소고기와 국수와 초콜릿까지 식재료를 에피타이저 삼아 경제학 이슈라는 메인 메뉴를 알차게 풀었다.


장하준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부었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도덕철학의 분과로 시작한 경제학이 그 위대한 윤리적 뿌리를 잊은 채 탐욕의 선을 넘은 것을 개탄하면서.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오만한 전제는 정치학을 경제학의 아류로 만들었고, 지금 우리는 전례 없이 잦은 금융 위기, 인플레이션, 생태계 파괴, 지구 온난화라는 엄청난 청구서를 받아 들고 있다.


장하준은 2003년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군나르 뮈르달 상, 2005년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위상을 굳혔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후 동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사진=채승우



-2022년 6월에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를 그만뒀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충분히 오래 있었죠. 36년간 거기 있었어요. 86년 7월에 케임브리지로 갔으니까. 그때만 해도 24시간 경유지를 거쳐, 산 넘고 물 건너갔죠. 케임브리지는 영국 특유의 상류층 문화가 있어요. 물론 옥스퍼드 보다는 덜하지만. 케임브리지, 옥스퍼드의 60%가 이튼 같은 사립학교 출신들로 채워집니다. 특히 옥스퍼드는 수상도 보수노동당 리더도 그 학교 출신이라, 자기들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엘리트 의식이 강하죠.


케임브리지는 달라요. 이과 학교이기도 하고, 정치엔 관심이 없어요. 다만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집대성한 앨프레드 마셜 그리고 케인스가 다녔던 학교죠.”


-런던 대학 분위기는 맘에 드나요?


“으리으리한 분위기가 아니라 좋아요. 작은 종합 대학의 연합체 비슷하달까. 반식민지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모여있죠. 케임브리지는 나를 좌파로 보는데, 여기서 나는 우파에 속해요(웃음). 어디서나 편견 없이 콘텐츠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지만.”


-말콤 글래드웰이 그러더군요. ‘나는 누구인가’보다 ‘나는 누구에게 노출되어왔는가’가 중요하다고.


“동의합니다.”


-그런데 좌파도 우파도 장하준은 자기 편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경제학자로서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이 선생의 정체성인가요?


“당연하지 않나요.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사회 발전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자본의 편인가? 노동의 편인가? 물으면 나는 타협을 권해요. 시장이 우선인가? 정부가 우선인가? 물으면 정부의 역할을 키우라고 하죠. 사회 변화의 속도를 물으면 프랑스 혁명하듯 단번에 뒤집을 수 없다고 합니다. 시간이 필요해요. 과거 재벌의 지주회사 논쟁이 있었는데, 나는 일본 지배와 미국 지배의 역사적 궤적을 파악해서, 기업의 소유 구조를 큰 틀에서 보라고 했어요.


과장 같지만, 스탈린이 보면 다 우파고 히틀러가 보면 다 좌파라는 말도 있잖아요. 여러 경제학을 융합해서 현상을 봐야지, 신고전주의, 마르크스주의… 지적인 단일경작으로 답이 없어요.”


-선생을 비주류 경제학자로 세상에 알린 ’사다리 걷어차기’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제 현대의 고전이 됐죠. 역동과 융합으로 순혈주의 경제학의 위선을 쪼개버린 일은 매우 통쾌했어요. 그런데 이번 책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정말 괴상한 책이더군요. 마늘에서 시작해서 멸치, 국수, 코카콜라, 호밀… 식재료와 음식으로 시작해서 경제학으로 점프하는 스토리텔링에 낚여서 읽는 내내 머리에도 침이 고이더군요. 놀라운 장르 혼합인데… 글 쓰는 작가로서 야심인가요? 경제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사명인가요?


“허허. 제가 요리를 좋아합니다. 그걸 미끼로 경제학 문맹자를 끌어들였죠. 시민들이 경제학을 모르면 민주주의가 의미 없어요. 세상만사 모든 게 돈이라는 기준으로 판단이 돼요. 정부는 문화, 스포츠 행사도 다 경제효과로 보죠. 대학이 독문과, 사학과 없애는 것도 돈 문제예요. 영국은 왕실의 존폐도 지지자와 반대론자가 부딪히면 ‘관광 수입이 엄청나다’로 유지 인정이 돼요. 성공회 국교 국가의 수장이 왕이고 사회 기틀인데, 결국은 돈으로 존재가 정당화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주장해요. 시민들이 경제를 아는 게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아무리 고매한 의제라도 존폐와 갈등의 핵심을 파헤치면 문제는 다 돈이다.

 


-모든 문제의 밑바닥에는 결국 돈이 있다...


“그렇죠. 저출생도 젊은이들 가치관 변화로 해석하는데, 아닙니다. 돈 문제죠. 국가는 복지, 교육 제도 손봐야 하는데 그게 꼭 돈이 더 들어간다고 볼 순 없어요. 자원재분배죠. 결국 다 경제예요.”


-그러니까 선동을…


“선동하는 거예요. 경제학이 권력의 언어가 됐으니 세상 바꾸려면 경제학을 알아야죠. 그래서 국민들께 배우시라,는 겁니다. 지식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면 제동을 걸 방법이 내부에서는 안 나옵니다. ‘경기 변동 다 풀었다. 금융 위기는 없다’는 이론으로 노벨상 탄 경제학자는 2008년 금융 위기 왔을 때, 아무런 비난도 안 받았어요. 노벨 집안에서 상 박탈하거나 노벨 이름 빼버리라고까지 했는데도요.”


-그런데 노벨 경제학상은 노벨 재단에서 주는 것도 아니더군요.


“스웨덴 중앙은행에서 70년대에 만들었어요.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 주로 자유시장주의자들에게 수여했어요. 97년도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즈가 가장 심각했어요. 파생 상품 측정 모형으로 상을 받았는데, 자신들이 이사로 있는 파트너 헤지펀드 회사가 러시아를 모라토리엄으로 몰고 갔고, 결국 98년 금융 위기 때 파산했어요. (LTCM 파산 사태)


숄즈는 2008년에 파생 상품을 잘못 굴려서 망했어요. 파생 상품으로 노벨상을 탄 사람이 그 지경입니다. 노벨상 권위도 경제학의 권위도 땅에 떨어졌죠.”


중세 가톨릭이 결국 교회의 공격을 받았듯, 경제학 내부에선 자정 능력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선동할 수밖에 없다고.


-최근 몇 년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흐름에서 어떤 변화를 느꼈습니까?


“물론 시카고학파에만 몰아주진 않았죠. 그런데 불평등 분야 연구자인 98년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도 기회의 평등보다 개인의 능력을 의료와 교육으로 끌어 올리자는, 넓은 의미의 신고전학파 후생 경제학자였어요.


물론 앵거스 디턴 같은 빈곤 전문가나 리처드 탈러 같은 행동경제학도 받았어요.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폴 크루그먼 같은 시장 반대주의자들, 최근엔 빈곤을 연구한 부부 경제학자로 대상이 확대되는 것 같기는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은 노벨 재단이 아닌 스웨덴 중앙이 만든 상이다.

 


-사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그 주장이 현실의 이해관계와 예민하게 맞닿아 있어 더 주의를 필요로 하죠. 경영사상가 사이먼 시넥도 그러더군요. 1970년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한 기고문에서 주주 가치가 최우선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 이후로, 프리드먼의 논리에 따라 월스트리트의 단기 압박은 정당화되고 기업은 혁신 동력을 잃은 채 수명이 짧아졌다는 거죠.


“시카고학파인 루카스라는 자유시장주의자는 경제학이 발전해서 경기 침체가 오지 않는다고도 했어요. 오만이죠. 팬데믹 때의 주식 시장을 보면, 실물은 마이너스 10% 성장인데 주가는 상종가를 쳤어요. 보통 사람은 실업과 소득 하락으로 고통받는데 주식은 최고점을 찍었어요.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가 완전히 분리된 거예요.


미국 영국은 심각해요. 기업이 이윤을 내면 90% 이상을 배당, 자사주 매입으로 돌려줘요. 유보 이윤이 기업 투자 재원인데, 지금은 투자할 돈이 없어요. 구글 같은 큰 기업만 R&D에서 승부를 보지 다른 기업은 기술력에 댈 돈이 없고 돌려주기 급급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잘못된 주주자본주의의 기반을 마련했어요. 앞으로도 장기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기업의 경영자와 이해 관계자에게 운영의 책임을 맡겨야 합니다.”


-단기 수익만 노리는 투자자들이 회사를 렌터카 취급한다면 기업이 망가지는 건 수순이겠지요. 현대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투자자 혹은 소비자로 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애초에 신고전학파가 인간을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소비자로 간주했어요. 그 논리가 경제학의 전제이고, 경제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런 특성을 인간의 전부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도덕철학자였고 ‘도덕 감정론’에서 인간을 복잡한 존재로 봤어요. 인간의 동기는 다양하고 어떻게 사회를 디자인하는가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집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정의하면 말한 대로 행동해요. 남들이 그렇게 행동하면 나만 바보같이 당할 수 없으니까, 그런 의식이 퍼지면 다수의 진리가 되는 거죠. 사회는 계속 바뀌어요. 지금은 데이터가 수많은 것을 통제하는 빅테크 시대인데, 특정 사회를 18세기 이론으로 해석하면 안 되죠.”


-그럼에도 소비를 통한 쾌락 추구는 금융자본주의와 함께 우리 삶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는데요.


소비자, 투자자를 우리의 정체성으로 보면 삶이 황폐해집니다. 신고전학파에서는 우리 인생은 출근하면 끝나요. 퇴근하면 다시 시작되죠. 노동을, 직업을 소비 쾌락을 실현할 도구로만 보죠.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그래서 월급 받는 거잖아?’라고 해요. ‘노동의 의미’를 깊게 안보니까, 워라밸과 욜로라는 말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죠.”


어떤 이론도 깨끗하게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고 했다.


경제학은 신고전학파, 마르크스주의, 케인스학파, 슘페터, 제도주의, 행동주의… 여러 학파가 다른 정치적, 윤리적 가정에서 세계를 설명하기에, 경제학자가 하는 얘기를 그대로 믿지 말라고 했다. 학파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기에, 전문가에 맞서는 자기 의견을 갖고 있어야 민주주의라고. 내 편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주장을 경청해야 세상의 복잡성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괴담화 된다고.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추정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지난 몇 십년간 세계를 지배하면서 자기중심성과 효율이 이 세계의 유일한 룰이 되었다.



-선생은 어떤 경제학자의 인간관에 가까이 가 있습니까?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그분들이 내린 결론에 동의하진 않지만, 인간 사회에 대한 심오한 고찰은 존중합니다(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하이에크는 경제학자가 만물박사처럼 떠드는 것을 경계하자는 겸손의 서약을 했다).


허버트 사이먼(78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은 세계관까지 동의해요. 사이먼은 인간은 합리적으로 되고자 노력하지만, 그 정보 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면서 행동경제학의 기초를 마련했어요.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합리적 제도와 관행을 통해 더 좋은 선택으로 이끄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했죠.


반면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유리한 선택을 하자는 신고전학파는 신자유주의가 횡행할 때 모든 게 합리적 이기적 선택이라고 밀어붙였어요. 어떤 이론으로 삶을 규정당하는가에 따라 현재 우리의 빈곤, 풍요, 불평등, 계층 이동이 다 영향을 받아요. 시장주의자 아니면 사회주의자라는 이분법을 제발 넘어서야 해요.”


-선생이 욕을 먹는 이유는 고도 성장기에 정부 주도의 인프라 성장을 인정하고, 침체기에 보수가 싫어하는 복지 확대를 주장하기 때문인데요. 바깥에서 보는 외부자라서 더 시야가 넓은 건지요?


“저는 진영의 눈치를 보지 않아요. 하고 싶은 얘기를 하려고 학자가 됐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걸 얘기하죠.”


-문재인 정부 시절에 정책 관료였던 장하성 교수와는 사촌지간이었는데, 그분이 주도한 ‘소액주주 운동’ 등 경제 방향과 대립하기도 했습니다만.


“그 정부 때뿐만 아니라 저는 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직후부터 재벌 문제는 소액주주운동으로 풀지 않았습니다. 장하성은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가정하에 재벌의 지배 구조를 바로잡겠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요.


개별 주주에게 주인의식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오히려 전문경영인이나 창업자 가족, 지역 사회가 기업의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틀을 다시 짜야 해요. 우리나라는 영미의 영향을 받아 단기간에 거대 재벌이라는 괴물 같은 구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엔 명망 있는 가족 소유 기업이 많아요.


스웨덴의 1대 재벌인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은 스웨덴 전체 시가 총액의 50%가량을 소유했어요. 그 기업이 평등한 복지 국가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5대에 걸쳐 경영 세습을 했는데, 재단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총수는 개인 자산을 제한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했죠.


반면 소액주주 운동은 소액주주들의 권한 강화로 재벌 문제에 접근했지만, 개미들에겐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외국 펀드의 목소리만 커졌어요. 사회 운동의 이상향만으로 현실을 개선할 순 없어요.”



▲장하준은 개별 주주에게 주인의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단정한다. 오히려 전문경영인이나 창업자 가족, 지역 사회가 기업의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틀을 다시 짜야 한다고.

 


-스스로의 현실 감각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제가 여러 나라, 여러 이론을 비교해서 보는 것도 현실을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죠. 한 개의 재벌이 GDP의 40%가량을 채우면서, 가성비 높은 복지를 누리는 스웨덴의 경우처럼, 싱가포르도 단독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돼요. 택지의 90%를 정부가 소유하고 80%의 주택을 주택 공사가 공급하고, GDP의 20% 이상이 국영기업에서 나오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합에서 1965년에 독립한 후로, 40년간 정부가 택지를 매입해서 80% 이상의 주택을 정부가 공급해요.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국가는 주택 문제가 해결 안 되면 폭동의 위험이 있어요. 사회주의 정책 같지만 다른 나라도 그렇게 자국에 맞게 정책을 썼어요.


한국도 한동안 보호무역으로 자국의 유치산업을 육성했어요. 현대자동차를 키우려고 자동차 수입을 전면 금지 했었죠. 주요 전략 산업으로 경제 주권을 지켜내는 겁니다. 리더 한 사람을 영웅화하는 게 아닙니다. 기업가 집단과 국가의 파트너십, 전체의 미덕을 보는 거예요.


스위스 칼처럼 여러 개 이론 중 필요한 것으로 잘라서 현실의 단면을 봐야 해요. 제도 경제학 관점으로 정부 주도의 무역과 산업을 보고, 그 연장선에서 선진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이끄는 힘은 기술’이라고 한 슘페터 학파의 ‘파괴적 혁신’ 이론을 가져다 써요.


미국의 실리콘밸리도 그 뿌리는 미 국방부의 대규모 투자와 군사 기술이었어요. 그걸 기반으로 지금의 실리콘밸리가 나왔어요.”


-최근엔 탈산업화와 자동화 논의가 많아지면서 공포와 낙관이 사회를 뒤흔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다른 형태로 조직된 선진국을 보면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배워야 해요. 스위스, 스웨덴을 베끼자는 게 아니라, 다른 가능성의 사회를 인지하는 게 첫걸음이라는 거죠.”


-제래드 다이아몬드도 국가 위기는 서로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다양한 샘플을 탐구해서 해법을 찾으라고요.


“맞습니다. 스위스는 금융과 서비스 강국으로 알지만, 제조업 비율이 세계 1위예요. 정밀 기계, 부품, 장비 제조에 강하죠. 일본과 독일도 기계와 장비 부문 제조 비율이 높아요. 한국도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이 높은 편입니다. 탈산업화의 신화와는 달리 한 나라의 생활 수준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은 공산품을 경쟁적인 가격과 품질로 생산해 내는 능력입니다.


제조업 없이는 서비스업도 없지요. 코로나 이후 해외로 이전됐던 공장이 국내 들어온다고들 했는데, 영미는 금융과 제조가 분리돼서 재건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제조업이 이미 너무 많이 황폐화 됐어요. 그게 신고전학파의 약점입니다. 기술 축적을 보지 않고 생산 함수와 가격변동, 효율성만 봤다가 경제 기반이 전복돼요.



▲코로나 이후 제조업 본국 회귀가 예상처럼 쉽지 않다.

 


장기적으로 보면 공업고등학교도 만들고 장인대회도 열고 이공계 고급 인력 군 면제도 하면서 몇십 년간 키워야 제조 역량이 나오는 거죠. 1~2년 안에 급하게 재건될 문제가 아닙니다.”


-효율성 성장 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제러미 리프킨은 ‘회복력 시대’에서 지구 재야생화 사업을 거치게 되면 중소기업 붐이 다시 일어날 거라고 했습니다만.


중소기업을 재건하려면 그 또한 엄청난 노력이 들어갈 겁니다. 독일 일본의 중소기업이 다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독일은 주 정부에서 관료와 민간이 힘을 합쳐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기업에 염가로 기술과 컨설팅을 제공해요. 정부 정책이 제도 발전과 기업 협력을 만든 거죠. 상속 기업이 9~10년간 감원 안 하면 상속세도 면제해 줍니다. 기술 교육 제도도 잘 만들어져서 능력 있는 젊은이는 벤츠에 취직해요.


시대가 요청한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니라, 장기 플랜과 노력이 필요해요.”


-한국 정부의 경제 자문을 맡는다면 무엇을 하시겠어요?


“다른 나라 정부의 산업 정책에 종종 어드바이스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또 그 발전 단계에 맞는 정책을 제안하겠지요. 현재 우리는 70년대 3천 불 시대의 멘털리티로 사회 제도를 꿰맞춰서 자살률, 출생률, 남녀 임금 격차, 특히 복지 지출이 OECD 국가 순위에서 처참한 수준입니다.”


-예상대로 복지 제도 정비로군요.


“예전엔 복지 국가 개념이 아예 없었어요. 경제성장이 빠를 땐 일자리가 많고 기술 수준도 낮아서 신발공장 봉제공장을 두루 다녔어요. 여성들의 희생으로 대가족제도가 복지를 다 담당했죠. 산재 사고당하면 동생이 평생 책임을 졌어요. 요즘은 안 됩니다. 온 국민이 가족이 돼서 같이 돌보는 게 복지국가예요.


30년 전 사고에 머물러 있으니, 복지 국가 만들면 개인 살림도 나라 살림도 거덜 난다고 해요. 세금 많이 거둬도 다시 주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35%지만 덴마크는 55%를 거둬요. 여론조사 해보면 세금 만족도가 높습니다. 세금이 얼마나 잘 쓰이는지 가성비 논쟁을 하는 건 좋아요. 그런데 계속 낮은 세금 주장하면, 정부 서비스 낮고 치안 불안 높은 남미 파라과이에서 사는 게 맞죠.”



▲레시피로 경제학을 설명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책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에 경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극보수주의자 비스마르크가 발명한 것이 공공 의료보험, 연금 등의 복지라고 책에서 읽었어요. 사회주의자들은 처음엔 복지가 노동자들을 매수한다고 반대했다니, 출발은 사뭇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어쨌든 현대의 복지는 각종 사회보험을 공동구매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는지요?


“네. 지금은 시작이라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먼저 받는 것뿐이죠. 자녀 키우고 몸 아프고 실업을 당하거나 늙어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부자도 빈자도 다 받아야 하는 겁니다. 덴마크는 복지를 잘 운영하고 이용하니, 혜택을 많이 받는다는 감각이 있는 거예요.”


-역시나 공공이 답인가요?


공공의 소비를 늘려야 더 나은 환경을 누릴 수 있어요. 90년대 제네바 유엔 프로젝트를 할 때 보니 이미 스위스는 공공수영장이 대리석이었어요(웃음). 젊은이들 카페에서 일하고 노는데 공동도서관과 공원 늘리면 더 풍요하게 누릴 수 있어요.”


-공공의 제재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생명과학 기술 기업이 윤리적 통제를 받는 데 반해, AI 개발이 통제받지 않고 달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생성형 AI가 산업 혁명과 같은 변화를 일으킬 거라는 데 동의하나요?


“100% 믿을 순 없지만, 어쨌든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기술이 윤리적으로 중립적일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AI 기준이 미국 백인 남자 편향이라는 것도 문제고요. 일론 머스크도 멈춤이 필요하다는 문서에 서명한 것으로 아는데, 현재는 제동을 안 걸고 싶어 하는 쪽이 더 힘이 센 듯 해요.”



▲20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 매진해온 장하준 런던 대학교 교수./사진=채승우

 


-이 세계의 경제 흐름은 앞으로 2~3년간 어떻게 펼쳐질까요? 금리와 인플레이션 불안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요?


“진퇴양란이죠.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근본 개혁 없이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하에 돈을 풀어서 막았어요. 자본주의 300년 역사 동안 0% 이자율이 10년째 지속된 적이 없었습니다. 양적 팽창 프로그램…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건 프로 야구팀에서 1할 치는 타자나 3할 치는 타자나 똑같은 돈을 주는 격입니다. 자본시장의 가격기능이 마비된 거죠.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5%로 이자가 올라가고 수익이 5% 따라가야 하니 부실 자산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실리콘밸리 은행도 파산했어요. 금융 불안을 놔두면 인플레이가 통제가 안 되고, 이자율을 천천히 올려서 통제해야죠. 통화정책 전문가들이 더 복잡한 상황을 계산하겠지만, 사실 어디서 뭐가 터질지 알 수 없어요.


일반 국민들은 이런 때일수록 경제 지식을 알아야 정부에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정책전문가들은 금융기관 조사를 해서 금융부실 자산을 파악해서 꺼트려야 해요.”


-개인에게 권하는 선택지는 무엇입니까?


“단기적으로 주어진 선택지는 없습니다. 코인 같은 투기성 높은 자산, 수익을 갖고 왔더라도 위험한 자산에서는 빠져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최악을 가정하고 자기 보호를 시작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정책입안자들에게 ‘우리는 왜 제3의 선택지를 가질 수 없는지’ 구체적인 비전을 요구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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