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 | 철학] 美대선에 또 등장한 음모론...이번엔 ‘눈 폭풍은 날씨 조작’2024.01.16 PM 02:07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LINK : 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nature-environment/2024/01/16/JZVKWKG7B5ETHLMZJOPBYHW2G4

극우 음모론자들 “HAARP가 날씨 조작”

미 대선 때마다 음모론 등장




이달 12일(현지 시각)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릴 아이오와 코커스를 나흘 앞두고 겨울 폭풍으로 눈이 쌓이자 제설차들이 눈 청소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5일 저녁(현지 시각) 치러진 미 공화당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압승한 가운데 그를 지지하는 극우 공화당원이 최근 미국을 휩쓴 대규모 겨울 폭풍이 날씨 조작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파 활동가인 로라 루머는 이달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계정에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대통령 선거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이번 폭풍을 조장하고 HAARP(고주파활성오로라연구프로그램)를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국 언론은 미 중서부를 강타한 눈 폭풍이 15일 열리는 아이오와 코커스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를 내놨다. 루머는 이와 관련해 이날 니키 헤일리 후보를 지정해 게시한 글에서 “딥스테이트(Deep state·그림자 정부)가 아이오와 전당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HAARP를 작동하고 있나”라며 “니키 헤일리가 방산 업계에 많은 친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고 올렸다.


아이오와에서 열린 이번 미 공화당 전당대회는 오는 11월 미 대선 레이스에 나설 공화당 후보를 선출하는 첫 번째 무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앞서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가운데 실제 지지율을 검증 받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경선을 앞두고 눈 폭풍과 체감온도 영하 30도 이하의 북극 한파가 강타하면서 날씨가 이번 경선의 새 변수로 떠올랐다. 트럼프의 경선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와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예정된 행사들을 모두 연기했다.


플로리다에서 활동하는 전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이기도 한 루머는 “아이오와에 10년에 한 번 올 눈보라를 맞는 것은 날씨 조작의 결과”면서도 “헤일리 후보가 아이오와에서 지고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 전당대회를 장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머는 이밖에도 헤일리 후보가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 후보에 이어 2위로 떠오르자 다른 거짓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헤일리 후보가 태어났을 당시 부모가 미국 시민이 아니었다며 공직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는 거짓 주장이다.


과학자들은 아이오와 전당대회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눈보라가 이전 국방부 연구 장비 때문에 발생했다는 루머와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장도 거짓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알래스카주 가코나에 있는 HAARP 시스템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투표를 막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HAARP와 같은 대기 연구 프로그램이 날씨를 조작하는데 사용된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해 왔다. HAARP는 1990년 미 공군이 설립해 운영하다가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가 2015년 이어받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흔히 오로라가 생기는 전리층이 군사와 민간 통신, 항법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미 공군 연구소의 우주선관리국이 구축하고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가 운영하는 고주파 활성 오로라 연구 프로그램 사이트. /미공군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과학자들에 따르면 태양풍과 우주선의 영향으로 전리층에서 발생하는 자연적인 교란은 글로벌위치확인시스템(GPS) 위성과 무선랜, 위성과 이동통신을 포함해 다양한 전자 장치의 무선 신호를 방해할 수 있다. 이런 자연적인 교란은 예측하기 어렵다. HAARP 연구자들은 고주파 무선 송신기를 사용해 전리층의 일부분을 가열해 자연에서 발생하는 것과 유사한 인위적인 조건을 만들어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HAARP를 둘러싼 음모론은 처음은 아니다. 음모론자들은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날씨를 통제하려는 정부의 일급 비밀 계획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대기 중에 고주파를 쏴서 구름을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없애는 식의 날씨 조작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시 벤추라 전 미네소타 주지사와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샌디후크 총기난사가 날조됐다고 주장하는 음모론자인 알렉스 존스가 이런 터무니없는 추측을 지지하는 유명인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지난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강진도 HAARP 실험 결과라는 주장도 나왔다.


HAARP 운영진은 게시판에 “이 장치가 전송하는 주파수 범위의 전파는 날씨 현상이 발생하는 대류권이나 성층권에 전혀 흡수되지 않는다”며 “이들 층에선 상호작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날씨를 조절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밥 맥매코이 지구물리학 연구소장은 2018년 AP와 인터뷰에서 “신호를 10배로 증폭해도 날씨에 절대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말했다.


벨기에 루뱅 가톨릭대 지구생명연구소 필립 마르베 연구원은 지난 2022년 AFP와 인터뷰에서 “날씨는 본질적으로 약 10km고도 아래 대류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운영진의 설명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날씨 현상이 일어나는 대류권은 지구 상공 60km에서 시작하는 전리층보다 훨씬 낮은 위치에 있다.


영국 남극조사국(BAS) 엘라 길버트 연구원은 “열파, 가뭄, 폭풍, 홍수는 대기의 다양한 조건에 따라 발생하며 종종 무작위로 조합되며 발생하기도 한다”며 “기술이 이런 극단적인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음모론은 2020년 미 대선부터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트럼프를 지지하는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컴퓨터 오류로 공화당 표를 민주당 표로 인식해 투표 결과가 바뀌었다거나 투표 결과를 뒤바꾸는 장치가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확산하면서 사상 초유의 미 의회 점거라는 심각한 사태를 부르기도 했다.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음모론은 다른 소문보다 더 쉽게 전파돼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지난해 9월 미국과 이탈리아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인 인문사회과학커뮤니케이션지에 2020년 미국 대선 기간 동안 음모론이 대중에게 부정적 편향성을 불러일으켰다는 연구결과를 싣기도 했다.


미 기상청은 “미 공화당의 첫 대선 후보 경선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리는 아이오와주를 강타한 이번 눈 폭풍이 북극의 찬 기운을 남쪽으로 밀어내는 북극 고기압의 영향으로 발생했다”며 “이번 폭풍이 ‘생명을 위협하는 추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HAARP 운영진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제기한 이번 음모론에 대해 입장을 묻는 언론사들의 요청에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이 처음 열리는 아이오와주에서 유세 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인디애놀라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후보 선출을 위한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리는 15일 아이오와주 수은주는 영하 29도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보되면서 흥행에 비상이 걸렸다. /로이터 연합뉴스


댓글 : 0 개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