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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K멘탈 빨간불... 도움 받을 용기 내야'2024.03.23 PM 05:55
국가는 부흥, 국민은 생명 포기… 유례 없어
정신 재난 상황, 전 국민 심리 CPR 훈련해야
에이즈 해결했듯… 韓 정신 보건 희망 있어
저소득국가의 보건과 재건에 헌신한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가 한국인의 정신 건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에 나섰다./사진=채승우
“LA카운티에서 일하시는 유명한 정신과의사가 사람에게 중요한 3가지 P가 있다고 했어요. Place, Person, Purpose. 장소, 사람, 삶에 대한 목적. 3P 중 정신 자원에 가장 중요한 건 삶에 대한 목적이 아닌가 해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면, 저도 우울할 거예요.”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가 따스한 눈빛과 분명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2019년 세계은행 총재직을 사임한 뒤 저소득국가를 위한 인프라 투자와 정신 건강 개선에 전념하고 있던 김용 전 총재가 한국을 찾았다. 인구 붕괴를 염려할 만큼 한국인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 속출해서다.
전 IMF 총재 라가르드는 ‘한국은 마치 집단자살로 향하는 나라 같다’고 놀라움을 전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인터뷰에 등장했던 미국 작가 마크 맨슨도 한국 방문 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는 동영상으로 경종을 울렸다.
우리가 K콘텐츠의 힘에 취하는 사이, 세계는 K멘탈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추락하는 출산율, 치솟는 20대 자살률, 10대 우울증의 가파른 증가는 무엇을 말하는가.
김용 전 총재는 현 상황을 ‘역사적으로 전 세계 유례가 없는 정신 재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전 국민 대상 심리적 응급 훈련을 권고했다. 방관하면, 현대적 형태의 제노사이드와 다를 바 없다는 강도 높은 발언으로, 전방위적인 대응을 촉구하며.
빈곤국에서 에이즈와 결핵을 퇴치한 접근법으로, 차근차근 급박한 생명 구조 작업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김용 전 총재를 만났다. 김용은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과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 의과대학 국제 보건학과장을 역임했다.
다트머스대학교 총장, WHO 에이즈 국장, 세계은행 총재로 일하며 최전선의 의료 금융 행정가로 헌신했다. 얼마 전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인터뷰에 등장해서 ‘인생 8할은 운’을 밝혀낸 의사 출신 실증경제학자 김현철에게 ‘세상을 바꾸려면 경제학을 계속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시야가 높은 사람답게 인터뷰 내내 다양한 맥락을 하나로 꿰뚫어 읽는 비범함, 밀도 높은 대화 속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가 돋보였다.
그는 2012년부터 7년간 개도국의 경제 발전 지원을 목표로 하는 세계은행에서 헌신했다. 국제적 신뢰도가 높아 해외에서 그의 이름으로 대출을 유도하는 보이스 피싱 범죄도 있을 정도./사진=채승우
-최근에 미국 작가 마크 맨슨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는 동영상을 올려서 이슈가 됐어요. 세계인이 보는 한국의 정신건강, 그렇게 심각한가요?
“(침착한 어조로) 너무 충격적이라 우려스럽습니다. 전 세계 그 어떤 국가, 어떤 도시도 이런 사례가 없었어요. 한국의 자살률과 우울증 수치는 지난 20년간 OECD 국가 중 최고지만, 치료 케이스는 최저 수준이에요. 서울의 출산율 0.57%(2022년 기준)는 유럽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보다 낮은 수치예요. 역사상 어떤 전쟁이나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이보다 낮은 적은 없어요.
한국의 수치가 인류 역사상 최저 출산율이라고 구글에도 나옵니다. 외로움과 고독사 문제는 어떤가요? 70년대 한국의 1인 가구는 0.7%였지만 지금은 40%에 육박해요. 사회 변화가 이 이 정도로 익스트림할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사실 한국인은 너무 자주 그런 데이터를 접하다 보니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발벗고 나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미국의 정신건강 보건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일하던 중에 직접 VIP(윤석열 대통령)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조사해 보니, 한국은 미국의 정신 질환 팬데믹보다 훨씬 심각했어요. 당장 팀을 꾸리고 함께할 파트너를 수소문했고, 예일대 나종호 교수에게 긴급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 즉시 한국 내 전문가들과 팀을 꾸려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용과 함께 한국인의 정신 건강 긴급 구호자로 나선 나종호는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이라는 책을 낸 예일대 정신과 교수다. 책 출간 직후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인터뷰에서 “자살은 ‘극단적 선택’ 아냐… ‘자살’로 정확히 불러야 해결책 나와”라는 메시지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긍휼한 마음을 품은 최전선의 전문가 나종호와 김용의 협업은 한국의 치솟는 자살률과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WHO 에이즈 국장과 세계은행 총재로 실질적 변화를 이뤄냈던 김용은 문제 해결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김 전 총재는 세계은행 총재에서 물러난 뒤 자신이 세운 공공 보건 비영리단체 PIH로 돌아가 활동하고 있다./사진=채승우
-해결가능한 문제로 보세요?
“저는 2000년대 초까지 아프리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에이즈와 결핵 퇴치를 위한 사회운동을 이끌었어요. 약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약의 가격도 다운시키는 등 전 지구적인 정책이 나오도록 설득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이제는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멘탈 케어도 유사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전방위적인 사회 리더들이 중지를 모으고 앞에 나서야 해요. 왜냐하면 정신 건강 문제는 인구 붕괴라는 근본적인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정신건강 문제가 곧바로 인구 붕괴로 이어진다고요?
“그럼요. 저는 WHO와 세계은행에서 일했습니다. 금융으로만 접근해도 문제가 심각해요. 인구는 점점 늙어가는데 국민연금을 낼 젊은이들은 사라지고 있어요. 출산율이 곤두박질치고 자살률이 치솟고 있다는 것에 무감해지면 안 됩니다. 지금 그 붕괴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지금 신생아 숫자를 보세요. 1990년대 70만 명이던 수치가 지금은 20만 명으로 떨어졌어요. 이런 식이면 미래 노동력이 다 사라집니다. 출생률 추락은 현재 한국인이 겪고 있는 외로움과 우울증에 깊은 뿌리가 닿아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전 세계인이 K멘탈을 걱정하는데, 한국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OECD 자문관인 수잔 오코너 박사는 OECD 보고서에서 ‘한국 사회 전체에 정신적 고통이 만연하다’며 ‘한국을 세계 최고의 정신질환자를 양산해 내는 학교’라고 지적했습니다. 생존능력이 클수록 마음은 더 병드는 걸까요?
“(한숨을 쉬며)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어요. 먼저 제 개인사를 말씀드리지요. 저는 1959년 생이예요. 처음 제가 세계은행 총재로 임명됐을 때 직원들이 1959년부터 한국 관련 문서를 뽑아주더군요. 1959년의 한국은 교육 정도가 너무 낮은 극빈국이었고, 세계은행에서 대출받을 자격조차 안 되는 약소국이었어요. 1차 대출이 나간 건 1963년, 2차 대출도 5년 뒤엔 1968년에야 가능했죠. 그만큼 희망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런 나라가 어떤 성공스토리를 썼는지 세계가 알고 있죠. 제가 세계은행 총재로 제 3세계를 방문하면 아프리카 나라 대부분이 한국을 선망해요. 한국의 궤적을 따르고 싶다고… 하지만 지금 어떻습니까? 출산율 추락, 자살률 급증이라는 성장의 청구서를 받고 말았지요.
1959년을 기준으로 여성 1명당 출산율이 6명이었는데 지금은 0.6명이잖아요. 이 변화가 제 생애주기 안에서 다 일어났어요. 극빈국에서 단숨에 높은 GDP에 이르렀고, 이어서 인구 붕괴를 걱정하고 있죠.”
정신 건강 위기는 인구 붕괴로 이어진다.
-아이러니예요. 국가는 부흥했는데 국민은 생명을 거부하고 있다니…
“글로벌에서 이런 급진적인 변화를 겪은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어요.”
-왜 유독 한국이 이런 당혹스러운 ‘성장과 붕괴’의 모델이 되었을까요?
“한국인은 물질에 대한 욕망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럭셔리 소비 수치만 봐도 중국, 일본, 대만보다 월등히 높아요. 사회 변화도 극심해서 성인 우울증 비율이 37%로 높은 편입니다.”
-실제로 주변을 돌아보면 정신과 약을 먹지 않는 사람이 드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최근까지 불안 장애로 약물의 도움을 받았어요.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는 책을 쓴 김현아 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양극성 장애로 고통받는 청년들이 많고 특히 20대 여성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통계로 봐도 한국은 10대부터 20대, 30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사망원인이 자살입니다. 미국은 사고사에요. 에이즈와 결핵이 극빈국의 생명을 위협했던 것처럼, 정신질환이 한국 사회의 존속을 위태롭게 하고 있어요.”
-극빈국도 정신 건강 문제가 심각합니까?
“치료 환경이 말할 수 없이 열악하죠. 예를 들어 시에라리온은 정신과 의사 1인 당 환자가 700만 명 정도예요. 그동안 정신과 약도 인식도 부족해서, 질환자들을 그냥 수갑으로 묶어두곤 했어요. 찾아온 환자의 손목을 보면 수갑 자극이 선명했어요.
제가 PIH(Partners in health, 1987년 설립)라는 NGO의 공동 설립자입니다. 저희가 정신과의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나마 3년 만에 700만 명 당 9명으로 정신과 의사가 늘어났어요.”
팬데믹 이후 극빈국이나 선진국 모두 정신 건강 위기에 직면했다. 질환자에 낙인을 거두는 것부터 치료의 시작이다.
결핵, 에이즈, 빈곤 퇴치를 위해 싸우다 갑자기 정신질환 문제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정신질환을 통해 보건과 교육 이슈에 더 광범위하게 대처하고 있으며, 극빈국이나 선진국 모두에게 이 문제가 매우 절실하다는 걸 인식했을 뿐이라고.
-통계에 의하면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한인 사회의 자살률도 타인종의 4배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민자로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흔들림없는 정신 기반을 갖게 된 비결이 있는지요?
“상대적으로 안정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죠. 에이즈와는 달리 정신 건강은 삶에 밀착된 문제예요. 살펴보면 저희 집안에 자살자나 뇌질환을 앓았던 구성원은 없었어요. 더불어 하버드 의대에서 좋은 스승들을 만난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제 은사였던 아이젠버그 교수는 존스 홉킨스 정신과 과장으로 일하며 ADHD에 자극 치료가 도움이 된다는 걸 처음 발견한 분이죠.
무엇보다 제 정신 건강의 근본적인 비결을 묻는다면, 그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 덕분입니다.”
-의미에 대한 감각이라…
“제 어머니 말씀이, 68년도에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인권운동을 하는 장면을 보고 다른 형제자매보다 제가 더 깊은 동요를 느끼더랍니다. 잘은 모르지만 내면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꿈틀거림이 있었어요. 고작 9살이었는데도요. 그때 이미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깨달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백인 사회에서 아시안으로 사는 것만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썼을텐데요.
“1964년 텍사스로 처음 이민 왔을 때 제 나이가 5살이었어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어린이집 애들이 보자마자 내 얼굴을 후려치더라고요. 밋밋한 얼굴이 신기하다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도 아시안을 처음 본 9살 형에게 “이 집에서 당장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풋볼팀에서 쿼터백을 할 때도, 상대 팀은 저를 표적 삼아 “죽어버려”라고 덤벼듭니다. 다른 동네로 야구하러 원정 경기를 가도, 앞다퉈 제 얼굴에 침을 뱉었어요. 살면서 아무 잘못 없이 얼굴에 침을 맞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희 아버지는 성공한 치과의사였고, 사회적 계층으로 봤을 때 저희 가족은 잘 사는 축이었는데도 그랬어요. 그런데 그런 일을 겪으면서 배포가 생겼어요.”
멸시와 차별에서 벗어날 출구를 인류학에서 찾았다.
-문제의 출구를 어디서 찾았나요? 맷집만으로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 위기를 돌파할 수는 없었을 듯 한데요.
“제 형제자매도 그렇고 2세대는 한국에 나와 이태원을 돌아다니고 여행하며 소속감을 찾으려고 애를 써요. 이민자라면 다 정체성의 위기를 겪습니다. 저는 정체성 위기가 심하게 왔을 때 인류학을 공부했어요. 더 큰 시야로 인간을 바라보기로 한 거죠.
그때 한국어도 배우고 한국에서 내 역할을 찾겠다고 목표를 세웠는데, 막상 한국에 나와보니 한국이 너무 잘 살아서 설 자리가 없더군요(웃음). 그래서 아이티와 페루로 간 겁니다.”
의학과 인류학을 접목한 김용의 실용적이고 사려깊은 의료 프로그램은 아이티와 페루에서 에이즈, 결핵으로 죽어가던 수많은 목숨을 살렸다. 정체성 위기라는 개인적인 이슈는 더 큰 세계의 문제와 접속되어 있다는 소명으로 그의 인생에 꽃을 피웠다.
더 큰 맥락 속에서 자신의 쓰임을 찾는 김용의 스펙터클한 세계관은 그의 가정 환경에 유래가 있다. 나는 몇 해 전 그의 삼촌이자 멘토인 철학자 전헌 선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누이(김용의 어머니 전옥숙 교수)를 쫓아 퇴계학, 불교학, 신학을 통섭해 ‘다 좋은 세상’이라는 책을 쓴 전헌 선생은 ‘감정을 아는 것이 철학’이라고 했고, 당시 세계은행 총재였던 조카 김용에 대해서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어머니 전옥숙 교수의 모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NYC)에서 삼촌을 앞에 두고 ‘자비의 원칙’을 강연하던 김용의 균형 잡힌 몸가짐에서 나는 차원이 다른 세계인의 얼굴을 보았다.
어머니의 모교에서 ‘자비의 원칙’을 강연 중인 김용 전 총재.
-치과의사인 아버지와 철학자인 어머니는 다른 차원의 배움을 주셨겠지요. 인생 좌표를 정할 때 혼란스럽지는 않았는지요?
“주말엔 퇴계학과 신학을 공부한 어머니와 삼촌이 위대한 사상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귀동냥으로 들었어요. 어머니가 참여하시는 철학자 모임에서 ‘정치와 철학이 어떻게 세상의 형태를 만드는지’ 토론을 듣곤 했죠.
반면 제 아버지는 극도의 실용주의자였어요. 제가 84년에 브라운 대학을 졸업했을 때, 공항 픽업을 나온 아버지가 물으셨어요. “대학 졸업하면 뭐 할래?”
제가 정치학을 더 공부해서 아메리칸 커뮤니티에서 리더로 일하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호통을 치셨어요.
‘너는 아시안이고 소수민족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사람들은 듣지 않을 거다. 먼저 실용적인 기술을 배운 후 하고 싶은 걸 해라. 의대에 가서 레지던트까지 마친 다음에 네가 원하는 현장에서 사람들을 설득해라.’ 아버지의 현실 조언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하버드 의대에 진학했어요.
그리고 운 좋게도 저는 그해 최초로 하버드 대학에 생긴 의대 학위와 사회과학 박사 통합 프로그램의 첫 수혜자가 됐어요. 그 자리에서 저만의 균형을 찾게 된 거죠.”
-기술과 철학이 정교하게 크로스 된 인생이군요! 앞을 내다보고 스스로 계획한 게 아니라면 신의 정밀한 ‘인도하심’이라고 느껴집니다.
“제 고조부가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안필립과 기독교 확장에 기여하셨어요. 선친께 들으니 5대가 같은 집에 살았고 성경을 100번도 넘게 읽으셨다고 해요. 저희 가계도를 더 파고들면 왕실에서 공자를 가르쳤던 유교 학자도 계세요. 어쩌면 제 핏줄에 종교의 영성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독실한 개신교도인 부모님에 비하면, 저는 기독교와 복합적인 관계를 맺어왔어요. 하버드대학 동료였던 폴 파머와 만든 보건 기구 PIH의 신조가 ‘가난한 자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택’인데, 이것과 같은 개념을 해방신학에서 발견했어요.
해방신학은 기독교에서도 굉장히 논란이 된 분야예요. 1960년대 남미에서 태동했는데, 종교 지도자들이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과만 교류하던 상황에서, 엘살바도르의 한 목사님이 질문을 던졌어요. ‘지금 이 세계에 예수가 온다면 어디에 있을까?’ 그 질문의 파장이 컸어요.”
김용은 가장 가난한 자들이 최우선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해왔다.
-혹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미소 지으며)’가장 가난한 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사회적 복음이라고 생각해요. 그 점에서 영향을 받았죠. 예수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 곁에 있었으니까요. 마태복음 25장에서도 ‘네 이웃을 너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PIH가 종교 단체는 아니고 유대교도 무슬림도 있어요. 종교를 막론하고 가장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를 섬기는 게 기준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개신교도 의사들이 2주 동안 머물다 가는 단기 의료봉사는 ‘자아의 확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료는 지속가능성이 없어서 합병증이 생기면 저희가 다시 치료해 드려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지속 가능한 최선’은 하버드에서 의학과 함께 인류학을 공부했던 김용과 폴 파머에 의해 어떤 종교보다 구체적인 논거를 갖게 된 듯했다. WHO에서 일할 때도 세계은행에서 일할 때도 그는 이 원칙에 따라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했다.
-살면서 원칙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제가 세계보건기구에서 에이즈와 결핵을 치료하겠다고 했을 때 글로벌 보건 리더들은 99.9%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비용 효용이 안 맞는다고요. 그럴 때 저는 자문합니다. ‘예수님이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복잡해서 안 된다고 물러섰을까?’
종교적인 언어를 쓰지 않아도 서양의 위대한 사상가, 인류학의 문헌들은 증언하고 있어요. ‘가장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우선 선택권’을! 현장에서 구호를 시작해 보니 아침, 저녁 약 한번 먹는 것만으로도 에이즈는 드라마틱하게 개선됐어요. 그런데 해보지도 않고 아프리카의 2,500만 HIV 환자들을 비용 효율이 안 맞으니 죽게 내버려두자? 당시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현대적 형태의 제노사이드(집단 학살)가 됐을 거예요.”
정신질환, 자살 문제를 내버려두는 것도 현대적인 형태의 제노사이드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노사이드는 과거의 끔찍한 역사라고만 단정했습니다.
“한국의 극한 환경은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아요. 15시간씩 공부하지 않으면 낙오되는 사회를, 한국의 청소년들이 살아가고 있어요. 제가 IMF 전 총재였던 크리스틴 라가르드에게 한국 학생들은 7시부터 11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했더니, 놀라더군요. ‘4시간만 공부하는데, 그렇게 시험을 잘 보느냐’고요(웃음).
나중에 한국의 출산율, 자살률 데이터를 다 보고 나서 경악을 해요. ‘한국은 집단 자살로 향하는 나라 같다’는 거죠.”
능력있음 보다 살아있음이 우선이다.
-저도 자식 키우는 사람으로 안타깝습니다. 10대 20대에 뇌질환 유병률이 가장 높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어서, 고위험군 자식을 둔 부모들은 ‘죽지 않고 살아만 있어도 고맙다’더군요.
“한국 교육의 시스템, 사회 체제는 결과 데이터로만 보면 너무 좋아요. 그런데 그 좋은 데이터가 나오기까지 젊은이들이 너무 시달렸어요. 그래서 비관적이 됐고, 헬조선에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결심한 거죠.
최저 출산율, 긴 업무 시간, 왕따와 자살… 젊은이들이 벼랑 끝에 서있잖아요. 제발 비난하거나 벌주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현재 한국에서 ‘우선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면 그게 정신 보건 분야예요. 세대가 이어지기 위한 절박한 의무지요.”
-다트머스대학교에서 총장으로 재임 시절, ‘세계의 문제가 나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수많은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셨습니다. 치열한 경쟁으로 고통받는 ‘헬조선’의 청년들에겐 뭐라고 하시겠어요?
“나라마다 조금씩 달라도 저의 기본 메시지는 ‘의미 있는 일을 찾아라’였어요. 이 메시지를 적용하기 힘든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만큼 상황이 복잡하고 선택권도 제한적이에요. 청년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낮은 자세로 살라’고 하면, 그건 덧없고 맥없는 소리가 될 겁니다.
한국적 맥락이 그래요. 주거가 불안해서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보세요’ ‘올바른 쪽에 서세요!’ 이런 말을 어떻게 던집니까? 무엇을 하라는 이야기가 더 상처가 될 것 같아서 섣불리 조언하기 어렵습니다.”
‘조언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 마음을 울렸다. 섣불리 과제를 던지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책임지려는 김용의 어른다움에 안도감이 들었다.
제너럴리스트이자 스페셜리스트인 김용의 추진력은 유명하다. 1990년대 페루에서 악성 결핵이 창궐했을 당시, 그는 오리지널 치료제보다 95퍼센트 싼 복제약을 대량으로 들여와 결핵을 퇴치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우기도 했다./사진=채승우
-슬하의 두 자녀는 어떤 기준으로 양육했습니까?
“제 두 아들은 운이 좋습니다. 자랄 때 WHO 관사와 월드뱅크 관사에서 지냈고, 아버지가 보디가드에게 둘러싸여 전 세계 출장을 다니는 모습을 지켜봤으니까요. 언젠가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에게 ‘너도 인종차별을 받은 적 있냐?’ 물어봤더니, 워싱턴DC에 살 때, 그 지역에서 싫어하는 야구팀 티셔츠를 입고 갔을 때 딱 한 번 겪었다더군요(웃음).
이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야구팀에서 1루에서 시작하고, 누군가는 2루에서, 누군가는 운이 좋아 3루에서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아예 야구장에 못 들어가기도 하죠. 운 좋게 태어난 아이들은 그 운값을 자각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하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조차 부모의 바램이고 행복일 뿐, 아이들에게는 ‘이런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그저 살면서 필요한 습관, 충동 조절이나 인내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조언할 뿐이죠. 현재 제 아들들은 의사가 되는 데는 관심도 없어요(웃음). 자신이 열정과 행복을 느끼는 일을 찾겠죠.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세계를 위해서 했던 많은 일보다 아들들은 UN에 BTS 초대 이벤트를 했을 때 제일 감동하더라고요(웃음).”
-문득 궁금합니다. 커리어의 정점에 올랐을 때, 왜 세계은행 총재 직에서 사임했지요?
“제가 다트머스대학교 총장직을 할 때부터 인연을 맺은 리더십 코치 마크가 그러더군요. 리더의 자질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거라고. 2019년은 세계은행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본금이 들어온 해였어요. 마침 제가 추진 하던 인적 자본 프로젝트도 완수했고요. 세계은행에서의 나의 소임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몇 언론이 제기했던 트럼프 행정부와 마찰은 그야말로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이어서 질문한 의사 증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환자의 안위가 걱정된다’며 말을 아꼈다. 부디 ‘환자를 중심에 두고 관계자들이 다시 대화를 시작할 것’을 권고하며.
“스스로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꼭 도움을 요청하세요. 부디 도움받을 용기를 내세요.”/사진=채승우
-뼈아프지만 ‘한국은 집단 자살로 향하는 나라 같다’는 서구의 지적에, 정신적 재난 상황임을 실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헤쳐갈까요? 희망이 있습니까?
“굉장히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결할 수 있어요. 단 사회 전체가 같이 움직여야 해요.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현시점을 정신적 응급 상황이라고 선포하고 CPR 교육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정신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지표와 주변인의 위기를 알아채고 살릴 수 있는 응급 교육이 시급해요. 하버드 의대 사회의학 담당 교수에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인디언 여성에게 인지 행동 치료의 기본을 가르쳤더니 불안 장애가 현저하게 낮아졌다는 보고를 들었어요.
다른 국가들의 성공 사례도 적극 참고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핀란드가 정신 건강 문제를 개선하면서 출산율이 급등했고, 일본도 자살 방지에 매진하면서 출산율이 올라갔어요. 정신 건강은 복잡성 높은 이슈지만, 무엇보다 교육과 주거 등 청년 세대의 기본 문제를 직시해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부탁합니다. 스스로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꼭 도움을 요청하세요. 부디 도움받을 용기를 내세요.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라’는 선구자적 인도보다 ‘도움받을 용기를 내라’는 어른 김용의 호소가 더 울림이 크고 짙었다. 그의 바램대로 ‘능력있음’ 이전에 ‘살아있음’이… 존재만으로 가족과 이웃에 공헌하고 있다는 각성이, K멘탈의 코어에 단단히 자리 잡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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