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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 (Foreign Affairs) C레벨의 지정학: 흐려지는 기업과 외교의 경계2024.03.31 PM 01:35
편집자 주
'총력전'(total war)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쟁이니 외교니 하는 국가의 일은 소수만이 관심을 갖는 부문이었습니다. 국민의 범위가 상위 10%, 30%에 머물렀던 전근대 기간에는 국가들이 전쟁을 하면 농노들이나 아직 참정권이 없는 평민들은 언덕 위에 올라가 요즘 사람들이 헐리우드 전쟁영화 관람하듯 구경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특정 영토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풀멤버십 국민이 된 민주적 국민국가에서는 영토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국가의 일에 총동원됩니다. 모든 힘을 동원한 '총력전'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기업들이 외교와 전쟁에 동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미국 연방하원이 중국계 애플리케이션인 틱톡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렇게 소셜미디어 앱 조차도 라이벌 국가들 사이에서는 첨예한 갈등 요소가 됩니다. 겉으로는 무해해보이는 중국산 앱 틱톡이 미국인들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하고 감시하는 앱일 가능성을 배제 못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정부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금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포린어페어스 2024년 3월 11일자 기사는 다시 한번 국가의 대외정책과 기업 사이의 '경계 붕괴' 현상을 조명합니다. 기업가들이 왜 국제문제를 알아야하는지, 그리고 왜 외교관과 대외정책 입안자들이 기업을 잘 알아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1914년 말,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난감한 요구에 직면했다. 다수의 영향력 있는 지지자들이 미국 무기 제조업체가 유럽 국가들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하도록 공개적으로 담화문을 발표하거나 아예 유럽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금지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윌슨은 당시 유럽에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던 전쟁을 종식시키거나 적어도 완화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고, 지지자들의 요구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답변에서 그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무기 판매는 너무나 많은 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제 권한이 명백할 정도로 부족해, 저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월슨이 대통령으로서 느꼈다고 주장하는 무력감은 평화 시기에도 국가안보와 관련된 다양한 경제활동에 정부의 개입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오늘날의 미국에는 이상하게 들린다. 이를 2023년 12월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장관의 발언과 대조해 보자. 미 상무부는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기업이 인공지능과 같은 핵심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발전을 돕는 걸 막기 위한 수출통제를 설계해 왔다. 레이몬도 장관은 이러한 통제를 교묘하게 우회하려는 미국 기업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했다. "만약 여러분이 (중국이) AI를 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칩을 재설계한다면, 저는 바로 다음날 그것의 수출을 통제할 겁니다." 그는 정책가들과 경영진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윌슨과 레이몬도의 발언 사이의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어난 변화는 심오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세월 동안에도 국가안보와 외교정책이 가끔 미국 재계를 침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거의 모든 경영자들은 지정학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던 탈냉전 세계에서 국가적 이해관계가 개방시장 및 무역 확대와 상충될 수 있다는 생각은 미국의 경영자들에게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지정학을 뒤흔든 변화는 미국 전역의 C레벨에 영향을 미쳤다. 500명의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 설문에서 지정학은 2024년 세계경제와 시장에 가장 큰 위험으로 꼽혔다. 이러한 우려는 부분적으로는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계속되는 전쟁, 대만 해협에서의 위기 우려 등 세계적 분쟁의 가속화에 기인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을 지정학적 무대의 행위자로 만드는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가 지정학적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제재와 산업정책에 의존함에 따라 기업들은 점점 더 외교정책의 대상이자 도구가 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우선으로 삼는 외교정책 중 일부, 예를 들어 회복탄력성 있는 청정에너지 공급망의 장려나 중국의 기술발전 속도 늦추기 등은 수천 개의 개별 기업에 의존한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미 정부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으며 기업들은 종종 공공부문보다 정보에서 우위에 있다.
※ C레벨(C-level) : "Chief-level"의 줄임말로, CEO, CTO, CFO 등 기업의 최고 경영진을 의미하는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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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일부 정책가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들은 지정학적 의사결정의 운전석에 앉는 것에 익숙하지, 조수석에 앉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연방정부의 궁극적인 역할이 미국의 국익을 판단하고 보호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관리들은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한다. 민간 부문과의 제도화된 협의, 산업 전문성에 대한 재정 지원, 더 나은 경제 정보 등이 좋은 첫걸음이 될 것이다. 보다 깊은 차원에서는, 정책가들은 민간 부문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나
오늘날의 외교정책 문제에서 경제적 경쟁은 핵심을 차지한다. 이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경제적인 상호작용이 거의 없었다. 양국 간 무역은 1979년에 불과 45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과 중국은 일반적으로 1~2주마다 그 정도(인플레이션 감안)를 거래해 왔다. 탈냉전 시대에 미국 외교정책은 시장 개방과 국제 경제 장벽 축소에 초점을 맞추었지 장벽의 구축에는 관심이 없었다. 9.11 테러와 같은 시대를 정의하는 위기는 미국 정책가와 기업 간의 관계를 거의 변화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테러와의 전쟁'은 외교정책이 주로 안보 및 군사 문제를 다룬다는 생각을 더욱 굳건히 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 통합은 보이지 않는 데서 경기장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1980년에 무역은 세계 GDP의 37%에 불과했다. 오늘날 그 수치는 74%이며, 세계 경제는 20세기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얽혀 있다. 물론 세계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세기에 걸친 과정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고도로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강대국 경쟁이 출현했다는 점이다. 군사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경제적, 기술적 경쟁이 글로벌 정치의 주요 전장이 되었다. 수십 년 동안 정책 결정을 지배해 온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 하에서는 반도체 제조업체가 다음 공장을 어디에 지을 것인지,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에 대한 투자를 줄일 것인지 여부가 정책가들에게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이제 이러한 질문들은 거의 모든 주요 외교정책 논쟁의 핵심에 있다.
또한 보다 깊어진 경제 통합은 지정학적 경쟁자들 사이의 복잡한 네트워크을 만들어냈다. 정책가들은 이제 이를 전략적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특히 미국이 특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금융 및 기술 네트워크가 여기 해당된다. 헨리 패럴과 에이브러햄 뉴먼이 최근 저서 '지하 제국'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은 수십 년에 걸쳐 거의 우연히 구축된 광대한 정보 배관 시스템의 중심에 있으며, 이는 세계 경제가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지위, 핵심 인터넷 인프라에 대한 미국의 통제, 가장 중요한 기술들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미국 기업의 지배력은 미국 정부가 지정학적 경쟁자들에게 압박을 가하거나 타격을 입히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강대국 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페럴과 뉴먼이 '무기화된 상호의존'이라고 부르는 것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분야도 늘었다. 예를 들어 G7 국가들이 서방에 기반을 둔 해운보험사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을 이용한 방식을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외교정책가들은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는 아마도 해운보험 산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의 원유 수출가격을 제한하기 위해 G7은 배럴당 60달러 이상으로 판매되는 경우 서방의 해운보험사들이 해당 화물에 대한 보험보증을 못하게 만들었다.
서방 강대국만 이런 식으로 플레이를 하는 건 아니다. 2010년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찰선이 분쟁 수역에서 충돌해 중국과 일본 간 외교 갈등이 촉발된 후 중국은 배터리와 전자제품의 핵심 구성요소인 희토류 광물의 대일 수출을 금지해 하이브리드 자동차부터 풍력발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 제조업체들의 비용을 높이고 부족을 초래했다.
지정학적 마찰은 또한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들에서 영업하는 기업들의 경영을 보다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기업들은 때때로 양자택일을 해야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러시아를 떠나고자 했던 많은 기업들이 영업을 중단해야 했다. 영업을 계속하면 서방의 제재를 받게 되며, 러시아를 떠나기로 결정하면 러시아로부터 역제재를 받게 된다. 최근에는 여러 미국 컨설팅 회사들이 미국-사우디 관계의 난맥상에서 곤경에 처했다. 미국 하원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계약에 대한 세부사항을 제출할 것을 기업들에게 요구했지만 사우디 정부는 이를 금지했다.
이 모든 역학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글로벌하게 얽혀 있는 경제를 가진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 격화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21세기 경제를 지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는 컴퓨팅 기술, 생명공학, 청정에너지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국의 취약성은 줄이고 레버리지를 높이는 방식으로 경제를 형성하려는 공동의 욕구가 오늘날 양국의 외교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자립自立'이라 부르고 미국은 이를 '디리스킹de-risking'이라 부른다. 미국의 경우 이는 현실적으로 첨단 반도체와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 확대, 외국 시장에 대한 미국 기업의 투자에 대한 정부 심사 강화, 전기차와 반도체 등 산업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 지원 등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주로 인플레이션감축법과 CHIPS법을 통해 이뤄진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상무장관은 국무장관 및 국방장관만큼이나 외교정책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다.
미국 정부만 이런 행보를 걷는 게 결코 아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 이후 거의 모든 주요 경제국에서 국가 주도의 자급자족 노력이 시작되었다. 일례로 투자 심사를 도입하거나 확대하는 국가의 수는 1995~2005년에 3개국에 불과했지만 2020~2022년에는 54개국으로 급증했다. 한편 각국 정부가 앞다투어 산업정책을 구사하면서 기업들이 공급망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도록(리쇼어링) 유도하기 위해 무역장벽을 높였다. 동시에 무엇이 국가안보에 중요하냐에 대한 관념도 확장되었는데, 여러 국가들은 소프트웨어와 반도체에서부터 의약품, 식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발전시키거나 보호하려 하고 있다.
'어쩌다 내가 이 전쟁에 말려든 거죠?'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서 외교정책 수립의 성공 여부는 점점 더 기업의 의사결정에 달려 있다. 수출통제와 제재는 기업들이 이를 회피하려 하지 않을 때만 효과가 있다. 산업정책과 보조금은 정부가 의도한 인센티브에 기업들이 반응할 때만 효과가 있다.
이 새로운 시대의 복잡성의 상당 부분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시간 관념의 차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책가들은 기업 경영에 즉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명한 경계선을 설정한다. 예를 들어, 갑자기 기업들이 특정 국가에서 특정 상품을 수출하거나 수입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장기적인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시장 수요가 있고 현재 법적으로 허용되는 경우 기업이 중국에 또 다른 공장을 세워야 할까? 제약회사라면, 중국과 서방 간의 관계의 장기적 전망을 감안할 때 중국 본토에 첨단 R&D 센터를 설립하거나 중국 바이오테크 회사를 인수해야 할까? 가전제품 회사는 중국산 칩이 가장 비용효율적인 옵션인 경우 그것을 구매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자신이 거의 통제할 수 없는 매우 불안정한 정치적 논쟁과 정책 결정의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리는 어떤 결정이든 그것은 예를 들어 미국이 대중 경제 관계를 효과적으로 '디리스킹'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제조를 리쇼어링하려 하고 있지만, 그 대표적인 산업정책인 CHIPS법의 성공 여부는 향후 5년간 상무부가 이 법안의 보조금 390억 달러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일부분만 달려 있다. 훨씬 더 중요한 요인은 대만의 칩 제조사 TSMC가 높은 비용과 상대적인 인적 자본 부족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생산시설을 설립하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그리고 애플이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저렴한 칩 대신 미국 제조업체가 생산하는 좀 더 비싼 칩을 구매하기로 결정할 것인지다. 그리고 CHIPS법은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하나의 고려 요소일 따름이다.
어떤 경우에는 기업이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외교정책과 국제분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로 손꼽히는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기업 스페이스X가 제공하는 위성 기반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보자.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에 앞서 발생한 사이버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인터넷 연결이 끊긴 후 머스크가 신속히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의 생명줄이 됐다. 그러나 그해 9월 머스크는 우크라이나군이 크름반도의 러시아군을 공격할 수 있도록 스타링크의 커버리지를 크름반도로 확장해 달라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을 거부했다. 머스크는 나중에 그렇게 할 경우 스페이스X를 "주요 전쟁행위와 분쟁 확대에 명시적으로 연루시킬 것"이라고 썼다. 머스크는 당시 언론인 월터 아이작슨과의 대화에서 그가 표현한 대로 "어쩌다 내가 이 전쟁에 말려들었는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머스크가 겪은 곤경은 그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놀라울 일이 될 수 없다. 정부와 기업, 국제정치와 상업을 구분하는 선은 이미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려진 것이다.
성장 마인드
정부가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복잡한 공급망과 기술 생태계를 건드리기 시작하면서 수천 개의 기업 행위자들의 선택과 행동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구사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본질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점과 각 산업들이 갖고 있는 복잡다단함을 감안할 때, 미국 정부가 특정 제재나 수출통제에 대한 모든 우회 기법이나 우발 상황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미국 정부는 기업들이 정책의 문구 뿐만 아니라 그 정신을 준수하는 데 의존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새로운 규칙을 준수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는 제한을 피하고 장애물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규제 당국과 입법자들은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경쟁자들 또한 가만히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2022년 서방이 러시아와의 거의 모든 경제적 교류를 끊은 후, 러시아는 곧 중국을 대체 공급처로 삼았다. 러시아의 대중국 수입은 2021년 이후 64% 급증했다.
수출통제와 해외투자 제한과 같은 정책에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따르며 제한된 시간 동안만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국가와 산업이 정책에 대응하고 기술이 변화함에 따라 정책에도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러한 규칙은 또한 다자간 조치를 필요로 하는데 미국 정부가 미국의 전문성과 자본을 이용할 수 없게 할 때마다 세계 각국의 다른 주체들이 기꺼이 그것들을 대체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정책에도 비슷한 한계가 있다. 정부는 자국의 해외 경제 의존도를 줄이려는 의도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그 수단은 제한적이다. 보조금과 기타 금융혜택은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공급망을 완전히 재배치하기에는 너무 작다. 그리고 수입금지 같은 보다 극단적인 정책은 공급부족과 가격 급등의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을 황폐화시킬 수 있는 본격적인 무역전쟁의 위험도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에 적응하려면 정책가들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전통적으로 외교정책 의사결정자와 기업 간의 상호작용은 적대적이거나("이런 것들을 여기에 팔면 안돼!") 또는 판촉적인 것이었다("저런 것들을 저기에 팔아라!"). 앞으로 미국 정부는 기업에 대한 보다 협력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정책의 의도와 목적을 명확히 표명하는 것이다. 정부 규제의 의도가 불분명하고 목적이 정의되지 않은 경우 그 정신을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은 반도체 다음으로 대중국 경제제재가 초점을 맞출 분야로 '생명공학'을 반복적으로 언급해 왔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아직까지 유전체학, 세포 치료, 첨단 바이오 제조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는 복잡하고 광범위한 생명공학 생태계의 어떤 측면을 가장 우려하지 정의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의 자본과 노하우를 어떻게 제한할 계획인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이러한 부분들을 명확히 밝히는 것은 새로운 조치가 발표되기 전에도 오늘날 기업들이 중국 시장과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을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교정책 관리들은 또한 경제와 핵심 기술에 대한 더 많은 전문성을 계발해야 한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전략의 대가였지만 경제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Brent Scowcroft의 시대는 지나갔다. 정부 관료가 경제에 대한 근육을 키우려면 민간부문과 보다 제도화된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해외기업 인수나 경영 재편과 같은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도 말이다. 오늘날 정부 제재의 대상이 되고 있는 IT 대기업들은 행정부와 많은 접점을 갖고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타 분야의 기업들은, 예를 들어 중국에서의 경영이나 사업과 관련된 주요 결정에 대해 어디서 지침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를 수 있다. 상무부는 바로 그런 논의를 위한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들이 정책가들과 개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규제 감독을 증가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협의체가 필요하다. 이는 정부와 조기에 그리고 자주 상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정부와 기업 간의 모범적인 협의체 사례로는 국토안보부와 사이버보안 및 인프라보안국(CISA)이 운영하는 사이버안전검토위원회Cyber Safety Review Board가 있다. 공공 및 민간부문의 사이버보안 전문가들이 모인다.
미국 정부가 제재의 효과를 높이고, 집행을 개선하며, 경제적 취약성을 보다 제대로 파악하려면 더 나은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하다. 작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설립한 백악관 공급망 회복력 위원회White House Council on Supply Chain Resilience는 좋은 출발점이다. 상무부는 산업 데이터 수집과 예측 분석을 수행하기 위한 자금이 더 필요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공급망센터Supply Chain Center를 강화해야 한다. 이 센터는 핵심 공급망이 지정학적 혼란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평가하기 위해 연례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수출통제 개발을 감독하고 모니터링하는 상무부 산업보안국Bureau of Industry and Security에도 자금이 더 필요하다. 이 부서의 예산은 10년 전과 같은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정부는 경제정보economic intelligence 수집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중국의 국내 핵심기술 개발 현황과 중국 정부가 어떻게 규제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는 화웨이가 최근 메이트60 스마트폰용 7나노미터 칩을 개발했다고 발표한 것과 같은 의외의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아직 7나노 칩을 효율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없지만, 미국 정부 관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중국의 발전에 의표를 찔렸다.) 이를 위해서는 재무부, 상무부, CIA의 경제정보 예산을 늘려야 할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미국 정부는 경제정보를 얼마나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정보가 국가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 넓게 보면, 미국 정책가들은 냉전과 그 직후 시대의 선배 정책가들은 피할 수 있었던 광범위한 질문과 문제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새로운 경제 전문지식을 개발하고, 업계와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며, 새로운 경제 운용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 세대의 정책가들도 그 시대의 지정학적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여 이 모든 것을 해야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질문과 문제는 달랐지만, 모두 같은 종류의 적응을 필요로 했다. 미국 관리들은 과거에 그러한 임무를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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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미식은 라자드지오폴리티컬어드바이저리Lazard Geopolitical Advisory의 수석 고문이다. 키신저어소시에이츠Kissinger Associates의 CEO와 CIA 정보 부국장을 역임했다.
피터 오스작은 라자드의 CEO로, 2009~2010년 미국 관리예산실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실장을, 2007~2008년 의회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 처장을 지냈다.
시어도어 분젤은 라자드의 상무이사로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의 정치부와 미국 재무부에서 일했다.
원문 https://www.foreignaffairs.com/united-states/geopolitics-c-suite
필자 Jami Miscik, Peter Orszag, Theodore Bunzel
번역 김수빈
편집 김동규, 김수빈
발행 원문 2024.03.11 번역·편집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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