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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타 랠리 속 유가 '꿈틀'…사우디의 선택이 변수 [원자재 이슈탐구]2023.12.18 PM 01:18
미 중앙은행(Fed) 금리 동결 후 유가 6% 반등
한국은 미국산 원유 늘리고 중국도 사우디산 줄여
사우디 인내심 '바닥' 조짐…유가 상승 랠리 지속 불투명
미국 마이애미의 셰브론 주유소 /사진 = AP
미국 중앙은행(Fed)이 며칠 전 기준금리를 동결한 후 국제유가가 반등했다. 미국이 조만간 금리를 내릴 것이란 의중을 내비치자 주식·채권과 금값 등이 일제히 급등하는 이른바 '산타 랠리'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가 상승 랠리가 오래갈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추가 감산 합의가 미흡했고, 생산량이 실제로 줄어들지도 미지수다.
사우디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그동안 사우디가 애써 손해를 감수하고 감산을 해서 미국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일 1300만배럴의 원유를 비롯해 액화석유가스(LNG) 등 석유 제품 생산량이 일일 2000만배럴을 돌파했다. 한국이 지난해 수입한 원유 중 사우디산이 가장 많았고, 미국산이 두 번째로 많았다. 그러자 사우디는 최근 아시아 시장의 1월 인도분 아랍 경질유 가격을 배럴당 0.5달러 낮추는 등 정책을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6개월 최저가 찍고 반등했으나
1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1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전거래일보다 0.29% 오른 배럴당 71.7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2일 기록한 6개월 만에 최저가인 67.79달러에서 6%가량 오른 가격이다. 지난 9월 배럴당 90달러를 넘긴 후 하락세로 돌아선 WTI 가격은 지난주 Fed의 금리 동결 이전까지 약세를 지속했다.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다.
Fed의 결정 이후 유가가 반등한 것은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고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지난주 미국 경기가 연착륙하는 '골디락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석유 수요가 올해보다 일일 평균 110만배럴 정도 더 늘어날 것이란 내용의 월간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다만 유가 상승세가 본격화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원유 생산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고, 내년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위해 증산을 장려하고 있어서다. 신규 유전을 개발한 브라질과 가이아나 등 OPEC+ 비회원국들 역시 증산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전세계 원유 시장에서 OPEC+의 비중은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51% 수준까지 떨어졌다. 내년 원유 수요가 늘어난다는 IEA의 보고서를 감안해도, OPEC+ 비회원국의 생산량 증가가 수요 증가분을 상쇄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사진=블룸버그
몸 푸는 사우디, 산유국들 '긴장'
OPEC+의 감산을 주도해온 사우디가 생산량을 늘릴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우디는 이달초 돌연 원유 가격을 내리며 미국 등에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국영 아람코는 아시아 시장에 1월 인도분 아랍 경질유 가격을 배럴당 0.5달러, 미디움과 중(重)질유 가격도 배럴당 각각 60센트, 30센트씩 인하했다. 사우디가 원유 판매가를 내린 것은 7개월 만에 처음이다. 로이터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가 원유 감산 약속에도 불구하고 1월에 일부 동북아시아 구매자들에게 계약 물량을 전량 공급하겠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최근까지 최대 생산량인 일일 1200만배럴에 크게 못 미치는 일일 890만배럴 정도만 생산하며 OPEC+의 감산 합의 이상으로 생산량을 줄여왔다. 이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WTI 원유보다 낮았던 중동 원유 가격이 WTI보다 비싼 브랜트유 가격을 웃돌 정도로 치솟았다. 사우디에서 원유를 대량 수입하던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슬금슬금 원유 수입선을 바꾸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서 작년 같은 기간(1억976배럴)보다 소폭 늘어난 1억1254만배럴의 원유를 들여왔다. 반면 사우디에선 작년(2억8045만 배럴)보다 줄어든 2억6986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 데 그쳤다. 중국도 비슷하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유업체들은 사우디 아람코에 내년 1월에 4000만배럴의 원유 선적을 요청하는 데 그쳤다. 이번달(4600만배럴)에 비해 10% 이상 줄어들었고, 지난 8월 이후 가장 적은 물량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건물 /사진=Reuters
사우디, 큰 폭 증산은 아닐듯
전문가들은 다만 사우디가 생산량을 대폭 늘리며 치킨게임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국석유협회 관계자는 "2010년대 중반 사우디가 미국 셰일가스 업체를 고사시키기 위해 치킨게임을 벌여 상당수 업체를 파산시켰지만, 사우디 자신의 타격도 만만치 않았다"며 "지금은 그 때와 달리 미국 중소 셰일업체들이 메이저 기업의 우산 아래로 들어간 탓에 경쟁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가 급격한 증산을 해서 유가가 급락할 경우 전쟁 비용을 조달해야 하는 러시아 등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OPEC+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간신히 미국의 제재를 피해 수출을 늘리던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도 OPEC+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 한국은 올해들어 10월까지 사우디에 기름값으로 235억3689만달러(약 30조5000억원)를 지불하는 등 총 709억5256만달러(약 92조원)을 원유 수입에 썼다. 지난해 전세계 원유 무역 시장에서 중국이 1위 수입국이었고, 한국과 일본은 각각 4위와 5위에 올랐다. 중국이 23%, 한국과 일본이 각각 6% 가량의 물량을 수입하는 등 동북아시아 3국이 전세계 원유의 3분의 1 이상을 빨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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