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 | 철학] 美정부도 FDA 결정엔 꼼짝 못했다... 중국산 항암제 판매 허용2023.11.09 AM 11:59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LINK : https://www.chosun.com/economy/tech_it/2023/11/09/STRVMZRAFFCGNGWZNVKFFP265M/

미국 식품의약국(FDA) 전경. /로이터

 

 

지난달 말 중국 제약사 상하이 쥔스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면역항암제 ‘로크토르지’(성분명 토리팔리맙)가 미국 시장에서 판매 승인을 받았습니다. 중국 기업이 개발한 면역항암제가 미국에서 허가를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로크토르지는 향후 미국에서 비인두암(코와 입 뒤쪽 조직에 발생하는 종양) 치료제로만 사용하도록 제한적인 판매 승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중국 뿐 아니라 미국 제약업계에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반도체 뿐 아니라 바이오 산업에서도 강력한 수출 통제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산(産) 신약이 최대 제약 시장인 미국 본토에 진출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중국 생명공학 기업 사이에서 이뤄낸 이례적인 성공”이라며 “오랜 기간 임상 시험 품질과 신약 개발 능력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던 중국 제약업계에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전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반도체,바이오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지만, 중국 항암제의 미국 진출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합니다. 미 정부 산하 최고 권위의 제약 인증 기관인 FDA(미식품의약국)가 허가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통령도 이 결정 과정에는 함부로 개입할 수도 허가를 철회할 수도 없습니다. 세계 최고 인증 역량을 자랑하는 FDA의 저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중국 상하이 쥔스 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항암 치료제 로크토르지. /쥔스 바이오사이언스



◇”전세계 모든 기술 검증한다”


FDA는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인정하는 인증 규제 기관입니다. 단순히 미국 시장에 의약품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 뿐 아니라 FDA 인증을 통해 자사 제품의 안정성을 인정받기 위해 전세계 기업들이 FDA에 판매 허가를 신청합니다. 하지만 이런 FDA도 설립 초기에는 지금처럼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FDA가 지금의 권위를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30년대 발생한 ‘에벤 바이어스 사건’입니다. 미국에서 사업가이자 골프 선수로 활동하던 에벤 바이어스는 기차 여행 도중 침대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담당 의사가 만병 통치약이라며 ‘라디톨’을 권했습니다. 이 약을 복용한 이후 증상은 사라졌지만 몸 곳곳이 녹아내리면서 수년 만에 사망했습니다. 라디톨이 방사성 물질 라듐으로 만든 물질이었는데 이에 대한 규제 없이 무분별하게 처방된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모든 의약품은 정부의 까다로운 승인 절차 아래 판매, 유통하도록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 판매 승인을 내리는 기관이 FDA였습니다. 다른 국가보다 한발 먼저 식품, 의약품에 대한 엄정한 승인 절차를 확립하면서 FDA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인증 기관이 됐습니다.


FDA는 정부나 대통령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지난 2020년 6월 FDA는 코로나 치료용으로 도입한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대한 긴급 사용 허가를 철회했습니다. 당시 이 약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신이 준 선물”이라며 코로나 예방 효과가 있다고 극찬했던 치료제였습니다. 하지만 후속 연구를 통해 효능이 불분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FDA는 과감하게 승인 결정을 취소한 것입니다.


◇세상에 없던 mRNA 백신 개발 가능하게 한 저력


FDA는 코로나 기간 세계 인증 역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단순히 기업이 신청한 제품에 대해 안전성을 테스트하고 적합성을 판단하는 수동적인 차원을 넘어 앞으로 나올 미래 기술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 것이죠. 바로 코로나 피해를 줄이는 데 일조한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승인한 과정이었습니다. 코로나가 터지자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에서는 원하는 구조의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mRNA를 이용해 바이러스에 대항할 항체를 만드는 백신 기술 도입을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통상적인 신약, 백신 도입 절차를 감안하면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mRNA 백신은 이전까지 없던 기술이기 때문에 어떤 절차로 검사하고 인증해야할 지에 대한 레퍼런스가 없었습니다. FDA는 만약 mRNA 백신을 개발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안전성, 효능을 확인하고 어떤 수준의 결과를 얻어야 하는지를 먼저 기업에 제시했습니다. 제약사들은 FDA가 설정해준 기준에 맞춰 백신을 개발하면 됐던 것이죠. 1년 만에 이뤄진 mRNA 백신 상용화는 제약사가 신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개발할지를 FDA 지침이 이끈 첫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 기술이 등장하면 그것을 어떤 조건 아래에서 검증할 지에 대한 노하우가 탄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사례는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비교되곤 합니다. LG전자는 지난 2020년 공기청정 기능이 들어간 전자식 마스크를 공개했습니다. 해외에서 먼저 판매를 시작했는데 수 개월이 넘도록 한국 시장에선 판매를 하지 못했습니다. 승인을 담당한 식약처에서 새로운 기술이라는 점 때문에 심사가 오래 걸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LG전자는 식약처 신청을 철회했습니다.


◇年 예산 10조 파워 자랑하는 세계 최고 권위 인증 기관

 

코로나 때 기술 인증 역량을 과시한 FDA는 올해 예산이 10조원 규모로 늘어났습니다. 지난해(62억5000만달러)보다 34% 증가한 83억9000만달러가 됐습니다.2조원이 넘는 예산이 갑자기 추가된 것인데, 대부분이 전염병 및 암 발생률 축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도 발생 가능성이 있는 전염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FDA에 예산을 몰아준 것입니다.


FDA는 현재의 코로나 외에도 미래의 전염병이나 중대한 생물학적 위협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 이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IT, 실험실 기반(인프라)을 강화해 인증 기관으로서 조직의 역량을 보다 첨단화한다는 계획입니다. 단순히 기업 제품을 테스트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혁신을 이끌어내고, 전지구의 재앙을 막는 역할을 하는 FDA의 저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댓글 : 0 개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